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혁신성장’ 말로만 떠들면 ‘산업위기’ 맞는다
[양재찬의 프리즘] ‘혁신성장’ 말로만 떠들면 ‘산업위기’ 맞는다
  • 양재찬 대기자
  • 호수 319
  • 승인 2018.12.24 0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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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공화국’의 산업정책 부재 장기화
문재인 대통령은 산업정책 부재 비판에 “정부의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4차 산업혁명에 올라타지 못한다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산업정책 부재 비판에 “정부의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4차 산업혁명에 올라타지 못한다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사진=연합뉴스]

12월 5일 미국 애리조나에서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자율주행 로봇택시 ‘웨이모 원’이 상업운행을 시작했다. 닷새 뒤 한국 서울 여의도에선 50대 택시기사가 자가용 카풀 영업에 반대하며 분신자살했다. 다시 열흘 뒤 전국의 택시 노동자들이 운행을 멈추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카풀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 시각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 이재웅 민간공동본부장이 사퇴했다. 

미국의 구글과 애플, 중국 바이두 등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은 차량공유를 넘어선 미래형 서비스인 로봇 자율주행 택시 상용화에 뛰어든 지 오래다. 그런데 한국에선 카풀과 같은 공유경제 등 신산업 태동 정책에 대한 자문을 맡은 정부조직 책임자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무력감을 토로하며 도중하차했다. 

이재웅이 누군가. 포털 다음을 설립한 벤처창업 1세대 선두주자이자 승차공유업체 쏘카 대표다. “공유경제가 진척을 보이지 않고 혁신성장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한발짝도 못 나가 아쉽다”는 게 그의 사퇴 변이다. 

세계 주요국들이 경쟁하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미래 먹거리인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정부조직은 더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때 세워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혁신성장본부보다 힘 있는 기구다. 게임회사 블루홀의 창업자인 장병규 의장이 1ㆍ2기 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위도 카풀 서비스 등 민감한 규제개혁 현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민관 협업 조직에 스타 기업인을 모셔오지만, 출범 초기 반짝 주목을 받을 뿐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고 자문하지만 거기까지다. 부처는 부처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따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기재부가 나서도 실제 행정권을 쥔 부처는 규제를 놓지 않는다. 규제법안을 다루는 국회는 당리당략이나 개별 의원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 이익은 무시당한다.

규제개혁이 지지부진하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일갈했다.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 주재 혁신성장전략회의에서 대한민국을 ‘안돼 공화국’이라 칭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선 혁신성장과 일자리 대책이 부실하다고 지적받자 “그것이 우리 현실이고 실력”이라고 자조했다. 

정부도, 정치권도 4차 산업혁명을 구호로만 외칠 뿐 신성장동력의 중ㆍ장기적 육성 비전을 담은 산업정책은 여태 내놓지 않았다. 자동차ㆍ조선 등 경쟁력이 약화돼 구조조정을 해야 할 산업들에 대한 임시방편 지원 대책만 거론될 뿐이다. 문 대통령이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산업정책 부재 비판에 “정부에 뼈아픈 자성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한 배경이다.  

우리가 국가 차원의 산업정책 없이 ‘창조경제’ ‘혁신성장’ 등 모호한 개념만 되뇌는 사이 미국(첨단제조파트너십)ㆍ독일(인더스터리 4.0) 등 선진국과 중국(중국제조 2025)을 비롯한 경쟁국들은 나름 분명한 비전과 전략으로 앞서갔다. 그 단편적인 결과는 시가총액 20대 세계 인터넷기업 판도(2018년 5월말 기준)로 입증됐다.

세계를 움직이는 20대 ICT 기업은 미국 11개, 중국 9개로 G2가 독점했다. 2013년 조사 때 끼었던 한국 네이버와 일본 야후재팬과 라쿠텐은 중국에 밀렸다. 2013년까지 텐센트ㆍ바이두ㆍ넷이즈 등 3곳이었던 중국 기업은 5년 새 세배로 불어났다. 미중 양국의 공통된 변화 중 하나는 승차공유업체인 미국 우버와 중국 디디추씽이 15위, 16위로 나란히 등극한 점이다. 

산업혁명기마다 기술 진보가 노동시장을 위협했다. 초기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점차 신기술을 중심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가 많아졌다. 관건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다. 1차 산업혁명은 영국, 2ㆍ3차 산업혁명은 미국을 경제강국으로 도약시켰다. 

1960~1970년대 한국 경제를 도약시킨 원동력은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산업정책이다. 4차 산업혁명은 1~3차 산업혁명보다 변화의 정도가 크고 속도도 빠르다. 기존 주력산업의 고도화와 첨단 ICT 기술과 기존 제조업의 융ㆍ복합이 요구된다. 혁신과 신산업은 기업가 개인의 결정만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정부ㆍ자본ㆍ노동ㆍ교육 부분까지 힘을 합쳐야 가능하다.

정부는 정권에 관계없이 교과서로 삼을 산업 청사진을 마련하고, 정치권은 구산업과 신산업간 갈등 조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 대열에 올라타지 못하는 ‘산업위기’에 봉착하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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