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더 씬 레드라인❹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 전체의 지배권을 놓고 격돌한다. 일본은 호주에 인접한 작은 섬 과달카날을 점령해 비행장을 건설하고 호주를 공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연합군은 이를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남태평양의 작고 아름다운 섬에서 벌어진 ‘과달카날 전투’는 수만명의 사망자를 남긴 가장 끔찍했던 전투로 기록됐다.

죽음의 외주화가 진행되는 대한민국은 오늘도 전쟁 중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죽음의 외주화가 진행되는 대한민국은 오늘도 전쟁 중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미군 통수권자 루스벨트 대통령과 참모총장 마샬 장군은 당연히 과달카날 섬 수복 결정을 내린다. 퀸타드(존 트라볼타 분) 소장은 항공모함 해군부대를 이끌고 과달카날 해역에 도착해 톨(닉 놀테 분) 대령을 불러 수복 작전을 맡긴다. 퀸타드 장군은 원청업자이고 톨 대령은 하청업자인 셈이다.

톨 대령은 병력을 이끌고 과달카날 섬에 상륙해 다시 스타로스(엘리어스 코티스 분) 대위에게 일본군 진지 공격을 지시한다. 스타로스 대위는 재하청업자가 된다. 스타로스 대위는 다시 웰시(숀펜 분) 상사에게 선봉을 맡긴다. 재재하청업자가 된다. 결국 소총 한자루 달랑 들고 일본군 진지에서 비 오듯 퍼붓는 기총소사를 뚫고 능선을 오르다 죽어가는 사람은 일반 사병들이다. 톨 대령은 멀찌감치 떨어진 미군 진지에서 무전기로 재하청업자 스타로스 대위에게 빨리 총공격을 감행하라고 고함을 질러댄다.

톨 대령의 머릿속에는 오직 상급 하청업자 퀸타드 장군만 있을 뿐 재하청업자 스타로스 대위와 그의 직원인 웰시 상사나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관심 밖이다. 그들 모두 죽어도 오직 일본군 진지 점령이라는 과업을 수행만 하면 된다. 그래야 퀸타드 장군의 총애와 높은 평가를 받아 승진이 가능하다. 그렇게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가 착착 진행된다.

과달카날 섬 수복계획을 세운 ‘구매자’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마샬 참모총장이 전투에서 죽을 위험은 없다. ‘원청업자’인 퀸타드 소장 그리고 ‘하청업자’인 톨 대령의 죽을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 죽어 나가야 하는 것은 재재하청업체 팀장 격인 웰시 상사와 그의 팀원인 일반 사병들이다. 결정은 그들의 몫이고 죽음은 나의 몫인 것이다.

전쟁에서 결정은 통수권자가 하지만 죽음은 일반 사병들의 몫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전쟁에서 결정은 통수권자가 하지만 죽음은 일반 사병들의 몫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열악한 작업환경에 직원들이 모두 죽게 생긴 재하청 업체 사장 스타로스 대위가 상급 하청업제 사장인 톨 대령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능선을 우회해서 일본군 진지를 공격하겠다고 한다.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서 이러다 우리 직원들 모두 과로사하게 생겼으니 납기일을 조금 늦춰달라는 호소다.

톨 대령은 무전기에 대고 미친 듯 고함을 치다 직접 철모를 쓰고 현장까지 쫓아와 스타로스 대위를 비겁자로 몰아붙이고 정면돌파를 명령한다. “너희 모두 죽어도 납기일을 지키라”고 한다. 그렇게 스타로스 대위와 웰시 상사의 병사들은 능선에서 수없이 죽어 나간다. 그들의 목숨을 챙겨주는 것은 그들의 목숨을 챙겨줄 권한이 없는 팀장인 웰시 상사밖에 없다.

수많은 병사들의 시체를 뒤로하고 일본군 진지 점령에 성공한 톨 대령은 그제야 안도하고 만족한다. 처참하게 나뒹구는 병사들의 시신에 ‘조금’ 미안하기는 한 표정이다. 그리고 재하청업자 스타로스 대위를 즉각 잘라버린다. 스타로스 대위가 잘려 본국 법무관실로 ‘좌천’되고 새로운 중대장 찰스 보시(조지 클루니 분) 대위가 현장에 투입된다.

오늘도 하청업체, 재하청업체 직원들의 억울한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사진=뉴시스]
오늘도 하청업체, 재하청업체 직원들의 억울한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사진=뉴시스]

신임 보시 대위는 웰시 상사를 비롯한 중대원들을 도열시키고 취임사 겸 일장 훈시를 한다. “우리는 한 가족이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보시 대위의 영혼 없는 훈시를 듣던 웰시 상사가 얼굴 가득 냉소를 머금고 독백한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어느 가장이 자기 승진하자고 가족들을 사지로 몰아넣고는 가족들의 시신 앞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겠는가.

오늘도 하청업체, 재하청업체 혹은 재재하청업체 직원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끼어 죽고, 지게차를 몰다 죽고, 가스가 터져 죽는다. 모든 위험과 죽음은 그들의 몫이다. 과달카날 섬의 이등병 같은 젊은이들이다. 과업 완수만을 생각하는 구매자나 원청업체 사장들은 그들의 죽음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책임도 없다고 한다.

과업 달성의 영광만이 그들 몫이다. 죽어가는 젊은이들에게는 흔한 노조의 보호도 없다. 그들의 목숨 값은 ‘달랑’ 50만원이다. ‘죽음의 외주화’가 진행되는 대한민국은 오늘도 전쟁 중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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