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의 GM 법인분할 찬성 괜찮나 

“한국GM을 반드시 둘로 나눠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한국GM 법인분할 이슈의 쟁점이다. 법인분할을 했을 때 얻을 게 많다면 분할하는 게 맞고, 잃을 게 많다면 하지 않는 게 맞다. 산업은행이 법인분할에 찬성했다는 건 얻을 게 많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산은의 판단에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우려가 많기 때문인데, 산은은 왜 기존 입장을 바꿨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한국GM의 리스크를 다시 한번 짚어봤다. 

산업은행은 지난 18일 열린 한국GM 이사회와 임시주주총회에서 법인분할 의결에 찬성표를 던졌다.[사진=연합뉴스]
산업은행은 지난 18일 열린 한국GM 이사회와 임시주주총회에서 법인분할 의결에 찬성표를 던졌다.[사진=연합뉴스]

한국GM의 법인분할 이슈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줄곧 한국GM의 법인분할을 반대하던 산업은행이 지난 18일 열린 이사회와 임시주주총회에서 돌연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8일 재판부가 산은이 제기한 “한국GM의 법인분할을 승인한 주주총회 결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던 만큼 이번 산은의 결정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산은이 마음을 돌린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GM을 분할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많다는 판단에서다. 재판부가 가처분신청을 인용한 이후 한국GM으로부터 받은 ‘법인분리 사업계획 및 타당성 검증자료’를 외부용역에 맡겨 검토한 뒤 내린 결론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주총 이후 열린 간담회에서 설명한 법인분할의 이점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GM의 계획대로 법인을 분할하면 신설하는 연구ㆍ개발(R&D) 법인은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의 R&D 거점이 된다. 이는 국내 협력업체에 신규 고용효과를 창출하고, 자동차ㆍ부품산업의 성장동력이 되며, 한국GM(생산법인)의 수익성과 기업가치, 재무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이 회장의 말대로라면 한국GM과 협력업체, 나아가 자동차 산업까지 모두에 ‘윈윈’이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철수 우려도 사실상 사라진다. 이 회장은 “한국GM과 지난 5월 합의한 내용이 신설 R&D법인에 그대로 승계된다”며 일축했다. R&D법인도 향후 10년간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산은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을 R&D 거점으로 삼겠다는 건 5월 합의안에도 들어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GM은 국내 협력업체들의 부품 구매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국내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더구나 산은이 말하는 이득을 생산법인과 R&D법인의 분할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건지도 불투명하다. 먼저 이 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신차를 개발할 때 부품업체가 옆에 있으면 협조해 개발한다. 앞으로 R&D법인과 부품업체가 협동해서 차를 개발하면 부품업체도 엔지니어를 고용할 것이다. 그렇게 함께 개발한 부품은 생산공장에 더 유리하게 공급할 수 있다.” 실제로 신차 개발 과정에 협력업체가 참여하면 그만큼 협력업체의 목소리가 많이 실리고, 기술력도 높아질 여지가 많다. 협력업체들의 경쟁력과 위상이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4개월 만에 바뀐 산은 입장 

문제는 이 주장이 전혀 새롭지 않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자동차를 개발하는 기간이 5~6년이라고 하면 마지막 3년은 통상 협력업체들이 참여한다. 한국GM도 마찬가지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생산법인과 R&D법인의 분할이 협력업체에 별다른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면서 “완성차 업체는 통상 신차 개발을 완료하기 3년 전 협력업체들과 계약을 맺는데, 이건 법인분할과 관계없이 여느 업체나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산은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생산법인과 R&D법인을 반드시 분할해야만 하는 명분’이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한국GM 관계자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자동차 산업은 종합산업인데, 생산법인과 R&D법인을 분리하면 연계성이 떨어져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면서 “특히 생산법인은 단순 조립기지로 전락할 수 있고, R&D법인이 개발한 신차의 생산을 반드시 확보할 거란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R&D법인이 개발한 차를 생산하기 위해 기술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도 법인분할 탓에 생길 수밖에 없는 손실이다. 

이런 지적들은 “한국GM과 R&D법인을 10년 이후에도 붙잡아 두기 위해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 회장의 말과도 상충된다. 법인분할이 R&D법인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는 유리할지 몰라도 한국GM의 경쟁력 강화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거나 되레 불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산은이 한국GM을 붙잡아둔 이유는 한국GM과 엮여있는 30만여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국내 산업에 몰아칠 여파를 막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8000억여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산은이 한국GM과의 이해관계에 따른 선택보다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유다.

산은은 한국GM의 법인분할이 국내 자동차ㆍ부품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사진=뉴시스]
산은은 한국GM의 법인분할이 국내 자동차ㆍ부품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사진=뉴시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4개월여간 이어져온 다툼이 사업계획서 하나로 보름여 만에 끝났다. 산은은 GM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한 것만으로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한국GM의 법인분할이 어떤 이익을 가져올지만 따져본 게 아니라, 어떤 리스크가 있고 어떤 손실을 불러올 수 있을지를 따져 물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GM 법인분할 이슈가 마무리됐다.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과연 남은 우려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을까. 산은에 달렸지만 그게 더 걱정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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