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과 유류세의 상관관계 

최근 기름값이 확 내렸다. 물론 국제유가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인데 흥미로운 점도 있다. 국제유가는 10월부터 줄곧 내리막인데, 국내유가는 정확히 11월 2주차를 기점으로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한 시기와 맞물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국내 주유소 판매가격이 급락한 이유를 취재했다.

유류세를 인하하자 국내유가는 매우 빠르게 하락했다.[사진=연합뉴스]
유류세를 인하하자 국내유가는 매우 빠르게 하락했다.[사진=연합뉴스]

# 2014년 유가 이야기 

2014년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국제유가는 그해 하반기부터 내리막으로 돌아섰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업체들과 가격경쟁에 돌입하면서다. 당시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9월 배럴당 90달러대로 떨어진 이후 월평균 10달러씩 하락했다. 12월 말에는 50달러대로 떨어졌다. 범위를 11월 1주부터 12월 3주까지로 좁혀도 마찬가지다. 주간 평균 두바이유는 배럴당 80.51달러에서 60.58달러(-19.93달러)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국내 주유소 주간 평균 판매가(보통휘발유 기준)는 어땠을까. 같은 기간 L당 1746.60원에서 1655.97원으로 ‘90.63원’ 떨어졌다. 참고로 두바이유는 11월 4주(6.26달러)에 가장 많이 하락했다. 반면 주유소 판매가격은 12월 3주(-29.71원)의 낙폭이 가장 컸다. 

# 2018년 유가 이야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석유수출 봉쇄 조치와 함께 국제유가 하락을 부추기는 발언들을 내놓으면서 오름세를 보이던 국제유가는 10월 초를 기점으로 내림세로 전환했다. 두바이유는 11월 1주부터 12월 1주까지 배럴당 80.51달러에서 60.29달러(-20.22달러)로 내렸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기간 국내 주유소 주간 평균 판매가격은 L당 1660.37원에서 1480.95원으로 179.42원이나 떨어졌다. 참고로 두바이유는 11월 4주(5.29달러)에 가장 많이 떨어졌고, 주유소 판매가격의 낙폭은 11월 2주(-85.22원)에 가장 컸다. 

다시 한번 복기復棋해보자. 2014년 말 11월 1주~12월 3주 두바이유는 배럴당 19.93달러 떨어졌다. 같은 기간 국내 주유소 판매가격은 ‘90.63원’ 떨어졌다. 또한 두바이유는 11월 4주에 가장 많이 하락한 반면 주유소 판매가격은 그로부터 3주 후에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2018년은 어떨까. 2018년 11월 1주~12월 1주 두바이유는 배럴당 20.22달러 내려갔다. 2014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국내 주유소 판매가격은 ‘179.42원’ 떨어져 2014년과 큰 차이를 기록했다. 더 흥미로운 건 두바이유가 11월 4주(5.29달러)에 가장 많이 떨어진 반면 주유소 판매가격 낙폭은 11월 2주에 가장 컸다는 점이다. 2014년보다 국제유가 하락세에 더 빨리 반응한 거다. 

유류세 내리자 국내유가 확 달라져

그렇다면 유독 올해 11월 1주차 이후에만 왜 국내 주유소 가격이 크게 떨어진 걸까.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정부가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인하했던 때와 맞물린다. 정부는 지난 11월 6일부터 2019년 5월 6일까지 6개월 간 유류세를 15% 인하하겠다고 밝혔는데, 이후부터 정유사와 주유소들이 일제히 가격을 내린 셈이다. 

그동안 국내유가가 국제유가와 제대로 연동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유사와 주유소는 “유류세 때문”이라고 책임을 미뤄왔다. 그런데 정부가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내리자 정유사와 주유소도 더 이상 책임을 전가하기 힘들어지면서 유가에 반영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서혜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연구실장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유류세 인하를 반영하지 않은 주유소가 많지만, 유류세 인하 조치와 함께 정유사의 공급가격과 주유소의 판매가격이 어느 정도 내려간 것은 사실”이라면서 “국제유가가 내려가는 상황에서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로 인해 감시가 엄격해지고, 국민 관심도 더 커지는 상황을 염두에 둬서 판매가격을 조정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10월 30일 개최한 국무회의에서 유류세 한시적 인하를 내용으로 하는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법 시행령, 개별소비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 합동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해 유류세 인하가 소비자 판매가격 인하로 이어져 서민과 영세자영업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감시를 철저히 하겠다는 거였다. 

 

이 연구실장은 “정유사나 주유소는 국제유가 하락기에 가격을 제대로 반영한 적이 별로 없고, 올해 여름에도 하반기에 국제유가가 오를 거라는 예측이 나오자 하락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면서 “유류세 인하 전까지 국제유가가 내려가고 있음에도 주유소 판매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었다는 걸 감안할 때, 유류세 인하 조치가 없었으면 2014년과 마찬가지로 국내유가는 매우 더디게 내려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정유사와 주유소를 얼마나 철저히 감시하느냐에 따라 국내유가도 달라진다는 거다. 

또다시 시작되는 정유사의 장난질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분석에 따르면 현재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주유소는 여전히 전체 주유소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전체 평균치로 볼 때는 주유소들이 다 유류세 인하분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셈이다. 

이 연구실장은 “여전히 유가가 하락세인 상황을 감안하면 충분한 반영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아직 반영해야 할 하락분이 더 있는 만큼 국민과 시민단체의 관심이 필요하고, 특히 정부의 감시 의지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감시만 강화할 게 아니라 처벌 강화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유는 분명하다. 지난 10월 1주부터 주간 두바이유 가격은 한번도 오르지 않았음에도 12월 1주 정유사 세전 공급가격은 11월 4주 L당 487.85원에서 511.44원으로 23.59원이 올랐다. 유류세 인하 후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정유사의 가격 장난질이 또다시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연구실장의 조언을 흘려들어선 안 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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