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율에 숨은 불편한 착시
서울시 아파트 전세가율이 떨어지고 있다. 집 없는 서민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전세가율이 떨어진다는 건 전세가격 하락을 의미해서다. 하지만 이를 체감하는 건 쉽지 않다. 전세가율 하락이 지난해 가격이 치솟은 수십억짜리 아파트가 만든 착시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전세가율에 숨은 불편한 착시현상을 취재했다.
부동산 대세하락의 전조일까. 일시적 안정세일까. 서울시 아파트 전세가율 하락을 두고 시장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우선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의 추이를 살펴보자.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73.4%를 기록했다. 1월 75.2%에 비해 1.8%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서울시 아파트의 전세가율 하락폭은 더 크다. 서울의 전세가율은 지난해 1월 70.1%에서 10월 65.9%로 4.2%포인트 하락한 이후 12월까지 같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2014년 12월(65.9%) 이후 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시장의 우려를 사고 있다.
시장이 전세가율 하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향후 아파트 가격을 전망할 수 있는 지표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전세가율의 적정 비율은 6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전세가율이 70~80%대를 웃돌면 전세수요가 매매수요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전세가격과 집값이 비슷해지면 전세로 거주하는 것보다 집을 사는 게 유리해서다. 반대로 60%대를 밑돌면 매매수요가 약해져 집값이 하락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전세가율 하락을 부동산 대세하락의 전조로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한가지 짚어봐야 할 게 있다. 전세가율 하락이 아파트 가격하락을 의미한다면 되레 전세가격이 상승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을 예상한 무주택자의 전세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은 오르는 게 당연해서다. 하지만 시장의 지표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해 서울시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격(한국감정원)은 1월 4억3905만원에서 12월 4억3663만원으로 242만원(0.05%) 떨어졌다. 이 때문인지 전세가율 하락의 원인이 주택가격 하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택가격 버블’에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특히 강남을 중심으로 형성된 버블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전세가율이 떨어졌지만 전세가격이 하락했다고 보긴 힘들다. 분모로 사용되는 매매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한 게 전세가율 하락의 진짜 원인이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서울시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지난해 1월 6억7352만원에서 12월 7억1774만원으로 1년 사이 4422만원(6.5%)이나 상승했다. 아파트 가격이 4422만원 상승할 때 전세가격은 242만원 떨어졌으니 전세가율이 하락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매매는 17억원인데 전세는 4억원
실제로 서울시 아파트 전세가율의 하락세를 이끈 건 강남이었다. 강남의 전세가율은 지난해 1월 70.1%에서 12월 64.1%로 6.0%포인트나 떨어졌다. 강남에서도 집값이 높은 서초구·강남구·송파구 등이 포함된 동남권의 전세가율은 같은 기간 7.4%포인트(64.7% → 57.3%)나 빠졌다.
이는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강남 아파트 가운데 전세로 나온 물량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이는 국토부의 실거래 현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난해 10~12월 3개월간 서울시에서 전세 거래가 가장 많이 이뤄진 아파트 10곳 중 7곳이 강남구와 송파구에 있었다.
그중 부동산 시세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은 은마아파트는 87건의 전세 거래가 이뤄져 1위에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건 은마아파트의 전세가율이 26.8%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은마아파트가 있는 강남구 전체 전세가율 53.6%(2018년 12월 기준)의 절반 수준이다. 이 아파트의 매매 평균가격은 17억5000만원(실거래가 3개월 평균)에 달했지만 전세 평균가격은 4억7000만원(전용면적 77㎡ 기준)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52건의 전세 거래가 이뤄진 송파구 잠실 엘스아파트(전용면적 84㎡ 기준)의 전세가율도 48.5%(매매가격 17억3000만원·전세가격 8억4000만원)로 송파구 전체 전세가율(55.0%)보다 6.5%포인트 낮았다. 전세가율 하락은 지난해 천정부지로 치솟은 아파트 가격이 만든 착시라는 얘기다.
권대중 명지대(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가율이 낮아진 건 전세가격은 오르지 않고 매매가격만 올랐기 때문”이라며 “최근 전세가율 하락세엔 송파구의 공급량 증가, 임대 사업자 등록에 따른 물량 증가 등 복합적인 요인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세가격의 하향 안정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며 “주택가격 하락세는 올 2~3월부터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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