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전도사 최태원을 향한 두 시각 

기해년 새해 들어 최태원(59) SK그룹 회장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행복전도사’를 자처하며 재계 3위 SK그룹과 재계를 리드하고 있다. 경영의 최종 성과물을 ‘구성원의 행복’으로 재삼 규정하고 새해 벽두부터 소통과 혁신의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회장에 오른 지 22년, 우리 나이로는 60 문턱을 넘긴 그의 최근 발걸음이 흥미롭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최태원 SK 회장의 행복론을 탐구해봤다. 

최태원 회장은 “경영의 최종 성과물은 구성원의 행복에 있다”고 강조하며 행복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최태원 회장은 “경영의 최종 성과물은 구성원의 행복에 있다”고 강조하며 행복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국 재계 오너 회장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근래 들어 갑질 행태에 대한 사회적 비판 분위기와 기업 오너 3ㆍ4세로의 경영권 이양 추세가 맞물려 다소 약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문재인 정부가 연초에 기업인들을 대거 청와대로 초청해 경제와 고용 살리기 묘책을 논의하고 나선 것도 그같은 영향력에 기초한다. 그런 만큼 재계 오너 회장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경영에 임하고 있는지는 사회적으로 늘 대단한 주목거리가 된다. 

새해 들어 ‘행복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행보가 단연 주목을 받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는 새해 들기 바쁘게 경영의 최종 성과물이 “구성원의 행복에 있다”고 다시금 강조하며 오른손에는 소통의 깃발을, 왼손에는 혁신의 깃발을 든 채 광폭행보에 나서 재계 안팎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최 회장은 SK그룹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구심점을 잃은 한국 재계에도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리더로 부상 중이라는 얘기까지 듣고 있다. 뒤돌아보면 재계 창업 1세 오너였던 고故 정주영ㆍ이병철 회장, 2세 오너 이건희 회장 등은 재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에 울림이 큰 행보를 많이 보여줬다. 

하지만 3ㆍ4세 오너들이 회장 대물림을 하고 있는 요즘엔 그런 역할을 해주는 오너 회장이 잘 안 보인다. 기업과 기업인들에 대한 역할 기대치와 사회적 비판 의식이 동시에 높아진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몰락하면서 재계를 대변했던 전경련이 유명무실해져 소통의 공간이 사라지다시피 한 것도 이유가 된다. 


이런 시기에 최 회장의 최근 행보가 새로운 리더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높여 놓은 것 같다. 이재용(51) 삼성전자 부회장(3세), 정의선(49) 현대차 수석부회장(3세), 구광모(41) LG 회장(4세) 등의 회장 경력이 일천한 점도 그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앞으로 한국 재계 리더는 이들 4대 그룹 회장 중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

최 회장은 2일 그룹 신년인사회에서 행복전도사로서 올해 첫 행보를 했다. 그는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신년회에서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도 더 큰 행복을 만들어 사회와 함께하자”고 당부했다. 키워드는 ‘구성원의 행복’이었다. 이 자리에는 CEO와 임원 등 600여명이 참석했다. 진행 방식도 종전과 달랐다. 회장이 일방적으로 신년사를 발표하는 게 아니라 패널로 참석한 CEO들과 대담한 뒤 그가 마무리 발언을 하는 형식이었다.

 

눈길 끌었던 발언들은 다음과 같다. “회사의 제도 기준을 관리에서 행복으로 바꾸자” “구성원의 개념을 고객ㆍ주주ㆍ사회 등으로 확장해야 하며, 협력업체도 SK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KPI(핵심성과지표)에서 SV(사회적 가치) 평가 비중을 50%까지 늘리자” “더 행복하기 위해 인사하기ㆍ칭찬하기ㆍ격려하기 등 작은 실천을 더해 나가자” 등이다. 

