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공동경비구역 JSA ❷

공동경비구역 내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한가운데엔 남북분단 경계선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제안으로 한발자국만 넘어서도 ‘월북’이라는 시비에 휘말리는 엄중한 경계선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선 사병들이 이 군사경계선을 옆집 가듯 수시로 건너 다닌다. 그리고 결국 비극적 사건이 벌어진다.
 

군사경계선을 드나들며 정을 나누던 남북 병사들은 파국을 맞는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북한군 초소에서 서로 형ㆍ동생 하며 초코파이를 나눠 먹던 남북 병사들의 ‘잘못된 만남’은 파국을 맞는다. 전역을 앞둔 이수혁(이병헌 분) 병장은 남성식(김태우 분) 일병을 데리고 마지막으로 북한 초소를 방문한다. 정들었던 북한군 초소병 오경필(송강호 분) 중사, 정우진(신하균 분)과의 이별을 아쉬워한다. 모두들 이별을 앞두고 착잡하다.

남북 병사들이 어울려 ‘마지막 만남’을 아쉬워하고 있는 초소에 북한군 장교가 무심코 들러 문을 열다 두 남한 병사들과 마주친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하고 손 턴다’고 결심한 후 하는 도둑질은 항상 잡힌다. 순간 모두가 얼어붙는다. 

정신을 가다듬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가 권총을 뽑아 들고 서로에게 겨눈다. 질식할 듯한 공포와 더 이상 견디지 못할 정도로 당겨진 고무줄처럼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긴장이 모두를 엄습한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공포와 긴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팽팽히 당겨진 고무줄을 끊어버리는 것 외에는 없다. 

결국 이수혁이 북한 초소병 정우진에게 발사를 한다. 정우진이 쓰러지면서 반사적으로 발사하고 이수혁이 쓰러진다. 그러자 남성식이 쓰러진 정우진을 향해 총탄을 퍼붓는다. 이미 총을 맞고 쓰러진 정우진을 향해 총탄을 퍼붓는 남성식은 무표정하다.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조금 전까지 친동생처럼 챙기고 이별을 슬퍼하던 정우진을 향해 8발이나 쏘아댄다.

 

아이히만은 미국과 남북 어느 곳에나 있다. 그래서 그들이 두렵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박찬욱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친동생 같은 정우진을 향한 남성식 일병의 무표정한 8발 사격은 아우슈비츠의 무표정한 도살자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을 연상케 한다. 평소에 도덕적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배려심 많고 친절한 신사였다는 아이히만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무감각하게 600만 유대인을 가스실로 몰아넣고 시체들의 금이빨을 알뜰히 뽑아 재활용한다. 심지어 시체들에서 기름을 뽑아 비누로 가공한다.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에서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다”고 분석한다. 극한상황에서 인간의 사고력은 마비되거나 증발한다. 오직 주어진 지시를 훈련받은 대로 수행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훈련받은 대로 주어진 직무에 충실해야 한다.

절체절명의 극한상황 속에서 남성식 일병의 모든 사고와 감성은 마비되고 증발된다. 조금 전까지 애틋한 마음으로 직접 구두약을 발라주던, 조금 덜 떨어져 보여 안쓰럽던 정우진에게 무감각하고 무표정하게 8발을 난사한다. 마치 종소리를 들려주고 밥을 먹는 훈련을 받은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는 조건반사처럼 정우진이 총을 쏘자 남성식은 조건반사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정우진이라는 ‘인간’에 대한 모든 ‘사고’는 사라지고 비로소 자신의 주어진 직무에 충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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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공동경비구역 내 총기와 화기 철수가 완료됐다. [사진=뉴시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연인처럼 포옹한다. 남성식과 정우진처럼 헤어짐이 아쉬워 맞잡은 손을 놓을 줄 모른다. 남북 예술단이 오가며 감격에 겨워하고 남북 철도를 잇는다고 부산하다. 그러나 서로 자기 핵단추가 더 크다고 협박질 해대는 극한 공포와 긴장 속에 어느 총구에서 한발의 총성이 울리는 순간 모든 사고는 멈추고 형제애나 인간애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동안 배운 대로 혹은 훈련받은 대로 무감각하고 무지막지한 총질과 미사일질을 서로에게 퍼붓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히만은 독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블로프의 개만이 조건반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남성식 일병처럼 조건반사를 하는 아이히만은 미국과 남북 어느 곳에나 있다. 그래서 그들이 두렵다.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라 공동경비구역 내의 남북한 모든 초소가 폐쇄됐고 모든 총기와 화기의 철수가 완료됐다고 한다. 적어도 공포와 긴장 속에서의 총성 한발이 야기할 수 있는 ‘사고력’이 마비된 조건반사적 무차별 살육의 위험은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을 테니 반가운 소식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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