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행위로 목소리 내는 시대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에게 막말을 한 대가였다. 신 전 사무관의 말과 무관하게 국민들은 ‘먼 산 불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 욕설의 뜻이 담긴 ‘18원 후원금’을 손 의원의 후원계좌에 쏟아 넣었다. 국민들이 경제행위를 통해 목소리를 낸 셈이다. 바야흐로 경제와 흥미롭게 놀면서 비판하는 시대가 열렸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국민의 달라진 경제학을 취재했다. 

신재민 전 사무관을 향한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은 도가 지나쳤다는 지적이 많다.[사진=연합뉴스]
신재민 전 사무관을 향한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은 도가 지나쳤다는 지적이 많다.[사진=연합뉴스]

새해 벽두. 정국이 떠들썩했다. ‘청와대의 KT&G 사장 인사 개입 주장’ ‘국채매입 취소 사건’ 등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가 잇따라 터졌기 때문이었다. 여론도 들끓었다. 신 전 사무관 발언이 진실한지 여부와는 별개로 사건의 정황을 납득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의혹에 의혹이 꼬리를 무는 상황.

이때 들끓는 여론에 기름을 부은 이가 있었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그는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나쁜 머리 쓰며 의인인 척 위장하고 있다”면서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고 적었다. 다음날 신 전 사무관이 유서를 남기고 잠적하자, 4일엔 기존 게시글을 삭제하면서 신 전 사무관을 “강단 없는 사람”이라 표현했고, 5일엔 다시 “자기 조직에 관한 헛소문을 퍼뜨리는 양아치”라고 비난했다. 

논리나 상식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인신공격이 이어지자 국민들도 참지 않았다. 촛불로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걸 경험한 국민들은 손 의원의 후원계좌에 18원의 후원금을 보냈다. 후원금이라는 경제 행위에 ‘18원’이라는 풍자를 덧붙여 손 의원의 발언에 반기反旗를 든 셈이었다. 

 

무겁던 경제가 한결 가벼워졌다. 똑똑해진 국민들이 권력층의 모럴해저드를 경제로 비판하고, 경제로 감시하고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펀딩ㆍ후원 등 경제행위를 수단으로 삼는 국민들도 많다. ‘숫자1’을 무기로 정치에 참여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촛불혁명 이후 현실 문제해결에 직접 나서겠다는 욕구가 경제행위를 통해 발현되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2017년 8월부터 운영된 이 게시판을 통해 최근까지 올라온 청원 개수는 약 38만건. 하루 평균 약 740건에 달한다. 20만명의 추천을 받아 정부가 답변한 청원은 11일 기준 총 71건(답변 불가 등은 제외)이다. 답변 대기 중인 건도 5건이다. 월평균 4개꼴로 답변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전체 추천수는 지난해 이미 5400만명을 넘겼다. 전체 인구수(약 5181만명)보다도 많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숫자1’이다. “청원인의 숫자가 20만명이 넘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숫자1’은 참여정치의 서막을 뜻한다. 일부에서 ‘포퓰리즘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지만,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이 국민청원 게시판 운영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이현우 서강대(정치외교학) 교수는 “정제되지 않았거나 장난 같은 청원도 있지만, 국민이 의견을 표출하는 수단으로서 청원 게시판은 새로운 장이 될 수 있다”면서 “본래의 여론수렴기관인 국회에서 제도적으로 의견을 받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질적인 정책 수립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크라우드펀딩 역시 ‘경제행위’를 통해 개개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중요한 채널이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때론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 크라우드펀딩의 프로젝트 계획자는 모금액의 일부 혹은 전부로 펀딩 투자자들에게 소정의 보상을 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네이버 해피빈은 ‘당신이 기부하면 해피빈도 기부한다(더블기부)’는 방침 아래 총 536개의 모금함을 개설, 현재 약 15억원을 더블기부했다. 기부금은 8만5632명의 도움이 필요한 일반인들에게 전달됐다. 

크라우드펀딩의 목적은 약자를 돕는 것뿐만이 아니다. 때론 진실과 정의를 찾아가는 ‘금고’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정부가 북한의 공격으로 규정한 ‘천안함 침몰사건’의 의문점들을 다큐멘터리로 다룬 영화 ‘천안함(2011년)’ ‘천안함 프로젝트(2014년)’는 모두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작ㆍ개봉됐다. 

 

강풀 원작의 ‘26년(2012년)’, 위안부 할머니의 실화를 재구성한 ‘귀향(2016년)’ 등은 사회정의 실현의 염원을 담아 크라우드펀딩으로 만들어낸 영화다. 특히 영화 ‘귀향’은 약 7만명으로부터 제작비의 절반인 약 12억원을 후원받아 제작됐는데, 극장 개봉을 통해 358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크라우드펀딩업체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라도 판매의 의미가 어떤 공감대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려운 시장”이라면서 “크라우드펀딩 역시 시장이지만, 어찌 보면 국민정서를 대변하는 창구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경제와 놀고 있다. 숫자로 비판하고, 숫자로 후원하는 시대가 활짝 열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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