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4일, 그날에 숨은 비밀

2017년 10월, 정부는 ‘11월 국채매입(바이백ㆍBuy back)’ 계획을 예고했다가 돌연 취소했다. 그것도 바이백 예정일 전날이었다. 정부의 이례적이면서도 급작스러운 결정. 이 일로 채권시장이 들썩였다. 정부 곳간에 돈이 없는 게 아니냐는 의혹에서였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당시의 일을 “황당한 경험”이라고 털어놨다. 채권시장에서만 알려졌던 이 일이 최근 빅이슈가 됐다.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의 폭로를 통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시계추를 2017년 11월 14일로 돌려봤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에 의해 바이백 취소 사건이 다시 불거졌다.[사진=연합뉴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에 의해 바이백 취소 사건이 다시 불거졌다.[사진=연합뉴스]

2017년 10월 26일.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그해 11월 국고채 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보도자료엔 국채 매입(바이백ㆍBuy back) 계획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11월 15일로 예정됐던 1조원어치의 바이백은 하루 전인 14일 전격 취소됐다. 당시 채권시장에선 한목소리로 “전례 없는 일”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기재부는 “자금관리 미스매치 때문” “세수관리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만 밝힌 채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채권시장에선 “정부에 자금이 없는 것 아니냐” “추후 바이백 계획도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이 논란은 기재부가 이후 예정된 바이백을 계획대로 진행하면서 잠잠해졌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2018년 12월 30일,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청와대가 국가부채 비율을 높이기 위해 적자국채 발행을 강요했다”고 주장하면서 ‘바이백이 취소된 그날’이 다시 부각됐다. 신재민 전 사무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다음과 같다. “집권 1년차였던 문재인 정부는 초과세수가 14조원 더 걷혀 있음에도 국가부채를 줄이기는커녕 되레 예정된 바이백을 취소했다. 막대한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국채 발행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 참고 : 바이백은 국가부채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다만, 바이백과 동시에 국채를 재발행하면 국가부채는 줄지 않는다.]

신 전 사무관은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향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는 증가할 수밖에 없고, 비교 대상이 될 기준점은 박근혜 정권 교체기인 2017년이다. 그러니 이 시기에 국가채무비율을 낮추면 향후 문재인 정권에 부담이 된다고 판단한 거다.”

 

기재부는 즉각 반박했다. “당초 2017년 국채 발행계획은 28조7000억원, 11월까지 발행된 국채는 20조원이다. 8조7000억원의 국채 발행 여유분이 생겼고, 이때 세수도 많으니 추가발행을 하지 말자는 의견과 4조원의 국채를 추가발행하자는 의견이 대립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추가 국채 발행이 없었다. 무슨 압력이 있었다는 건가.”

진실은 당사자만이 알겠지만 여러 변수를 고려하면 양측 주장 모두 되짚어 볼 만하다. 2013~2016년 박근혜 정부 4년간 발행한 적자국채 규모는 136조1000억원. 5년간 96조5000억원을 발행한 이명박 정부 때보다 1.4배나 많은 규모였다. 2016년 GDP 대비 국가부채는 38.3%였다. 2008년(28.0%) 대비 10.3%포인트나 올랐다.

그러자 언론에선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쏟아졌다. 재정건전성이 훼손되고 있는 만큼 세출을 통제할 수 있는 올바른 재정준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 것도 그 무렵이다. “증세 없는 복지를 한다더니 결국 빚만 늘어난 것 아니냐”는 여론도 들끓었다. 국채는 국민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촛불 정국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라’는 목소리를 외면하긴 쉽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신 전 사무관의 주장처럼 적자부채를 발행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집권 첫해에 국가부채 비율을 떨어뜨려놓으면 재정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기 어렵다.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반대로 국가부채 비율이 높으면 낮추는 작업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그렇다면 현 정부의 성과로 홍보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2017년 5월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정부가 굳이 박근혜 정부와 공존했던 그해에 국가부채를 떨어뜨릴 이유는 사실상 없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부채비율을 낮추면 문재인 정권 내내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신 전 사무관의 주장과 궤를 함께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바이백 취소’다. 누가 뭐래도 이는 팩트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바이백과 동시에 같은 액수의 국채를 재발행하면 국가부채 비율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정부는 만기연장 혹은 만기도래의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바이백과 동시에 국채를 재발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바이백을 취소하는 건 다른 문제다.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바이백은 국가부채 감소로 이어지지 않지만, 바이백 취소는 예정된 빚 탕감을 진행하지 않은 것이어서 국가부채를 사실상 늘린 거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더구나 정부는 ‘바이백의 취소’를 바이백이 예고돼 있던 바로 전날 알렸다. 뭔가 급하게 결정됐다는 방증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급한 결정 탓인지 바이백이 취소된 그날(11월 14일) 채권시장은 격하게 출렁였다. 14일 3~10년물 채권금리는 13일과 비교해 적게는 0.027% 많게는 0.032% 올랐다. 그만큼 채권가격은 떨어졌다는 얘기다. 채권시장은 금리가 0.01%만 움직여도 수십억 혹은 수백억원이 오락가락하는 곳이다.

익명을 원한 채권 딜러는 “전례가 없는 황당한 경험이었다”면서 당시를 회상했다. “바이백 취소로 인해 일시적이지만 국고채 매도가 이어졌다. 매도가 매도를 부르는 상황이 되면서 채권가격이 급락했다. 그때 국채를 매입해서 이익을 본 이들도 있겠지만, 단기 트레이딩 관점에서 보면 그날 투자자들은 큰 타격을 봤을 거다. 한국 정부의 신뢰도 떨어져 상당수의 외국인들은 손절하고 시장을 떠났다.”

바이백 취소 의혹은 문재인 정부가 적극 해명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바이백 취소 의혹은 문재인 정부가 적극 해명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 국채를 가장 많이 들고 있는 기관은 공교롭게도 국민연금공단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민연금공단의 국채 보유액은 약 127조원이다. 이 중 일부는 운용사 딜러에게 맡겨 간접 운용한다. 따라서 국민연금공단도 그날 손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채권 딜러는 “국민연금공단도 손해를 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사실이라면 정부의 이례적인 결정에 국민 전체가 타격을 입었다는 얘기가 된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특정 일자의 손익을 분석할 수도 없고, 이는 기금운용 투자전략에 해당해 대외적으로 밝히기도 어렵다”고 일축했다.

기재부는 신 전 사무관이 공무상 얻은 비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그를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하지만 정부는 바이백을 갑작스럽게 취소한 이유, 신 전 사무관의 입에서 폭로가 쏟아진 배경 등은 속시원하게 밝히지 않았다. 특히 바이백 취소의 절차와 배경은 꼼꼼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17년 11월 14일,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정덕ㆍ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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