[정안석의 Branding] 유통업체 브랜드리스는 어떻게 브랜드가 됐나
[정안석의 Branding] 유통업체 브랜드리스는 어떻게 브랜드가 됐나
  • 정안석 인그라프 대표
  • 호수 318
  • 승인 2018.12.21 0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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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그라프 특약❾ 노 로고 전성시대

좋은 브랜드를 갖춘 기업은 제품을 파는 데 걱정이 없다. 브랜드 이미지만 앞세우면, 제품이 어떻든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시장을 주름잡는 제품 대부분은 글로벌 기업의 몫이 됐다. 우리 일상도 어느덧 대기업 브랜드의 상업성에 잠식당했다. 최근 ‘노  로고’ 전략을 앞세운 기업들의 움직임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더스쿠프(The SCOOP)와 인그라프가 노 로고 전성시대를 분석했다. 

신세계그룹의 노브랜드는 중간 마진을 줄여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신세계그룹의 노브랜드는 중간 마진을 줄여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0년 전, 필자는 「노 로고(No Logo)」라는 책을 읽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십수년간 브랜드 업계 디자이너로 일했던 커리어가 일순간 부정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캐나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진보운동가인 나오미 클라인이 저술한 이 책은 브랜드가 사회 거악의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설파했다.

「노 로고(No Logo)」는 브랜드 중심 경영의 잔혹한 현실을 심도 있게 파고들었다.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는 스타벅스, 나이키ㆍ애플ㆍ코카콜라 등 유명 브랜드가 거둔 성과를 보자. 아름답고 근사한 이미지로 경제ㆍ사회ㆍ문화 등의 영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기업들은 더 이상 제품을 두고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대신 브랜드의 명성을 쌓고 퍼트리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는 현실을 가리는 환상에 불과했다. 클라인은 슈퍼 브랜드의 어두운 이면에 집중했다. 원가절감을 위해 제3세계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 게 대표적이다. 심지어 그 브랜드가 탄생한 미국ㆍ영국 등의 노동자마저도 각양각색 이유를 들어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내몰았다. 클라인의 메시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런 거대 브랜드의 악행을 다른 시민에게도 알리고, 여기에 저항해야 한다는 거다.

그의 주장은 파급력이 컸다. “이런, 나오미 클라인도 코카콜라를 마시네?”식의 가십거리가 메이저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책이 발간될 당시엔 ‘노 로고’가 경제 유행어로 퍼지기도 했다. 10년이 흐른 지금, 이 책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흥미롭다. 필자는 ‘노 로고’ 메시지에 감흥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몇몇 기업의 전략을 살펴보려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지난해 7월 탄생한 미국 스타트업 ‘브랜드리스(Brandless)’다. ‘브랜드가 없는’으로 직역되는 이 회사의 가치는 ‘품질’ ‘투명성’ ‘커뮤니티’ 등이다. 더 나은 물건을,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사람에게 공급하는 게 이 회사의 목표다.

브랜드리스의 제품은 모두 단색 또는 한가지 컬러의 단순한 디자인이다. ‘브랜드리스’라는 기업 로고도 없다. 제품명과 제품 속성만 정직하게 기입했다. 월마트 진열대에서 볼 수 있는 현란한 컬러와 요란한 그래픽, 근사한 음식 이미지 같은 소비자를 현혹하는 장치는 없다.

무엇보다 재밌는 건 가격이다. 디자인과 브랜드 비용 등의 거품이 빠진 탓일까. 모든 제품을 균일가 3달러에 판다. 단가가 낮은 물건들도 묶어서 3달러에 맞췄다. 품질도 나쁘지 않다. 쓸데없는 비용을 빼고 품질에만 돈을 썼다는 게 그 이유다.

모든 제품을 자체 제작했고, 오프라인 매장 대신 온라인 채널만을 이용했다. 홍보 역시 광고대행사 없이 SNS와 입소문에 맡겼다. 브랜드리스는 물류ㆍ유통ㆍ마케팅에 드는 비용을 낭비 요소라고 보고 이렇게 더 붙는 가격을 ‘브랜드세(Brand Tax)’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변화무쌍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떠올리면 무모해 보이는 전략이다. 하지만 브랜드리스는 구글벤처스를 비롯한 대형 투자자들로부터 5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는데 성공했다.

한국에도 비슷한 게 있다. 유통대기업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노브랜드다. “브랜드가 아니다, 소비자다”는 콘셉트로 무섭게 세를 확장하고 있다. 필자가 매장을 실제로 방문해 보니 넓은 상품 카테고리가 눈에 띄었다. 식품ㆍ생필품ㆍ생활가전ㆍ뷰티 헬스케어ㆍ차량관리용품 등에 이르기까지 이마트의 핵심 상품만 추리고 압축했다. 가격 경쟁력도 상당하다. 일반 마트의 50%, 그 이하의 가격으로 체감됐다. 그렇다고 제품 수준이 형편 없는 것도 아니었다. 

노 브랜드는 미국의 브랜드리스처럼 극단적으로 비용을 줄인 건 아니다. 특히 식품 관련 제품 디자인에는 요새 젊은이에게 익숙한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었다. 온라인에서만 파는 브랜드리스와 달리, 노 브랜드는 오프라인이 주력이다.

물론 스타트업인 브랜드리스와 유통 대기업을 등에 업고 있는 노 브랜드를 직접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중요한 건 두 브랜드 모두 비슷한 메시지를 던졌고, 여기에 반응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거다. 노 브랜드 매장에는 기존 대형마트에는 없던 활력이 있었다.

걷히는 브랜드 거품

어쩌면 브랜드가 소비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의 소비자는 나오미 클라인의 경고 없이도 스스로 브랜드 거품을 걷어낼 수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무한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다.

이제 제품에 걸린 그럴싸한 음식 사진만 보고는 포만감을 느끼지 않는다. 유명 축구화를 신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전신상을 보며 골을 넣은 것 같은 희열을 느끼는 소비자도 줄고 있다. 나오미 클라인이 자신의 저서를 두고 “경제 예측서를 쓴 건 아니다”고 설명했지만, 그의 의도는 빗나갔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진화의 한 축으로 ‘노 로고’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안석 인그라프 대표 joel@ingraff.com | 더스쿠프 브랜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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