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공동경비구역 JSA ❶

판문점은 우리나라 민족분단의 비극적 상징과도 같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는 판문점에서 벌어진 사건을 그린다. 그래서 ‘한국적’이다. 지구상 유일한 민족분단 국가의 이야기라는 것도 ‘한국적’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피끌림’ 같은 정을 느끼면서도 총구를 겨눈 채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던 ‘한국적’ 현실 또한 그러하다.

영화 속 남한군 병사 이수혁과 남성식은 북한군 초소를 동네 마실 가듯 드나든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속 남한군 병사 이수혁과 남성식은 북한군 초소를 동네 마실 가듯 드나든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공동경비구역 JSA’는 판문점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그린다. 한국인만 공감할 수 있는 끈끈한 한국적 ‘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에게 총을 겨눠야 하는 분단국가임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한반도에만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비극을 다룬다.

이수혁(이병헌 분) 상병과 남성식(김태우 분) 일병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초소에 근무하는 남한군 병사들이다. 이수혁은 제대를 앞뒀기에 무료하고 남성식 일병은 제대가 까마득하기에 갑갑하다. 공동경비구역은 서로의 ‘주적’ 남북 병사들이 총구를 겨누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면서도 마주치면 담뱃불도 붙여주는 기묘한 곳이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아슬아슬하게 ‘평화’가 이어진다. 긴장감 속의 묘한 무료함이다. 수증기가 가득한 방 안도 오래 있다 보면 그 끔찍한 위험을 잊고 밥도 먹고 잠도 잔다. 이수혁은 책상 위에 두 다리 올려놓고 삐딱하게 군모를 쓴 채 팝송을 들으며 국방부 시계가 돌아가기만을 기다린다. 제대가 아득한 남성식 일병에게 남은 시간을 죽이는 방법은 영어단어 외우기밖에 없다.

공동경비구역 초소는 나른하기 짝이 없다. 
무료하고 갑갑하기는 북측 초소도 마찬가지다. 북한군 오경필(송강호 분) 중사와 정우진(신하균 분) 전사도 ‘그날이 그날’인 근무에 무료하기만 하다. 북한군이라고 해서 모두 군기 충만해 24시간 각 잡고 남반부를 불바다·피바다로 만들 결의에 차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날 일상적인 수색에 심드렁하니 나섰던 군기 빠진 이수혁은 지뢰를 밟아 꼼짝달싹 못하고 수색부대에서 낙오된다. 그는 지나가던 북한군 수색대 오경필과 정우진에게 살려달라고 울먹인다. 오경필은 이수혁이 밟은 지뢰를 제거해주고 역시 심드렁하니 건들건들 사라진다.

그 인연으로 이수혁은 북한군 초소를 동네 마실 다니듯 드나든다. 혼자 다니자니 동료 남성식 일병 눈치가 보인다. 나쁜 짓은 다같이 끌고 다니는 것이 편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손잡고 고무줄 넘기를 하듯 넘었던 그 엄청난 남북경계선을 이수혁과 남성식은 매일 밤 넘는다.

어둠이 두려운 것은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어둠이 두려운 것은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북한군 초소에서 북한군 병사들과 함께 김광석 노래를 들으며 퍼질러 앉아 담배 피우고 술을 마신다. 김광석 노래가 잔잔하게 깔리는 담배 연기 가득한 북한군 초소 분위기는 시골의 허름한 카페 분위기가 된다. 초코파이로 정을 나누고 도색 잡지도 돌려 보고 서로의 애인 사진도 보여준다. 군모를 바꿔 삐딱하게 쓰고는 군복 단추도 풀어헤치고 어깨동무하며 기념사진도 찍는다. 고등학생 소풍 사진과 같다.

오경필과 정우진은 김일성 광장을 행진하는 로봇부대 같은 북한군들의 행진모습 아니면 뉴스에서 무장공비 소식만 들어왔던 우리에게 도무지 생소한 북한군 모습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남한 병사들의 모습 또한 자동소총을 허리에 곧추 세우고 미동도 없이 철책선 너머로 북한땅을 노려보는 것이다. 그들의 레이저 같은 눈빛은 개미새끼 한 마리도 피해갈 수 없을 듯한 그것이다. 그러나 이수혁과 남성식의 모습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수십년간 교육을 받아왔지만 생각해보면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우리의 ‘주적’이 북한이라면서도 아는 것이 없는 기묘한 상황이다. 주적의 정체조차 파악이 안 된다. 아는 것이 없으니 그저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상종을 안 하고 욕을 퍼붓고 저주하는 것 외에는 딱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판문점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그린다. [사진=뉴시스]
'공동경비구역 JSA'는 판문점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그린다. [사진=뉴시스]

공동경비구역 JSA가 던지는 더욱 큰 충격은 우리가 북한과 북한군을 모르는 만큼 우리 군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북한’과 ‘군’은 모두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비밀이고 어둠 속에 잠겨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아마도 1998년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김훈 중위 자살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듯하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10년을 파헤쳐도 끝내 판문점에서 벌어졌던 김훈 중위의 비극의 전말은 어둠 속에 잠겨 있다.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 첫 총성이든 포격이든 울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당연히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것이 두렵다. 어둠이 두려운 것은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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