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상인들의 정말 추운 겨울

청계천 초입 광장에선 연말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화려한 루미나리에에 모여든 사람들을 보면 종로 상권도 활황일 것만 같다. 하지만 상인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모두가 “이렇게 어려웠던 적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치솟은 임대료,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종로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종로 상인들은 “연말특수는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종로 상인들은 “연말특수는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울 크리스마스 페스티벌’이 한창인 종로구 청계천. 날이 어둑해지자 대형 트리와 화려한 루미나리에가 붉을 밝힌다.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북적이는 걸 보니 종로 상권이 죽었다는 건 뉴스 속 이야기만 같다. 하지만 청계천 따라 먹자골목이 있는 젊음의 거리까지 900m를 걸어보니 불황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임대’ 종이가 나붙은 빈 상가가 수두룩했다. 목이 좋은 1층 상가는 물론 대형ㆍ소형 상가 할 것 없이 텅 비어있었다.

10~30년 된 가게가 장사를 접는 일도 다반사였다. 삼일교 앞 작은 골목에서 10년째 고깃집을 운영해온 김영순(56)씨는 두달 전 가게를 내놨다. 지난 5월부터 적자로 돌아서 매달 200만원씩 손해를 보고 있는데 더 버틸 재간이 없어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셋이서 일했지만 적자로 돌아선 후 혼자 장사하고 있다. 오후 6시에 나와 밤 10시까지 혼자 가게를 지킨다. 김씨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건넸다. “지난해만 해도 점심 손님을 70명씩 받았는데 요즘엔 30명도 채 오지 않는다. 오늘 점심에 15만원어치를 겨우 팔았다. 저녁 장사는 더 심하다. 오죽하면 30년 된 옆 국밥집마저 지난 9월 문을 닫았겠냐.”

장사를 접으려는 이들은 많은데 가게를 보러 오는 이는 드물다. 종로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종로 골목에서 10년 넘게 장사해온 옷가게 주인도 두손 들고 떠났다”면서 “권리금이라도 받으려고 버텼지만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포기하고 나갔다”고 말했다. 이렇게 상인들이 빠져나가면서 종로 상권의 공실률이 급증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종로의 상업용부동산 공실률은 2017년 4분기 11.0%에서 올해 3분기 20.3%로 증가했다. 서울 전체 평균 공실률 12.7%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 입을 모으는 상인들. 이들은 종로 상권의 몰락은 복합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금싸라기 땅인 종로의 콧대 높은 임대료가 문제다. 소규모 상가의 경우 임대료가 2015년 1분기 5만9590원(이하 1㎡당)에서 올해 3분기 6만4850원으로 8.8% 상승했다. 집합상가 임대료도 같은 기간 3만7700원에서 4만8610원으로 28.9% 뛰어올랐다.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마저 종로에서 발을 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은상 부동산도서관 대표는 “종로 임대료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종로구에 위치한 1층 상가 17개의 6~12월 임대료를 분석한 결과 단 한곳만이 16%가량 인하했다”고 설명했다.

사라진 연말특수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어떻게든 임대료를 내며 버텨왔지만 그마저도 어려울 만큼 장사가 안 된다는 점이다. 연말특수는 사라진 지 오래다. 경기침체 등을 이유로 송년회나 회식이 줄어든 것도 상인들에겐 말 못할 애로사항이다. 종로에서 4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온 박승준(64)씨는 “요즘엔 9시만 돼도 거리에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다”면서 “예전처럼 2~3차까지 술을 마시는 문화가 사그라지고 있어서 아니겠냐”고 말했다. 박씨의 가게 매출도 지난해보다 20~30% 감소했다.

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노점상들도 죽을 맛이다. 젊음의 거리 초입에서 꽃가게 노점을 운영하는 오혜진(45)씨는 다가오는 연말을 걱정했다. 요즘 분위기 같아선 대목인 연말에도 벌이가 시원찮을 공산이 커서다. 그는 “연말이 꽃 장사에겐 대목인데 지난주엔 밤 10시까지 5만원어치를 겨우 팔았다”면서 “날은 추워지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다”고 말했다.

종로 거리에는 ‘임대료’ 종이가 나붙은 상가가 수두룩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종로 거리에는 ‘임대료’ 종이가 나붙은 상가가 수두룩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실제로 직장인들 사이에선 회식이나 송년회를 간소화하는 추세가 자리 잡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 조사 결과, 63.5%만이 “연말 송년회를 할 계획이다”고 답했다. 이마저도 지난해보다 5%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대학 동기 모임을 나왔다는 직장인 이준형(46)씨는 “경기도 안 좋고 모임도 줄어드는 추세”라면서 “만나도 1차만 간단히 하고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라진 연말특수는 상인들의 생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24시간 감자탕집을 운영하는 박혜연(47)씨는 이렇게 말했다. “모임이 많은 11~12월에 장사를 해서 새해와 설이 있는 비수기(1~2월)를 나는 건데, 올해엔 11월에 장사를 거의 못했다. 12월은 그나마 나았지만 예전 같지 않다. 내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이다.”

부담에 또 부담…

최저임금 인상으로 높아진 인건비 부담도 상인들에게 부담이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새벽 장사를 접고, 아르바이트생을 줄이는 가게가 대다수다. 보신각 뒤편에서 20년째 호프집을 운영해온 나순영(65)씨는 올해부터 2시간 일찍 문을 닫는다. 아르바이트생도 4명에서 3명으로 줄였다. 나씨는 “대부분 가게가 어려워, 인건비를 줄이고 있다”면서 “커피 장사까지 40년간 종로에 있었지만 올해처럼 힘들었던 적은 없다”고 말했다.

유선종 건국대(부동산학) 교수는 “종로뿐만 아니라 많은 서울 도심상권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52시간제도 도입 이후 사람들의 삶의 패턴이 달라지고, 대규모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상권의 패러다임도 달라졌다. 기존 상인들은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졌는데, 임대료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종로 상권이 쇠락의 길을 가고 있다.” 종로 상권의 몰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종로 상인들만의 어려움도 아니다. 그래서 더 큰일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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