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두마리와 개돼지
[Economovie] 두마리와 개돼지
  • 김상회 정치학 박사
  • 호수 324
  • 승인 2019.01.31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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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공동경비구역 JSA❸

많은 영화에는 주연 못지않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조연들이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도 인상적인 조연들이 등장한다. 그중 영화 흐름의 물줄기를 쥔 조연은 아니지만 머리를 무겁게 하는 대사의 주인공이 있다. 어깨에 별 하나를 달고 있는 표 장군(기주봉 분)의 이야기다. “이수혁이 좀 봐. 쟤는 혼자서 두 마리나 죽이고 왔잖아!”
 

영화 속에서 한국군 수뇌부가 북한군을 세는 단위는 ‘명’이 아니라 ‘마리’다.[사진=공동경비구역 JSA 스틸 이미지]
영화 속에서 한국군 수뇌부가 북한군을 세는 단위는 ‘명’이 아니라 ‘마리’다.[사진=공동경비구역 JSA 스틸 이미지]

남한의 이수혁 병장과 남성식 일병, 북한의 오경필 중사와 정우진 전사, 그리고 북한군 장교 한 사람이 공동경비구역 북측 초소에서 ‘의문의 합류’ 중 북한군 장교와 정우진 전사가 총격에 사망한다. 북한 오경필 중사는 북측으로 튀고, 남성식 일병은 남측 초소로 도망치고, 다리에 총상을 입은 이수혁 병장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돌아와 구조된다. 북측 초소로 싱겁게 ‘마실’을 다니다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을 크게 만든 이수혁 병장은 북한군에 납치됐다가 북한군 2명을 사살하고 극적으로 탈출한 영웅으로 둔갑한다. 남한군 부대가 긴급출동해 이미 아무도 없는 북측 초소를 향해 신나게 총을 갈긴다.

남북이 씩씩거리며 서로 삿대질하는 상황에서 중립국 감시위원회에서 파견한 스위스의 소피 장(이영애 분) 소령이 진상조사에 나선다. 이수혁과 출동부대원의 진술을 받고 있는 현장에 표 장군이 들어온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서 북한군과 총격전을 벌이며 이수혁 병장을 구조한 병사에게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며 엄히 질책한다. 현장에서 빨갱이 ‘한 마리’도 못 죽이고 뭐 했냐고 못마땅해한다. “이수혁이 좀 봐. 쟤는 혼자서 두 마리나 죽이고 왔잖아!”

 

나와 다른 상대를 ‘마릿수’로 세는 것은 꼭 북한 사람들을 상대로만은 아닌 듯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공동경비구역을 책임지는 한국군 수뇌부가 북한군을 세는 단위는 ‘명’이 아니라 ‘마리’다. ‘마리’는 짐승이나 물고기·벌레 따위를 세는 단위다. 표 장군이 구사하는 ‘마리’는 ‘놈’이나 심지어 ‘x끼’ 등의 단위쯤은 욕이 아니라 매우 인간적인 대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역사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계급과 종교·이념·인종 등을 전선으로 삼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립과 적대관계가 명멸해왔다. 그러나 그 대립과 적대가 아무리 첨예하고 치열하다 해도 표 장군처럼 상대를 ‘마리’로 세었던 사례는 찾기 어렵다. 아무리 심한 비하와 멸시도 상대를 ‘악령’이라 하거나 ‘하등한 인간(sub-human)’으로 지칭하였을 뿐이다. 이교도는 악령으로 치부됐고 백인들에게 유색인종은 하등한 인간으로 치부됐을지언정 아예 ‘짐승’ 따위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같은 조상을 두고 수천년 동안 같은 역사를 살아온 북쪽의 민족을 ‘마리’로 부른다. 남한의 5000만 ‘명’이 북한의 2500만 ‘마리’와 통일을 하자고 한다.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인간과 개돼지 짐승의 교배가 가능할까. 남한의 5000만 명이 북한에 ‘서식’하는 2500만 마리 짐승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것인지, 2500만 마리 짐승들을 사육해서 잡아먹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발상이다.

 

온갖 ‘갑질 사건’ 주인공의 언행을 보면, ‘을’을 ‘마리’로 세고 있는 듯하다.[사진=뉴시스]

같이 살아가는, 혹은 같이 살아가야 할 나와 다른 상대를 ‘마릿수’로 세는 것은 꼭 북한 사람들을 상대로만은 아닌 듯하다. 국민을 ‘개돼지’로 정의 내린 교육부 고위관리도 있었지만 요즘도 끊이지 않는 온갖 ‘갑질 사건’의 주인공들의 언행을 들어보면, 이들 모두 ‘을’을 ‘마리’로 세고 있는 듯하다. 아마 그 회장님들은 직원 수를 ‘마리’로 계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직원들이나 아르바이트생의 급여를 ‘사룟값’으로 계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료는 허겁지겁 받아 깨끗이 핥아먹고 살 만큼만 주면 되는 것이지 그 이상 주는 것은 낭비며 죄악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단결과 사회통합과 화합을 열심히 강조한다. 북한 병사들을 ‘마리’로 계산하면서 부르짖는 통일이나, 노동자·서민을 개돼지로 부르며 외치는 사회통합 구호나 민망하고 공허하긴 마찬가지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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