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더 씬 레드라인 ❺

‘씬 레드라인(thin redline)’이란 말의 기원은 1853년 당시 세계 최강이던 오스만 튀르크 제국과 영국ㆍ프랑스 연합군이 혈전을 벌인 크림전쟁(Crimean War)에서 비롯됐다.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던 붉은 제복을 입은 영국군이 오스만 대군에 맞섰다. 중과부적한 붉은 제복의 영국군 형세는 멀리서 보면 마치 ‘가느다란 붉은 선(thin redline)’처럼 보였다고 한다.

한 몸속에 붙어있는 천사와 악마 사이의 경계는 ‘씬 레드라인’처럼 아슬아슬하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한 몸속에 붙어있는 천사와 악마 사이의 경계는 ‘씬 레드라인’처럼 아슬아슬하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그 ‘가느다란 붉은 선’은 기적처럼 무너지지 않고 쓰나미같이 밀려드는 오스만 대군을 막아냈다. 그 이후 ‘씬 레드라인’은 그것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장나는 최후의 저지선이자 가장 위태로운 경계선을 의미하게 됐다. 동시에 가장 무너지기 쉬운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뜻하기도 한다. 그 의미를 담아 씬 레드라인은 미국 소방서의 상징이자 소방대원들의 정신으로 자리잡게 된다. 불길은 거대하고 소방 호스는 너무나 미약하다. 그러나 소방대원들이 거대한 불길을 ‘지금, 이 지점에서’ 막아내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 된다.

테렌스 맬릭 감독은 그의 기념비적 반전反戰 영화인 더 씬 레드라인을 통해 선과 악, 그리고 전쟁과 평화를 대비시킨다. 태평양 전쟁 중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탈영병이 된 내레이션의 주인공 로버트 위트(짐 카비젤 분) 일병은 모두가 선善하고 365일 모든 것이 평화스러운 지상낙원과 같은 태평양의 외딴섬에서 숨어지낸다. 그러나 결국 웰시(숀 펜 분) 상사에게 발견돼 과달카날 전투에 투입된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순간 이동한 것이다. 평화에서 전쟁으로, 그리고 선에서 악惡으로의 순간 이동이다. 

‘씬 레드라인’은 1853년 크림전쟁 때 영국군의 붉은 군복을 빗댄 말에서 비롯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씬 레드라인’은 1853년 크림전쟁 때 영국군의 붉은 군복을 빗댄 말에서 비롯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위트 일병은 지옥 같은 과달카날 전투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본군을 죽이면서 독백한다. “나는 강간보다 더 끔찍한 죄를 저지른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느끼지도 못한다.”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다가 전장 가득 처참한 모습으로 나뒹구는 미군과 일본군의 시체를 보면서 위트 일병은 ‘무서운 진실’을 깨닫는다.

맬릭 감독은 위트 일병의 입을 빌려 그 무서운 진실을 발설한다. “빛과 어둠은 본래 하나였던 것처럼 선과 악도 본래 한 몸이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모두 가족과 친구, 연인이 있는 선하고 평범한 인간들이 그렇게 끔찍한 악마들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선과 악은 결코 멀리 떨어진 섬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한 몸 속에 선과 악이 서로를 맞대고 있다. 그것을 가르는 경계선은 보일 듯 말 듯하고 너무나 미약해서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씬 레드라인일 뿐이다. 전쟁의 유혹은 항상 쓰나미처럼 몰려드는 오스만 제국의 대군과 같고, 서너 명의 소방관을 덮치는 거대한 불길과 같이 압도적이다. 평화를 지키려는 목소리는 씬 레드라인처럼 너무나 애처롭다.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에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600명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냈던 아이히만의 재판정에 희생자의 가족이었던 한 여인이 나와 방청하다 아이히만이 재판정에 들어서는 순간 기절한다. 모두가 그의 악마의 모습에 기절했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정신이 돌아온 여인은 아이히만이라는 악마의 모습이 너무나 ‘평범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기절했다고 말한다.

천사와 악마 사이의 경계는 ‘씬 레드라인’처럼 위태롭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천사와 악마 사이의 경계는 ‘씬 레드라인’처럼 위태롭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그렇게 악은 너무나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아이히만은 학살을 저지를 당시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었던 히틀러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는 평소엔 매우 ‘착한’ 사람이었으며, 인간관계에서도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었다고 기록된다. 그는 재판정에서 유대인 학살 업무수행 과정에서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고, 자신이 받은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아마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는 법정 진술을 남긴다.

과달카날섬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였던 모든 병사들도 결국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업무에 충실했던 또 다른 ‘아이히만’들이었던 셈이다. 천사와 악마가 한 몸 속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우리의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살아가는 나의 이웃 모두가 언제든지 악마가 될 수 있다. 한 몸 속에 붙어있는 천사와 악마 사이의 경계는 씬 레드라인 처럼 아슬아슬하다. 그것이 무너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고 조심할 뿐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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