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신도시 남양주 왕숙지구에 무슨 일이…

토지 소유주들은 불법으로 창고를 짓고 임대업을 했다. 농지법상 허용된 창고는 동식물 관련 시설이었는데,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자체는 이런 불법창고에 ‘이행강제금’을 부과해야 하지만, 수년 동안 눈을 감았다.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경기 남양주시 왕숙지구의 이야기다. 대체 무슨 일일까. 이게 남양주시만의 문제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남양주 왕숙지구 불법창고에 숨은 비밀을 취재했다. 

남양주시와 왕숙지구 토지주들, 창고 세입자는 모두 불법적인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다.[사진=연합뉴스]
남양주시와 왕숙지구 토지주들, 창고 세입자는 모두 불법적인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다.[사진=연합뉴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바뀌면 해당 지역에 땅을 가진 사람들은 반기게 마련이다. 거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건 개발을 할 수 있다는 뜻이고, 개발은 경제적 이득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아서다. 지난해 12월 19일 국토교통부가 공공택지 조성을 위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던 수도권 7개 지역(경기 남양주ㆍ하남ㆍ과천ㆍ부천ㆍ성남ㆍ고양ㆍ인천 계양 등 7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자 해당 지역 부동산 시장이 꿈틀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지정에 포함된 지역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은 경기도 남양주 왕숙지구(1134만㎡ㆍ약 343만평)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인근 커피숍들에선 부동산 중개업자와 투자자 간 미팅이 눈에 띄게 늘었다. 왕숙지구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왕숙지구의 제한이 풀렸으니 인근의 일정 지역까지 그린벨트 해제가 확장되는 건 시간문제”라면서 “GTX 노선이 들어설 지역이나 도로에 인접한 토지를 중심으로 투자하려는 이들이 꽤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정작 왕숙지구 토지주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그들은 ‘신도시 지정 철회’ ‘토지 수용 반대’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강한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일부 토지주는 3기 신도시 계획이 발표된 직후 남양주시청 앞에서 시장 면담을 요구하면서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이 지역 토지주 단체인 ‘남양주 개발제한구역 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그간의 공공주택지구 토지 보상 사례들을 보면 대부분 헐값에 토지가 수용됐고,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신도시 지정을 철회하고, ‘훼손지정비사업 제도’를 개선해서 이 지역을 수도권 물류지역으로 키우는 게 훨씬 낫다”고 주장했다. 보상계획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요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훼손지정비사업’의 개선 요구는 또 뭘까. 

 

이 질문의 답을 풀기 위해선 왕숙지구 핵심 지역인 남양주 진건읍 신월리 일대의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왕숙지구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 지역에도 온갖 물류창고가 들어서 있다. 창고 외벽 곳곳엔 임대 딱지와 함께 연락처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토지주들이 그린벨트에 창고를 지어놓고 (창고)임대업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해당 창고를 제조공장으로 이용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왕숙지구, 불법 창고 수두룩

문제는 이런 창고 대부분이 불법이라는 점이다. 그린벨트 지역은 지목이 주로 전이나 임야로 지정돼 있어서 원칙적으로는 집이나 상업용 건물을 지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지역은 어떻게 물류창고 단지가 된 걸까. 

한 토지주 A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땅은 농사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 늙은 몸으로 어찌 농사를 짓나. 물론 일부는 농사를 짓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돈이 된다니까 동식물 관련시설 용도(농지법상 허용된 창고 등)로 허가를 받아 창고를 지은 다음 개조해서 임대를 준다.”[※참고 : 더스쿠프(The SCOOP) 취재에 따르면 A씨와 달리 농사도 짓지 않는 것은 물론, 수년 전 토지를 구입해 창고임대업만 해온 이들도 부지기수다.] 

그들은 이런 행위가 불법인 걸 모를까. 당연히 알고 있다. 토지주들은 3년 전부터 국토교통부에 “그린벨트 지역에 대한 재산권 행사가 제한적인 만큼 창고임대업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이게 바로 ‘훼손지정비사업 제도 개선’ 요구인데, 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합의화 관련 협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A씨는 “당초 불법건축물에 해당하는 벌금부터 내고 영업을 시작하는데, 불법인 걸 모를 리 있겠는가”라면서 “남양주시에서도 득 보는 게 있으니 눈 감고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주장했다. 

남양주시청의 농업정책과 관계자도 “창고를 동식물 관련 시설로 사용하지 않고 불법으로 임대하는 창고가 많다는 걸 알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토지주들이 불법으로 계속 사용하라고 눈을 감아준 건 아니고, 규정에 따라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매년 3개월간 각 읍면동에서 농지이용 실태조사를 한다. 토지를 농사용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토지를 처분하라고 통지한다. 이를 안 지키면 이행강제금(3.3㎡당 공시지가의 20%)도 부과한다.”

남양주 왕숙지구엔 불법창고가 수두룩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남양주 왕숙지구엔 불법창고가 수두룩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신월리의 공시지가는 3.3㎡(1평)당 대략 5만~50만원선이다. 창고 1곳이 보통 210㎡(약 70평)라는 점을 감안하면 토지주는 창고 1곳당 적게는 231만원, 많게는 231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시청에 물어냈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4년간(2015~2018년) 남양주시 측에 이행강제금을 납부한 신월리 토지주는 단 한명도 없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이렇게 해명했다. “농지법이 제정된 게 1996년이지만, 종전엔 표본조사를 했기 때문에 실태 파악이 제대로 안 됐다. 2017년 ‘농지 불법전용 실태조사’를 실시한 이후 전수조사를 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행강제금을 물리려면 약 1년의 유예기간이 소요되고, 토지주가 변호사 등을 선임해 처분이 부당하다고 소송을 걸면 이행강제금 추징이 중단된다. 이런저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해명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남양주시가 농지 불법전용에 따른 이행강제금을 20년 넘도록 제대로 부과하지 않았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남양주시가 눈을 감아주자 토지 소유주들은 이를테면 벌금을 내지 않았고, 이런 은밀한 불법적 공생관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신도시 지정 발표는 공생관계를 깨뜨리는 폭탄이나 다름 없었다. 토지 소유주들이 남양주시청을 항의 방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런 공생관계가 남양주시에만 있느냐는 거다. 왕숙지구에서 불법창고를 빌려 사업을 해온 영세사업자들은 “그린벨트가 택지지구로 지정될 때마다 메뚜기처럼 옮겨 다녔다”면서 “불법창고는 남양주시에만 있는 게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외곽으로 자꾸 벗어나고 이사하는 게 힘들지, 갈 곳은 또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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