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할증료 붙인 현대상선 날까

세계 해운사들 사이에서 “유류할증료를 도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현대상선도 이에 발맞춰 올해부터 유류할증료를 부과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동안 현대상선의 실적을 갉아먹던 저가운임 문제가 해소될 거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과연 그럴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현대상선의 유류할증료 이슈를 살펴봤다.
 

현대상선이 올해부터 유류할증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유류할증료 도입으로 저가운임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사진=연합뉴스]
현대상선이 올해부터 유류할증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유류할증료 도입으로 저가운임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0월 22일 현대상선은 화주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2019년부터 유류할증료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동안 운임이 유가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한 탓에 손실이 컸다는 이유에서였다. 유가가 변동하면 그에 맞춰 운임도 오르내려야 하는데, 세계경기가 둔화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러지 못했다는 거다. 통상 해운사들의 운송비에서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가상승에 따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운임에 유가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한 건 현대상선의 실적이 부진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10월 국제유가가 4년여 만에 최고치(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84.12달러)를 찍었지만, 운임의 회복세는 더뎠다.

선박 연료로 쓰이는 벙커C유(싱가포르 380CTS 기준) 가격은 지난해 10월 연초 대비 34.1%(t당 392.50달러 → 526.50달러) 올랐지만 같은 기간 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10.8%(816.58포인트 → 904.51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그마저도 운임 회복세가 좋았던 2017년 초 SCFI가 900후반대까지 올랐던 것에 비하면 여전히 낮다. 

현대상선은 올해부터 유류할증료를 부과하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는 배출규제지역(ECA)에 해당하는 미국과 유럽, 중국 등을 거치는 화물에 한해서만 유류할증료를 적용하고 있다. 올해 들어 국제유가가 떨어지긴 했지만 ECA에서는 벙커C유보다 가격이 50%가량 비싼 저유황유(유황 함유량이 낮은 연료)를 써야하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이 해당 화물에 부과하는 유류할증료는 TEU(20피트 컨테이너 1대)당 20~50달러(약 2만3000~5만6000원)다. 

그렇다면 유류할증료가 현대상선의 실적 부진 문제를 해소해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을 공산이 크다. 저가운임을 초래한 출혈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유류할증료’는 실적을 잠시 메워주는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그 이유를 살펴보자. 해운업계에서 유류할증료는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이전에도 유가 변동에 따라 추가 요금을 붙이는 개념은 있었다. 그럼에도 그동안 유가가 운임에 반영되지 않았던 건 상위 해운사들이 출혈경쟁을 주도한 탓이 크다. 

IMO 환경규제 대비한 유류할증료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해운업계가 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규모의 경쟁이 가속화했다”면서 “규모를 키워 원가경쟁력에서 앞서면 더 많은 화물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인데, 상위 해운사들은 파산하는 중위 해운사들을 흡수해 덩치를 키우고 다시 중하위 해운사들을 고사시키기 위해 치킨게임을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운사가 화주들에게 유류할증료 부과계획을 발표해도 경쟁사가 낮은 운임을 제시해버리니 유류할증료가 유명무실했다는 얘기다. [※참고 : 해운업계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프랑스 해운통계 조사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상위 3개 컨테이너선사의 선복량 점유율은 지난 2015년 1월 37.7%에서 올해 1월 44.7%로 부쩍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현대상선이 유류할증료를 부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상위 해운사들이 먼저 유류할증료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는 지난해 9월 이미 유류할증료 도입을 예고했다. 

 

현대상선은 스크러버를 장착한 20척의 선박이 원가경쟁력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현대상선은 스크러버를 장착한 20척의 선박이 원가경쟁력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머스크의 행보를 치킨게임이 종결됐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이긴 힘들다. 상위 해운사들이 유류할증료를 도입한 목적은 2020년 시작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를 대비하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IMO 환경규제는 선박연료의 유황 함유량 허용치를 기존 3.5%에서 0.5%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 조건을 맞추려면 앞서 말했던 비싼 저유황유를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존 선박을 스크러버(탈황장치)가 장착된 선박이나 LNG연료추진선으로 대체해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많은 비용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상위 해운사들은 환경규제에 따라 늘어나는 비용을 유류할증료를 통해 보전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이런 비용 부담은 상위 해운사나 중하위 해운사나 똑같다. 이번에 도입된 유류할증료가 기존의 치킨게임 구도를 해소하는 데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 여기 A, B 해운사가 있다. 원가경쟁력이 서로 다른 두 해운사는 손실을 보지 않으려면 각각 운임으로 TEU당 900달러, 1000달러를 받아야 한다. 현재 시장의 운임은 A해운사의 주도로 TEU당 950달러까지 낮아진 상태다. 당연히 A해운사는 이익을 보고, B해운사는 손해를 본다. 

이제 두 해운사는 환경규제로 인해 값비싼 저유황유를 써야 한다. 유류비가 오른 만큼 유류할증료를 각각 500달러씩 더 받기로 했다. 이제 두 회사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받아야 하는 운임은 각각 1400달러, 1500달러. 시장의 운임은 A해운사의 주도로 1450달러가 됐다. A해운사는 여전히 이익을 보고, B해운사는 손해를 본다.

 

변수를 제외하고 단순 계산으로 만든 예시지만 실제 해운업계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형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산업연구실장은 “환경규제로 비용 부담이 늘면서 유류할증료를 도입한다고 하는데, 유류할증료는 유류할증료고 경쟁은 경쟁이다”면서 “유류할증료와 별개로 출혈경쟁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현대상선이 이런 상황에 대비하지 않은 건 아니다. 현대상선이 지난해 발주한 2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에는 스크러버가 장착될 예정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2020년 세계 컨테이너선 가운데 스크러버가 장착된 선박 비율이 3~5%에 불과할 거라는 전망이 있다”면서 “저유황유를 쓰는 해운사들과 비교해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크러버와 저유황유 놓고 저울질

문제는 현대상선 역시 새 선박에 투자한 자금의 회수를 감안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해운전문가들은 “해외 해운사들이 스크러버를 장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저유황유와 스크러버 중 어떤 것이 효율이 좋은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향후 저유황유 수급 현황에 따라 효율성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스크러버를 장착한 현대상선이 효율성에서 앞선다고 해도 상위 해운사와 견줄 만한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지도 아직 미지수다.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은 줄곧 “2020년 IMO 환경규제가 현대상선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말 IMO 환경규제는 현대상선에 변곡점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1년 후엔 그 답을 알 수 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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