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혈소판 사망사고
법원은 왜 삼성을 지목했나
의료진 핵심증거 폐기 이유

2013년 11월 22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사람이 죽었다. 30대 남성 A씨였다. 혈소판 혈액을 수혈 받았는데, 그 혈액에 숨어있던 세균이 A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국내 첫 혈소판 수혈 감염 사망 사례’로 알려진 이 사건엔 그간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세균이 어디서, 왜 발생했느냐다. 질병당국도 “알 수 없다”는 결론만 내렸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단독확인했다. A씨의 사망 원인은 삼성서울병원에 있었다.

5년 전 발생한 국내 첫 혈소판 수혈환자 사망사건은 삼성서울병원의 의료과실이 원인이었다.[사진=연합뉴스]
5년 전 발생한 국내 첫 혈소판 수혈환자 사망사건은 삼성서울병원의 의료과실이 원인이었다.[사진=연합뉴스]

5년 전 터졌던 국내 첫 혈소판 수혈사망사고의 원인이 삼성서울병원의 ‘의료과실’에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특히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이 사망사고의 원인을 은폐하기 위해 증거를 없앤 정황도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사실은 피해자 A씨의 유족이 2014년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절차가 지난 7월 마무리되면서 드러났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단독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15민사부는 지난 7월 4일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서울병원에서 혈소판을 수혈 받았다가 사망한 A씨의 어머니에게 1억1213만4879원, A씨의 동생에겐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1심 결과에 불복하지 않았다. A씨의 사망원인이 삼성서울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참고: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서울병원의 운영주체다. 1982년 5월 37억원을 출자했다.] 

그렇다면 5년 전 삼성서울병원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계추를 2010년 6월로 돌려보자. A씨는 당시 ‘RCMD 골수이형성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이 증후군은 골수에 있는 ‘조혈모세포(골수조혈세포의 조상세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생기는 병이다. 이 때문에 A씨는 2013년 동생 C씨의 조혈모세포를 이식 받았고, 삼성서울병원으로 통원치료를 다녔다. 

사건은 그해 11월 13일 발생했다. A씨의 혈액검사 결과, 혈소판ㆍ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범위보다 훨씬 낮게 나오자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은 수혈을 결정했다. 병원 내 통원치료실에서 아빌(항히스타민제) 1앰플을 투약한 의료진은 혈소판과 농축적혈구를 차례로 수혈했다. 

문제가 터진 건 수혈 30분 후였다. A씨는 오열과 발열,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했다. 혈압은 뚝 떨어졌고, 체온은 39.4도까지 치솟았다. 원인은 황색포도알균 균혈증(MSSA) 감염이었다. [※ 참고:MSSA는 포도알처럼 생긴 포도알균 중에서 가장 심각한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다.] 

의료진은 부랴부랴 대응 조치를 취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로부터 9일 뒤, A씨의 심장은 싸늘하게 식었다. 항년 31세였다. 

단순한 사망사건이 아니었다. 2014년 3월 17일 질병관리본부가 작성한 ‘특정수혈부작용 조사 및 심의결과서’의 내용을 보자. “환자 혈액과 수혈백 내 혈액의 배양검사에서 황색포도알균이 확인됐다. 항생제 감수성 시험결과도 동일하다.” 수혈 받은 혈소판에 있던 세균이 A씨를 사망으로 몰아넣었다는 얘기다. 

이 사건은 질병관리업계를 뒤흔들 만한 빅이슈였다. 환자가 혈소판을 수혈 받다가 사망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관건은 “혈소판이 어디서 황색포도알균에 감염됐느냐”였다.

용의자는 둘로 좁혀졌다. 혈소판을 공급한 대한적십자와 혈소판을 수혈한 삼성서울병원이었다. 삼성서울병원은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농축혈소판제제를 공급받았다. 서로 다른 농축혈소판제제를 섞어 혼합혈소판제제를 만들었고, 이를 A씨에게 투여했다. 삼성서울병원 측은 대한적십자가 제공한 농축혈소판제제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고, 대한적십자사는 혼합혈소판제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황색포도알균에 감염됐을 것이라고 맞섰다.

안타깝게도 이 사건은 미제未濟로 남았다. 질병관리본부가 감염경로를 특정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구체적 오염경로 확인은 불가능함.” 혈액관리위원회 산하 수혈부작용소위원회의 결론도 같았다. “수혈부작용은 맞지만, 정확한 경로는 확인불가.”

혈소판 수혈환자 국내 첫 사망 

미제사건의 불똥은 유족에게 튀었다. 혈액관리법(제10조2항)에 따르면 수혈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기관은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보상금 지급 주체가 불명확해지자 A씨 유가족은 2014년 11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었다. 소송은 질기게 이어졌다. 삼성서울병원과 대한적십자사는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맞불을 놨고, 법원은 4년 만에 삼성서울병원의 책임으로 결론을 내렸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의 사용자로서 의료상과실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문제는 소송 과정에서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이 수혈감염 사망사고의 책임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려 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쏟아졌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대한적십자사가 보낸 농축혈소판 혈액백을 A씨에게 사용한 후 폐기해 버렸다. 황색포도알균이 어디에서 감염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내부규정을 어기고 스스로 없애버린 셈이다. 

삼성서울병원의 혈액은행은 우수검사실 인증을 받았다. 이 인증을 받기 위한 점검항목에는 수혈부작용 발생 했을 시 검사를 위해 환자 검체와 수혈한 혈액제제를 최소 7일간 보관하도록 돼있다. 농축혈소판 제제의 출고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도 재판과정에서 제시하지 않았다. 이는 병원 측이 혼합혈소판제제를 만들 때, 농축혈소판제제를 언제 개봉했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핵심 증거물인 혈액백 연결선도 폐기했다.

법원 “삼성서울병원이 배상하라”

사건에 참석한 한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혈소판 수혈로 인한 첫 사망사고란 점에서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야 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판단을 유보했고, 결국 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갔다. 대한적십자사가 농축혈소판 제제를 만드는 프로세스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게 밝혀졌다. 삼성서울병원 역시 똑같이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할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재판 중에 ‘병원 측에 불리한 증거라 의도적으로 은폐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던 이유다.”

삼성서울병원 측은 “할 말이 없다”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왜 버렸는지, 은폐를 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의료진에게 어떤 처벌조치를 내렸는지 등 질문에 “상의해본 결과 대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답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김정덕ㆍ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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