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편 진도❸

군함 5척 대 5척으로 싸운다면 서로 치고 받느라 승리한 쪽에도 피해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5척대 50척이 싸울 경우, 그것도 근접전이 아닌 원거리 함포전에서는 화포가 없거나 부실한 쪽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순신은 이 모든 상황을 생각하고 전투에 임했습니다. 싸우기 전에 이미 이겨 놓고 싸운 셈입니다. 그런데 이순신이 이런 전략을 사용하지 못한 경우가 두 번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명량해전입니다.
 

명량해전에서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전략이었다. [사진=뉴시스]
명량해전에서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전략이었다.[사진=뉴시스]

임진왜란 초기와 달리 명량해전 당시에는 일본군도 이순신 해전의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조선 수군의 전력을 모두 합쳐도 일본의 일개 함대보다 못할 정도로 우리 수군은 빈약했죠. 오죽했으면 이순신이 임금에게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이 있습니다’라고 읍소했을까요. 명량해전이 원거리 함포전이 아닌 근접전의 형태로 전개된 이유입니다.

사실 근접전은 조선 수군이 극구 피해야 할 전술이었지만 명량해전에서만은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었기에 죽고자 하면 산다는 생각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죠.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는 말은 구호가 아닌 실제 전술이었던 셈입니다.

조수潮水를 타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진을 우수영 앞바다로 옮겼다. 그것은 벽파정 뒤에 명량鳴梁이 있는데 수가 적은 수군으로서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면서 이르되, “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라고 했으며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이라도 두렵게 한다’고 했음은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살려는 생각은 하지 마라.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면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다. 조금이라도 너그럽게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이날 밤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일러 주었다. -정유년 9월 15일 「난중일기」 중 정유일기, 명량해전 하루 전

죽고자 한다는 것은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뜻입니다. 살고자 한다는 것은 두려움을 피해 달아난다는 뜻이고요. 정면 승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 쪽이 확실히 약하다면, 최선의 방책은 상대방의 강점을 무력화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액션 영화나 무협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벽을 등지고 싸우거나 좁은 곳에서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격받는 방향을 네 방향에서 두세 방향으로 줄이고, 한번에 공격받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서지요. 주인공이 계속해서 달리면서 싸우는 경우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포위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passwing7777@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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