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노인들은 어떻게 성장의 과실 누렸나

국민연금을 두고 또다시 기금고갈론이 활개를 치고 있다. 보험료를 ‘덜 내고 더 받을 수 있다’는 식의 정부 방침이 논란에 불을 붙인 듯하다. 당장 보험료 인상부터 논의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순서가 바뀐 얘기다. 사실은 보험료 인상이 아니라 국민연금 운영 방안에 관한 근본적인 방향 설정부터 해야 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와 함께 국민연금을 다시 한번 해부했다.  

국민연금제도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는 절차가 절실하다.[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제도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는 절차가 절실하다.[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을 덜 내고 더 받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지난해 12월 모 일간지에 실린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칼럼은 ‘현 정부가 마치 국민연금을 덜 내고 더 받게 할 수 있는 묘수라도 있는 것처럼 온갖 거짓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고 있다’는 식으로 비판했다. 

특히 ‘감언이설로 국민연금의 현실을 보지 못하도록 국민의 눈을 가리는 비열한 행위’라는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누군가가 연금보험료를 덜 내고 더 받아가게 되면 이는 행운의 복권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를 피해자로 만들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런 비판의 저변에는 ‘저부담 고급여’로 인한 적립금 고갈을 문제로 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비판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으리라 생각한다. 공단이 적극적인 주주권 발동으로 배당금을 높이거나 단기투자로 수익률을 극대화하지 않는 이상, 국민연금을 덜 내고 더 받는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득대체율 40%를 감당하기 위한 보험료율, 적립금 고갈 시점 등은 명확한 수치들로 나타나기 때문에 꽤 설득력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혹시 이렇게 반문해보면 어떨까. “과연 국민연금은 내가 낸 만큼만 받아가야 하는가?” 만약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다면 국민연금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낸 만큼만 받아가는’ 연금상품은 굳이 국민연금이 아니더라도 시중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민연금 적립금이 빨리 고갈될 수 있으니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거나 연금수령액을 낮춰야 한다고 열을 올릴 필요도 없다. 얼른 고갈시켜 제도를 없애버리면 된다. 하지만 “덜 내고 더 받는 건 거짓말”이라고 하는 이들도 국민연금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금 고갈을 우려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럼 국민연금은 도대체 왜 필요한 걸까. 애초에 국민연금은 ‘낸 만큼만 받아가기 위해’ 설계된 제도가 아니다. 국민연금이 탄생한 이유는 명확하다. 국민연금제도를 통해 국민들이 안정적인 노후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함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연금제도는 그럴만한 능력도 있다. 

일반인들에게 노후준비란 30~40년이 소요되는 초장기적 프로젝트다. 이 기간에 자신의 각종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노후에 필요한 수준보다 더 많은 소득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먼 미래까지 전망해 적절하게 수익을 배분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국민이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의해 종종 노후자산의 가치하락 또는 파산 등에 직면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연금 필요한 이유 찾아야 


더구나 IMF 외환위기나 전쟁ㆍ통일 등 다양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도 국민의 안정적 노후를 보장해줄 수 있는 위기대처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위기대처능력은 천문학적 비용의 문제를 두고 국가가 개인 간 혹은 세대 간 부담을 공정하게 조정할 수 있는 법적 강제력에서 나온다. 내가 ‘낸 것’과 ‘받아가는 것’으로 단순 비교하는 건 국민연금의 기능을 단순히 저축기능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편협한 시각으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 국민연금의 존립 근거를 설명할 수 없는 모순에 빠진다. 시각을 넓혀야만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문제를 좀 더 창의적으로 풀 수 있다. 

그러면 국민연금을 어떻게 이해하는 게 좋을까. 국민연금은 사회보험제도로서 노후보장의 안정성과 보편성, 혜택의 공정한 분배와 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일종의 정책수단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국가는 세대 간 연금격차가 과도하게 발생하지 않고, 동시에 그에 따른 혜택이나 피해가 세대 내 구성원 상호 간에 공정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런 전제 아래 독일의 국민연금 운영 경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총체적 몰락의 시기’를 거친 서독은 1950년대 초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고도성장을 장기간 경험했다. 이를 통해 축적한 경제력을 토대로 독일 정부는 1957년 연금대개혁을 단행했다. 연금대개혁 이전의 연금액은 개인이 보험료 납부를 통해 축적한 연금자산과 이자율에 기초해 결정됐다. 말하자면 ‘낸 만큼만 받는’ 방식이었던 거다. 

당시 노동자들은 매년 높은 임금인상을 통해 고도성장에 따른 경제적 과실을 향유할 수 있었다. 반면 노인세대는 과실의 배분 과정에서 소외돼 노인빈곤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당시 독일 노인세대는 두차례의 세계대전, 경제대공황, 초고도 인플레이션, 두차례의 화폐개혁 등을 겪으면서 자신들이 갖고 있던 자산들의 가치가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금자산과 이자율에 기초한 연금액이 적었던 탓에 빈곤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獨, 기금 고갈로 운영방식 바꾼 것 아냐

이에 따라 독일은 기존 방식을 버리고, 매년도 경제성장의 실적이 개인들 각자의 연금에 반영되도록 했다. 경제성장과 임금인상에 연계해 연금액이 결정되도록 한 거다. 이를 위해 ‘적립금 방식(정태적 연금)’이 아닌 ‘부과 방식(동태적 연금)’으로 바꿨다. 그러자 독일 노인들도 경제성장의 과실을 배분받을 수 있게 됐고, 노인빈곤 문제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현재 매월 거둬들이는 보험료를 매월 보험금으로 소진하는 독일의 국민연금 운영방식은 그렇게 탄생했다. 일부에서 말하듯 기금이 고갈돼서 전환한 게 아니다.  이런 독일의 방식은 과연 후대에 부담으로 작용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세대를 생산세대와 자녀세대로 두고, 세대 간 계약을 이들 상호 간의 관계(2세대 모형)로만 보면 생산세대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규정은 고스란히 자녀세대의 부담으로 귀결된다.

독일은 연금대개혁을 통해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했다.[사진=연합뉴스]
독일은 연금대개혁을 통해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했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세대를 자녀세대가 아닌 미래세대로 넓혀(다세대 모형) 현재의 생산세대에게 이익이 되는 규정을 만들면 이후 모든 미래세대가 비슷한 혜택을 받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후대에 더 큰 부담을 지우는 일 없이 사회 구성원들의 의지만 있다면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국민연금 구조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보험료가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적립금 방식이라고 해서 보험료가 올라가지 않는 건 아니다. 소득대체율을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그 기준에 맞추려면 어떤 방식을 취하더라도 일정한 보험료 인상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저부담 고급여’라는 하나의 현상만을 놓고 기금고갈을 운운하면서 국민연금 공포심을 조장할 일은 아니다. 적립금 방식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방법은 있기 때문이다. 보험료 인상은 그 다음 문제다. 우선은 국민연금제도의 운영원리ㆍ목표ㆍ기능을 올바로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한 현상파악과 신중한 문제제기, 문제를 해결할 대안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 socwjwl@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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