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 회장의 첫 관문

“매출 10조원 사업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다.” LG전자 스마트폰 사업 얘기다. 피처폰 시절 큰 인기를 모았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그간 변화를 꾀해보겠다며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았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주변에서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핀잔까지 듣고 있다. 40대 젊은 총수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첫번째 과제다. 과연 구 회장은 무너진 LG 스마트폰의 새로운 구심이 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그 답을 찾아봤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해결 과제로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의 부진이 꼽힌다.[사진=연합뉴스]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해결 과제로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의 부진이 꼽힌다.[사진=연합뉴스]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은 심심찮게 매각설에 오르내렸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2000년대 후반 LG전자는 노키아ㆍ삼성전자와 함께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 3강 체제의 한축이었다. 지금 지위는 다르다. 삼성ㆍ애플 등 양강 체제에 밀리고, 중국 업체에 추격을 허용하면서 5위권 바깥으로 떠밀렸다.

실적은 더 처참하다. 3년째 적자 행진이다. 이 때문인지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 사업본부를 재편할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MC사업본부의 수장을 교체한 건 그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이를 주도한 건 구광모 LG그룹 회장이다. LG전자 상무였던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5월 아버지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 지 40일 만에 그룹 지주회사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구 회장의 첫 그룹 정기인사의 교체폭은 크지 않았다. 대표이사 부회장단이 모두 유임됐고, 핵심계열사 LG전자의 사업본부장 대부분이 자리를 지켰다. MC사업본부만은 달랐다. 1년간 본부장을 맡았던 황정환 부사장은 낙점을 받지 못했고, 권봉석 홈엔터테인먼트(HE) 사업본부장(사장)이 ‘겸직’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권 사장으로선 가전과 스마트폰 사업을 모두 담당하게 된 셈인데, 사업본부장 겸임은 LG전자 최초다. 그만큼 기대도 남다르다. 권 사장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로 LG전자 가전사업을 세계 최고로 바꿔놓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LG전자 스마트폰도 세계 최고로 만들자는 구광모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업계 반응은 신통치 않다. LG전자 MC사업부의 리더 자리는 ‘잘나가는 LG맨’도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간 MC사업본부장을 맡았다가 밀려난 안승권 LG사이언스파크센터장, 박종석 전 LG이노텍 사장, 조준호 LG인화원장 등은 뛰어난 리더십으로 오너 일가의 신뢰를 한몸에 받던 인물들이다. 이 때문에 LG전자 MC사업본부의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MC사업본부가 LG전자의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한 것도 사실이다. MC사업부의 부실이 LG전자의 실적을 갉아먹고 있어서다. 2016년엔 LG전자 전체 영업이익(1조3378억원)과 맞먹는 적자(-1조2181억원)를 냈고, 2017년에도 LG전자 실적의 29.1%를 깎았다. 

11일 출시를 앞둔 신제품 ‘Q9’을 둘러싼 시장 반응도 싸늘하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적용된 디자인과 편의 기능, 대화면을 갖추고 가격을 대폭 낮췄음에도 흥행을 점치는 목소리는 많지 않다.

이런 면에서 구 회장으로선 MC사업부의 정상화를 당면과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를 매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부실이 전이되는 걸 이젠 차단하자는 논리에서다. 나쁜 선택은 아니다. 200 4년 IBM은 PC사업을 중국 레노버에 매각하고, GE가 100년 넘게 보유했던 가전사업부를 하이얼에 매각했다. 몸집을 줄인 IBM은 글로벌 IT기업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내성耐性을 확보했다. 

문제는 구 회장의 선택지가 생각보다 좁다는 점이다. 글로벌 IT 기업 고위 임원의 설명이다. “스마트폰은 당장 4차 산업혁명의 허브로 꼽힌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는 전장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 매각을 결정하는 것도, 차분하게 몸집을 줄이는 것도 쉬운 선택이 아니란 거다. LG전자 MC사업부의 몸은 비대해졌다. 설비와 연구ㆍ개발(R&D)에 막대한 비용을 쏟았다. 투자를 줄이거나 멈추는 사이 언제 또 모멘텀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 스마트폰의 영향력을 얕봤다가 격차가 벌어진 뼈아픈 과거가 있지 않나.”

관건은 대규모 적자를 인내하며 스마트폰 사업을 유지할 여력이 얼마나 있느냐다. 그간 LG전자는 다른 사업부가 실적을 내며 떠받쳐 왔다. 2018년 역시 역대 최대 실적을 점치는 중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LG전자 실적 전망이 예사롭지 않다. 최근 한달간 증권가는 LG전자의 목표주가를 일제히 낮췄다. 미래에셋대우(9만9000원→8만9000원) DB금융투자(9만원→8만원) 삼성증권(9만5000원→8만5000원) KTB투자증권(10만원→9만원) NH투자증권(9만원→8만3000원) 등이 대표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IT 수요가 지금처럼 넘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면서 “스마트폰 사업을 둘러싼 시장의 불신도 크다”고 점쳤다.

구광모가 오른 첫 시험대

이럴 때일수록 오너의 전략적 판단과 결단력이 중요하다. 구광모 회장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의 2019년 신년사를 통해 선택점을 추론해보자. “대표에 오른 후 LG가 쌓아온 전통을 계승ㆍ발전시키는 동시에 더 높은 도약을 위해 변화할 부분과 LG가 나아갈 방향을 수없이 고민해 봤지만, 답은 고객에 있었다. 우리 안에 있는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라는 기본 정신을 다시 깨우고 더욱 발전시킬 때다.”

구 회장은 그룹 경영 방침의 핵심을 ‘고객 중심’으로 정한 모양새다. 하지만 B2C 계열사가 많은 LG그룹이 고객을 강조하는 건 새삼스러운 메시지가 아니다. 여전히 구 회장의 비전과 리더십은 베일에 싸여 있다는 얘기다. 경쟁에서 밀리면 순식간에 ‘고객’에게 잊히는 게 요즘 스마트폰 시장의 추세다. MC사업부의 재건이 구 회장의 첫 시험대인 이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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