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약해지는 현대상선 

현대상선은 선복량 기준 세계 9위의 컨테이너선사다. 2017년 13위에서 네 계단이나 뛰어올랐다. 하지만 선복량 순위가 오른 만큼 경쟁력이 개선됐다고 보긴 힘들다. 선복량과 점유율은 되레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주했던 20척의 선박을 인도받더라도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상위 해운사들의 같은 기간 발주량도 엇비슷해서다. 현대상선의 항로를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경쟁력 약해진 현대상선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해운 시황이 어려워지면서 세계 해운사들은 M&A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해운 시황이 어려워지면서 세계 해운사들은 M&A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세계 해운업계는 ‘벌크업 경쟁’이 한창이다. 프랑스 해운통계 조사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상위 10대 컨테이너선사들의 선복량은 2017년 2월 1413만3801TEU(1TEU =20피트 컨테이너 1대)에서 올해 1월 1875만6497TEU로 부쩍 커졌다. 선복량이 100만 TEU를 넘는 해운사도 4개에서 7개로 늘었다.

해운사들이 몸집을 키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시장 내 입지를 탄탄하게 만들려는 의도도 있지만 무엇보다 규모를 키우면 원가를 절감할 수 있어서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특히 요즘처럼 운임이 낮은 시기엔 원가절감이 곧 경쟁력이자 실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문제는 일부 상위 해운사들의 몸집만 가파르게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벌크업이 주로 인수ㆍ합병(M&A)을 통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1위 해운사 머스크는 7위(2017년 2월 기준) 해운사였던 함부르크수드를 인수해 점유율을 15.6%에서 17.9%로 끌어올렸다. 프랑스 해운사 CMA CGM (4위)은 2016년 싱가포르의 APL을 흡수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중국 해운사 코스코는 자국기업 CSCL과 홍콩 해운사 OOCL을 인수해 세계시장 점유율 4위(8.0%)에서 3위(12.3%)로 한단계 뛰어올랐다. 10위권 밖에 있던 일본 3사(NYKㆍMOLㆍK-Line)는 한개 회사(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로 통합하면서 단숨에 6위에 랭크됐다. 5위권 내 해운사 가운데 MSC만 유일하게 M&A를 하지 않았지만, MSC는 잇따른 대규모 발주로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다.

현대상선도 같은 기간 선복량 순위가 13위에서 9위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력이 올라간 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45만4175TEU(용선 포함)에서 42만8633TEU로 되레 감소했다. 점유율은 2.2%에서 1.9%로 줄었다.

현대상선보다 순위가 높았던 해운사들이 파산하거나 상위 해운사에 흡수되면서 대뜸 순위가 오른 셈이다. 따지고 보면, 현재 상위 10개 해운사 중 점유율이 떨어진 건 현대상선이 유일하다. 전형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산업연구실장은 “상위 7대 선사의 아시아~유럽항로와 아시아~북미항로 점유율은 각각 91.7%, 81.5%”라면서 “거대선사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현대상선의 경쟁력은 약화된다”고 지적했다.

현대상선은 2년 만에 선복량 순위가 네 계단 올랐다. 하지만 상위 해운사들이 파산하거나 인수된 결과다.[사진=연합뉴스]
현대상선은 2년 만에 선복량 순위가 네 계단 올랐다. 하지만 상위 해운사들이 파산하거나 인수된 결과다.[사진=연합뉴스]

물론 현대상선도 몸집을 키우기 위해 지난해 대규모 선박 발주(총 39만6000TEU 규모)를 넣었다. 해당 선박이 인도되는 2020~2021년이면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82만4633TEU로 크게 증가한다.[※참고 : 용선 기간 만료와 폐선 등 변수 제외한 단순 계산.] 문제는 선복량이 늘어나도 순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현대상선 바로 위에 있는 대만 해운사 양밍(8위)과 에버그린(7위)도 건조 중인 선박을 인도받으면 선복량이 각각 83만6055 TEU, 165만6986TEU로 뛰어오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CMA CGM(4위)과 하팍로이드(5위), 양밍과 에버그린 등 상위 해운사들은 여전히 M&A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상선이 미래 플랜을 다시 세워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형진 연구실장의 말을 들어보자. “정부는 현대상선을 세계 5위의 해운사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현대상선의 독자능력으로는 힘들다. 정부가 꾸준히 자금을 지원해야하고, 장기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유럽 노선 포기가 상책인가 

해운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상선이 세계 5위의 해운사가 되려면 120만 TEU 이상의 선복량을 확보해야 한다. 문제는 그만큼의 선복량을 늘리기 위해선 10조여원의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실적 개선에 애를 먹고 있는 데다, 재무상황도 신통치 않은 현대상선이 독자능력으로 확보하기는 힘든 금액이다. 정부도 현대상선에 추가 자금을 투입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전 연구실장은 “돈과 시간을 투입하기 어렵다면 현실적인 방법은 노선 변경”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상선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미주서안이나 아시아ㆍ중동 쪽 노선에 주력하는 강소 해운사로 탈바꿈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다.”

현대상선의 지배회사인 산업은행은 “현대상선은 이제 실적을 개선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 실적개선이다. 시황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덩치를 키운 경쟁 해운업체들은 ‘포식자’로 돌변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해운 공룡들 사이에 끼인 현대상선이 체질을 빠르게 개선해야 하는 이유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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