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는 무엇을 막으려 했나

 
경인방송 The Scoop가 CJ그룹이 제기한 ‘출판물배포등금지가처분소송’에서 8월 29일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제51민사부(강승준 부장판사)는 “The Scoop의 ‘Guilty or Not-CJ 폭행 미스터리’ 기사(8월 6일 발행)는 사실에 부합하는 사정들을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CJ가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가 요약한 해당 기사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성기와 CJ 이재현 회장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이성기는 CJ 또는 이재현 측이 사주한 조직폭력배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CJ 측이 이를 무마하기 위해 이성기에게 사업을 제안했다.”

CJ는 8월 10일 “The Scoop가 보도한 ‘CJ 폭행 미스터리’ 기사는 이재현 회장에 대한 허위사실로, CJ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The Scoop와 경인방송 홈페이지에 게시된 기사를 삭제하고, SNS에 게재하거나 라디오ㆍ인터넷방송매체를 이용해 관련 내용을 방송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CJ는 아울러 The Scoop와 경인방송 홈페이지에 기사를 게재하거나 카카오톡ㆍ페이스북ㆍ트위터 등 SNS에 게재 또는 업로드하면 1일당 5000만원, 출판물(인쇄물)이나 라디오ㆍ인터넷방송매체에 관련 내용을 게재 또는 방송하면 1회당 5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CJ 폭행 미스터리 기사는 사실에 부합하는 사정들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개제 내용에 대해 진실이라는 증명이 없더라도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결정했다. 또한 “이 기사가 통상적인 언론보도의 범위를 벗어나서 CJ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지도 않다”며 “(기사를 삭제하거나 방송을 금지하는 등의) 가처분을 내릴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CJ는 가처분소송을 제기하면서 “CJ 폭행 미스터리 기사에서 공공의 목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CJ는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사회ㆍ경제적 영향력으로 볼 때 공적존재에 해당한다”며 “이 기사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공적 관심사안에 속한다”고 결정했다.

The Scoop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디.엘.에스의 이성희 변호사는 “대기업의 (기사를 빼달라는) 요청을 수용하지 않고 작성된 기사를 존중한 상징적인 결정”이라며 “한화 김승연 회장의 구속 이후 사법부가 대기업의 자본권력을 감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번 가처분소송의 결과는 13년째 풀리지 않고 있는 ‘CJ 폭행 미스터리’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The Scoop는 ‘Guilty or Not-CJ 폭행 미스터리’ 제하의 기사에서 이재현 회장 측이나 CJ 고위층이 시민 이성기씨에 대한 청부폭행을 지시했을 가능성에 대해 보도했다. 이재현 회장과 경복고 동기동창인 이씨는 조폭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98년 이재현 회장의 부친 이맹희씨에 대한 악성루머가 떠돌았다. 그 사실을 이 회장에 알려주려 했다. 그런데 되레 내가 그 소문을 퍼트린 주범으로 오해를 받은 것 같다. 그날 이후 검찰의 ‘주계장’이라는 사람이 내 주변인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벌였다. ‘마약을 하는 걸 아느냐’ ‘옛날에 조폭이었던 걸 아느냐’는 식이었다. 이 수사로 (당시 운영하던) 스포츠센터의 매출이 크게 떨어졌다. 검찰에 따졌더니 CJ에서 투서를 했다고 하더라. CJ 비서실에 전화해서 항의를 했다. 그 직후 조폭 J씨가 찾아왔고, 폭행이 시작됐다.” 이씨는 “1998년 말부터 2000년 4월까지 총 여섯 차례에 걸쳐 집단폭행을 당했다”며 “나를 때리는 조폭들은 그때마다 ‘이재현 회장님 잘못했습니다’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참고: The Scoop 통권 5호 10~14쪽]

CJ 측은 “이재현 회장은 절대 폭행을 지시한 적 없다”면서도 CJ 고위층이 지시했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았다. 복수의 CJ 관계자는 그 고위층으로 ‘이성기씨가 폭행을 당한 1998~2000년 당시 비서실장 K씨’를 지목했다.

The Scoop의 보도가 나가기 전까지 이씨가 CJ 또는 이 회장 측이 사주한 조폭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씨는 “13년 동안 수없이 많은 기자를 만났지만 기사가 단 한 줄도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이 비교적 자세하게 담긴 유일한 곳은 ‘팩트올’이다. 팩트올은 주요 일간지 경력 15년 이상의 현직 기자들이 뜻을 모아 만든 비非영리언론기관이다. 팩트올은 이 사건을 다룬 ‘팩션(Faction)’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를 연재하고 있다. 경인방송 The Scoop의 기사가 나간 뒤 팩트올은 이런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FACTION |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의 주인공 김정태를 연상시키는 사람은 시민 이성기씨다. 그는 8월 6일 인쇄된 경인방송의 경제주간지 The Scoop에 실명과 이름을 공개했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가 그리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김정태가 우연히 알게 된 재벌가의 진실, 이후 김정태에게 가해지는 잔인한 폭행, 그리고 힘없는 한 시민의 호소를 외면하는 수사기관의 부도덕성이다.”

The Scoop는 ‘CJ 폭행 미스터리’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내용을 남겼다. “…13년 동안 수면 아래 있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아직도 밝혀져야 할 것이 많다.…” 이 글은 아직도 유효하다. 사법부가 더 큰 물꼬를 텄다.

이윤찬 기자 chan4877@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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