두번째 행보는 3일 열린 대한상의 주최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것 자체가 주목을 받았다. 상위 그룹 회장들 대부분이 불참한 탓에 2년 연속 썰렁한 인사회가 될 뻔한 자리였다. “그나마 최 회장이 참석한 덕에 인사회가 살아났다. 재계 뉴 리더다운 행보”라는 후담이 나돌았다. 이날도 그는 “기업하는 분들 행복하시고, 직원들도 행복하세요”라는 덕담을 남기고 퇴장했다. 역시 ‘행복’을 강조했다.

오른손엔 소통, 왼손엔 혁신

세번째 행보는 8일 그룹 임직원들과 함께 가진 행복토크에서 했다. 서울 종로구 서린 사옥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90분간 열린 이날 모임은 격의 없고 솔직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키워드는 역시 ‘행복’이었다. ‘최태원의 꼰대론’이 포함된 다음 구절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회사 가치를 사업이 아닌 개개인의 행복에 둬야 한다. 나의 워라밸은 ‘꽝’이다. 60점 정도 될까. 여러분까지 그렇게 일하라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럼 꼰대다.” 

그는 올해 임직원들과 모두 100번의 행복토크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행복전도사로서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1년에 100회면 사흘에 한번꼴로 행복토크 시간을 갖겠다는 얘기가 된다. 대단한 의욕이 아닐 수 없다.

네번째 행보는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자리였다. 이날 발언권을 얻은 최 회장은 정부와 재계, 그리고 우리 사회에 들으란 듯 혁신과 관련된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혁신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이런 토양을 용납해야 혁신 성장이 된다. 혁신 성장과 고용 증대의 또 다른 수단은 사회적경제, 특히 사회적기업이다.” 혁신 성장은 말로 외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라 숱한 실패와 사회ㆍ경제적 코스트를 감내할 때 이뤄진다는 점을 작심하고 지적한 것이다. 


10여년 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사회적기업 육성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그룹 내부는 물론 사회적 소통이 필요한 자리라면 어디서든지 과감하게 발언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SK와이번스를 응원하는 최 회장.[사진=뉴시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SK와이번스를 응원하는 최 회장.[사진=뉴시스]

이같은 행복전도사 행보는 어디에서 연유할까. 갖은 풍파를 겪어낸 22년 회장 경험과 인생살이가 가져다 준 교훈일까, 재계 뉴 리더라는 자의식의 발동일까. 주지하다시피 그는 38세(1998년)라는 젊은 나이에 회장에 올라 22년에 걸쳐 그룹 사세社勢를 취임 전보다 더 키워낸 경력의 소유자다. 

그동안 풍파도 많이 겪었다. 두차례 유죄 판결로 옥고獄苦까지 치렀다. 3년6개월 전인 2015년 8월 14일, 8ㆍ15 특사로 출소할 때까지 2년6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당시 재계 오너 회장들 중 최고로 긴 수감 생활을 했다. 출소 때 그는 성경을 들고 기자들 앞에 서서 “국가 경제와 사회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후부터 가끔씩 특유의 ‘행복론’을 펴기 시작했다.  

결혼생활도 순탄치 못한 것으로 대중들에게 비쳤다. 출감한 그해 연말 언론을 통해 충격적인 개인사도 고백도 했다. “부인(58ㆍ노소영ㆍ노태우 전 대통령 딸)과 이혼을 원하며, 아이(혼외자)와 아이 엄마를 책임지려 한다”고 스스로 밝힌 것. 합의 이혼이 무산돼 지난해 7월부터 이혼 소송에 들어가 조만간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행복전도사의 광폭행보

그가 오매불망寤寐不忘 주창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은 행복을 “삶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다분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면이 강한 게 탈이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다. 종업원과 주주, 경영자, 협력회사, 고객, 사회 일반이 가지는 행복에 대한 생각이 각기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경영 현실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이윤과 효율 극대화’가 우선시되고 있다. 회사 구성원과 광의의 이해 관계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일을 매개체로 행복을 느끼며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갈등을 벌이기 일쑤인 기업 현실을 ‘행복론’을 앞세워 다분히 낭만적으로만 해결하려 든다는 인식을 받을 경우, 자칫 알맹이 없는 구두선口頭禪에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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