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가보지 않은 길에서 멈추다
반도체, 가보지 않은 길에서 멈추다
  • 김다린 기자
  • 호수 323
  • 승인 2019.01.22 0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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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위기론 숱한 이유

반도체의 슈퍼사이클을 예측한 이는 많지 않다. “호황이 길게 이어질 것”이라는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이던 전망은 예상을 깨고 맞아떨어졌다. 문제는 슈퍼사이클의 종언終焉 시기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반도체 위기론을 두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반도체는 지금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반도체 위기론을 냉정하게 짚어봤다. 

반도체 시장이 주춤하는 데도 전문가들은 밝은 전망을 내놓는다. 4차 산업혁명 기술 대부분이 반도체와 직결돼 있다는 이유에서다.[사진=연합뉴스]
반도체 시장이 주춤하는 데도 전문가들은 밝은 전망을 내놓는다. 4차 산업혁명 기술 대부분이 반도체와 직결돼 있다는 이유에서다.[사진=연합뉴스]

세상 모든 일엔 굴곡이 있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달콤한 호황 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불황이 찾아온다. 반도체 시장엔 이를 잘 나타내는 그래프가 있다. ‘실리콘 사이클’이다. 1970년대 이후 반도체 산업의 호황과 불황이 3~4년 주기로 번갈아 찾아온 걸 뜻한다. 

이런 그래프가 그려지는 이유를 두곤 크게 두가지 추측이 나돈다. 첫째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해에 성장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부가 강력한 경기 부양책을 써온 영향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다. 둘째는 3년 주기로 출시되던 새로운 윈도우 버전에 맞춰 PC 수요가 늘어난 까닭이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최근 반도체 업계는 실리콘 사이클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 반도체 특허법률회사인 JM인터내셔널 유영준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유 대표는 1975년 당시 상공부 전자공업 과장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기틀이 되는 ‘전자공업고도화 계획’을 세운 인물이다. 

“과거에는 PC 위주로 D램 시장이 돌아간 탓에 3~4년 주기의 실리콘 사이클 공식이 들어맞았다. 지금은 다르다. PC말고도 서버ㆍ전장ㆍ스마트폰 등 수요처가 크게 확대됐다. 여기에 사물인터넷(IoT) 시장이 개화를 앞두고 있다. 호황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때 온다. 반도체 수요가 무궁무진한 이상, 호황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

반도체 시장은 2017년부터 눈부신 실적을 거뒀다. 그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4122억 달러로 전년 대비 22% 성장했다. 2016년 2분기 이후 매분기 성장세였다. 성장을 주도한 건 메모리 반도체였다. 2017년 메모리 반도체의 평균 가격은 전년 대비 37.3% 올랐다. 과거 호황기와 비교해도 지금의 실적은 괄목할 만하다. 반도체 업계에선 2000년 이후 시장의 호황 국면을 2002년, 2009년, 2012년, 2017년으로 본다. 이중에서 2017년의 분기 매출 증가폭이 7.3%로 2009년(10.8%)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다.

2009년 증가폭이 기저 효과의 결과물(글로벌 금융위기 2008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호황은 유례가 없던 셈이다. 업계 사람들은 그래서 ‘실리콘 사이클’이란 말을 ‘슈퍼 사이클’이란 단어로 대체했다. 근거는 호황이 길게 이어질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시장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이 10%대의 급격한 낙폭을 기록하더니, 금융권에선 ‘반도체 고점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승승장구하던 글로벌 IT 기업들의 실적도 곤두박질쳤다. 반도체 시장점유율 1위 기업 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한 것은 단적인 예다.

실리콘 사이클은 ‘옛말’ 

그런데도 전문가들은 “아직은 괜찮다”면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사이클 궤적이 가파르게 악화하면서 시장에 부담을 준 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은 업황이 나쁜 상황에서 빛이 난다”고 설명했다.

이런 주장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IoTㆍ인공지능(AI)ㆍ자율주행차 등이 발전하면서 반도체의 쓰임새가 넓어졌다. 업체가 줄면서 과점에 가까운 시장으로 변한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현재 세계에서 D램을 생산하는 곳은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ㆍ마이크론뿐이다. 미래 주력상품으로 꼽히는 낸드플래시를 공급할 수 있는 업체도 소수다. 반도체의 생산공정이 복잡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후발주자의 가파른 추격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슈퍼 사이클이 끝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역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유영준 대표는 “반도체 자체가 글로벌 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큰 탓에 호황기 이후 시장은 어떤 흐름일지 알 수 없다”면서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승승장구했다가 낙오됐던 게 반도체 시장”이라고 꼬집었다.

더 심각한 건 반도체 시장의 침체가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경제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고음은 이미 울렸다. 지난해 12월 반도체 수출은 88억5800만 달러를 기록하며 1년 전보다 8.3%나 감소했다. 2016년 9월(-2.6%) 이후 약 2년 만에 처음 이뤄진 마이너스 성장이다. 반도체 출하지수는 지난해 12월 16.3% 감소하며 2008년 12월(-18.0%) 이후 10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월호에서 반도체 업황의 불확실성을 거론했다. 정부가 그린북을 통해 경제 상황을 종합평가하면서 특정 산업을 언급한 것 역시 이례적인 일이다.

그린북의 이례적인 우려

글로벌 IT 자문기관 가트너는 지난해 반도체 매출 실적을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은 전망을 내놨다. “2019년은 지난 2년과는 매우 다른 시장이 될 것이다.” 불확실성이 큰 시대에는 변화와 경고의 목소리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리기 마련이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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