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더 씬 레드라인 ❷

국경과 인종, 세대,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가 평화를 원한다. 그런데도 전쟁이 쉼없이 되풀이되고 평화가 멀기만 한 것은 어쩌면 인류역사 최대 미스터리다. 오죽하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 없는 세상을 누리고 있다(Only the dead have seen the end of war)”고 말했을까.

모두가 평화를 원하지만 전쟁이 쉼없이 되풀이되는 건 인류역사 최대 미스터리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모두가 평화를 원하지만 전쟁이 쉼없이 되풀이되는 건 인류역사 최대 미스터리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수많은 학자들이 전쟁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혹자는 경제문제, 혹자는 인종과 민족, 애국심의 문제, 또 다른 학자들은 아예 인간의 본성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수도 없이 제작되는 온갖 반전反戰 영화들도 모두가 원치 않는 전쟁이 되풀이되는 원인을 추적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반전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미친 전쟁의 원인을 ‘애국심’에서 찾았다면 테렌스 맬릭 감독의 ‘더 씬 레드라인’은 그 혐의를 인간의 탐욕에서 찾는 듯하다.

로버트 위트(짐 카비젤 역) 일병은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 중 애매모호한 AWOL(Abs ence Without Leave)의 신분이 된다. 신고하지 않고 자리를 이탈했다는 뜻이다. 좋게 봐주면 ‘낙오병’이고 나쁘게 보면 ‘탈영병’이다. 낙오가 됐든 탈영을 했든 위트 일병은 천국과 같은 남태평양의 외딴 섬에서 원주민들 틈에 평화롭게 살다 웰시(숀펜 역) 상사에게 걸려 과달카날 섬 수복작전을 총지휘하는 항공모함 감옥에 갇힌다. 꼼짝없이 군법회의에 회부돼야 하지만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이 그에게 ‘명예회복’ 기회를 제공한다.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과달카날 섬 수복작전에 뛰어들어 공을 세우면 모든 것이 지워질 수 있다.

항공모함 갑판에서는 과달카날 섬 수복작전을 총지휘하는 퀸타드(존 트라볼타 역) 장군과 톨 (닉 놀테 역) 대령의 개인적인 대화가 이어진다. 톨 대령은 만년 대령이다. 별다른 계기가 없다면 평생을 군에 몸담고도 별 하나 달아보지 못하고 전역하는 천추의 한을 품고 살아야 한다. 그에게 과달카날 전쟁은 별을 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톨 대령에게 전쟁과 살육은 피해야 할 지옥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희망의 사다리다.

톨 대령은 일본군 진지 점령이라는 목적만 있을 뿐 병사들의 생명은 안중에 없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톨 대령은 일본군 진지 점령이라는 목적만 있을 뿐 병사들의 생명은 안중에 없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자기보다 나이 어린 장군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신세가 처량하고 그런 장군이 아니꼽기 짝이 없지만 계급이 깡패라 어쩔 수 없다. 퀸타드 장군 역시 톨 대령의 ‘별’에 대한 타는 듯한 목마름을 꿰뚫어보고 그에게 상륙작전과 고지탈환의 중차대한 임무를 맡긴다.

대령쯤 되면 지휘선에 머물러있을 만도 하건만 톨 대령은 소대장처럼 직접 철모를 쓰고 사병들과 포격과 총탄이 빗발치는 전선으로 뛰어든다. 일견 영웅적인 ‘참군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탐욕의 화신일 뿐이다. 일본군의 포격과 총격에 수없이 죽어나가고 몇 명이 겨우 살아남아 능선에 겨우 몸을 숨긴 스타로스(엘리어스 코티스 역) 대위의 부대에 뛰어들어 병사들에게 ‘돌격 앞으로’를 미친 듯이 외친다. 당장 돌격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쏴 죽여 버릴 기세다. 희생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우회로를 이용한 공격을 제안하는 스타로스 대위를 겁쟁이로 몰아붙인다.

톨 대령에게는 ‘별’이 왔다갔다하는 일본군 진지 점령이라는 목적만 있을 뿐 병사들의 생명은 안중에 없다. 오직 자신의 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진지만 점령할 수 있다면 부대원 모두 죽어도 상관없다. 그의 영웅적 전투를 이끄는 힘은 일본군에 대한 증오나 애국심이 아닌 탐욕일 뿐이다. 톨 대령은 수많은 병사들의 희생 위에 진지 점령에 성공한다.

그리고 곧바로 변호사 출신인 스타로스 대위에게 국방성 법무관으로 전출 명령을 내린다. 자신의 혁혁한 전공에 혹시라도 누가 될까 두려워한다. 변호사 출신인 스타로스 대위에게는 전공을 통한 승진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지만 직업군인 톨 대령에게는 입신양명의 모든 것이 전투에 걸려있다.

전쟁이 기회가 되고 전쟁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자들과 집단이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전쟁이 기회가 되고 전쟁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자들과 집단이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모두가 전쟁을 피하려 한다면 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전쟁이 기회가 되고 전쟁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자들과 집단이 있다. 그들이 가장 위험하다. 1961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의 유명한 퇴임연설에서 미국 ‘군산軍産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위험성을 미국민들에게 경고한다. 군부와 산업이 결탁한 이익공동체에 항상 전쟁터는 기회의 땅이 되고 노다지판이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 전쟁이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다. ‘감히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원하는 바’인 것이다. 지난 70년간 전쟁의 공포 속에 살아온 이땅 위에서 모두가 평화를 갈망한다. 그럼에도 전쟁을 기회로 여기고 오히려 평화를 두려워하는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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