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놓인 신혼부부

“이렇게 집이 많은데 왜 내 집은 없을까.” 결혼을 앞둔 흙수저 A씨의 한탄이다. A씨는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지 오래라는 통계에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나마 ‘주거 복지’를 앞세운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믿었다. 실제로 신혼부부 특화 주택 정책은 많았다. 그런데도 A씨는 다시 한탄했다. “이렇게 정책이 많은데 왜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집은 없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흙수저 A씨를 만나봤다. 

신혼부부 특화 주택 정책은 많았지만, 정작 A씨가 신청할 수 있는 건 없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혼부부 특화 주택 정책은 많았지만, 정작 A씨가 신청할 수 있는 건 없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내 나이 서른다섯.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진 ‘헬조선’에서 내 계급은 ‘흙수저’란다. 아버지는 20년째 동일한 월급을 받고 대기업의 하청, 그 하청 기업에 자재를 납품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시다 지난해 그만두셨다. 자산이라곤 빚을 얹어 산 안산시 정왕동의 다세대 주택 한채 뿐이다.

넘치진 않아도 부족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금수저 물고 태어난 친구 B가 분기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걸 보면 내가 흙수저는 맞긴 한가보다. 그럼에도 나와 연년생 동생은 대학 졸업까진 무사히 마쳤다. 알뜰한 어머니 덕이다.

둘씩이나 뒷바라지하는 건 깨나 부담이었을 터. 손 벌리는 일 없게끔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서울 종로에 위치한 건실한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6년차 연봉은 3600만원이다. 적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민은 마음 놓고 지낼 ‘지상의 방 한 칸’이었다.

출퇴근 시간을 더하면 3시간이 넘는 탓에 처음엔 자취를 고려했다. 하지만 반지하방·옥탑방·고시원 등을 전전하고 싶진 않았다. 보증금 명목의 목돈 300만~1000만원은 당장 어디서 구하나.

그래서 ‘국민임대’ ‘행복주택’ 등 정부 공공임대주택을 노렸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가뜩이나 경쟁률이 치열한데 내 소득은 입주 기준인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70~80%(월 350만~400만원) 이하에 아슬아슬 걸쳐있는 탓이다.

힘들더라도 출퇴근을 하며 치열하게 일했다. ‘작지만 예쁜 집 하나’가 동력이었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고, 지난 4월 생일에 맞춰 청혼까지 했다. 집을 어떻게든 해오겠다며 큰소리쳤지만, 10년 전부터 아르바이트비로 차곡차곡 쌓은 청약통장은 쓸 데가 없었다. 정부의 ‘빚 내서 집사라’는 한마디에 폭등하기 시작한 서울 집값 때문이다. 여자친구도 집안에 손을 벌릴 형편은 못됐다.

다시 정부 정책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2016년 겨울 ‘촛불집회’에 매주 참석하다 정권이 교체됐을 땐 몸이 떨렸다. “집 걱정 없이 일하고 아이 키울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엔 큰 감명을 받았다.

실제로 신혼 특화용 주택 정책은 많았다. ‘영구임대 우선공급’ ‘국민임대 우선공급’ ‘행복주택’ ‘신혼부부매입임대리츠’ ‘신혼부부전세임대’ ‘분양주택 특별공급’ 등…. 그런데 연봉 3500만원의 여자친구와 소득을 합치자 우리는 신청할 수 있는 주택이 없었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120% 이하(월 600만원)가 최대 소득기준인데, 우리 둘의 연봉은 이걸 넘어섰다.

인천시 서구에 위치한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했다. 수도권 지역임에도 2억원대 중후반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이다. 계산해보니 여자친구와 내가 모은 현금 6000만원을 더해 대출을 받으면 양가 부모님께 용돈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있었다. 금리가 2.00~3.15%인 주택금융공사의 ‘디딤돌 대출’을 활용하면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소득 기준이 문제가 됐다. 둘이 합쳐 ‘연봉 7000만원 이하(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이 경우)’만 신청이 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그보다 금리가 3.30%로 높은 ‘보금자리론’을 신청했다. 나는 여자친구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집 구하기 참 힘들다며. 때마침 금수저 친구 B에게 문자가 왔다. “너 요새 집 구한다며. 나 이번에 위례 신혼희망타운에 신청했는데, 너도 한번 해봐. 여기 조건이 괜찮아.” 진작에 알아봤다. 하지만 우리는 소득 기준도 못넘고, 대출을 최대한 받아도 1억3260만원의 현금이 필요했다. 황당하게도 금수저의 조건은 모든 기준에 부합됐다. 세상 참 아이러니하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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