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전쟁, 재벌이 10원 더 먹겠다고 덤벼든 꼴
골목전쟁, 재벌이 10원 더 먹겠다고 덤벼든 꼴
  • 김다린 기자
  • 호수 324
  • 승인 2019.02.01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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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의철 네이처인터내셔널 상무

골목슈퍼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대형 유통기업이 유통시장을 장악한 결과다. 그사이 여론까지 “굳이 살릴 필요가 있느냐, 대기업이 훨씬 편리하고 혜택이 많다”며 골목슈퍼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골목슈퍼는 정말 이대로 없어져도 될까. 2017년 4월 「우리가 경제다」라는 책을 통해 국민 중심 경제를 강조했던 김의철 네이처인터내셔널 상무는 “그럼에도 살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김 상무를 만났다. 

김의철 상무는 “한국 재벌기업이 유통시장 생태계의 씨를 말리게끔 둬선 안된다”고 강조했다.[사진=천막사진관]
김의철 상무는 “한국 재벌기업이 유통시장 생태계의 씨를 말리게끔 둬선 안된다”고 강조했다.[사진=천막사진관]

✚  골목슈퍼가 무너졌다. 이유가 무엇인가. 

“경쟁 상대가 너무 막강하다. 한국 재벌이다. 이들은 일본식 대기업 형태인 ‘자이바츠’보다도 힘이 세다. 글로벌 유통기업인 까르푸와 월마트도 밀어냈을 정도다.” 

✚  어떤 점에서 막강한가.
“한국 재벌은 한 기업집단 내에 거의 모든 산업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드문 형태다. 덕분에 신용카드ㆍ마일리지 혜택은 물론 판촉ㆍ홍보ㆍ광고 등 온갖 요소에서 골목슈퍼를 앞설 수 있다. 과거엔 골목슈퍼에도 ‘접근성’이란 강점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기업 편의점과 온라인쇼핑몰 때문에 앞선다고 보기도 어렵다. 골목슈퍼의 몰락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 골목슈퍼를 살리자는 여론은 과거에도 많았다. 그런데도 악화일로였다.
“여론은 장기적으로 언론의 영향을 받는다. 언론은 광고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한국의 재벌들은 거대 광고주다. 동네슈퍼를 보호하자는 여론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 골목슈퍼가 트렌드를 좇지 못한다는 점에서 외면하는 소비자도 있다. 
“맞다. 하지만 모든 유통업체가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게 옳은 건지는 의문이 든다. 세계 각국의 골목길엔 오래된 상점이 많고 장사도 잘 된다. 노포老鋪는 관광 콘텐트다. 이들 가게는 유행 제품을 팔아서 인기가 많은 게 아니다.” 

✚ 유독 한국의 골목슈퍼만 그렇단 건가. 
“외국의 노포는 거대 기업집단과 경쟁하는 환경에 놓여 있지 않다. 한국에선 골목슈퍼에서 취급하던 제품을 재벌기업도 똑같이 팔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10원의 마진을 놓고도 전쟁터처럼 가격경쟁을 한다.”

✚ 어찌됐든 지금 한국 유통시장은 대기업과의 경쟁이 필수다.
“개인적으로 시장경제를 옹호하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을 존중한다. 특히 경쟁은 이롭다. 소비자에게 편익을 주고 사회 전체의 효율을 향상시킨다. 골목슈퍼도 경쟁시장에 놓여있다. 아무리 재벌의 힘이 강력하다고 포기할 일이 아니다.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함에 둔감해져선 안 된다. 쾌적한 업장, 친절한 응대 등은 기본이다.”

모든 유통채널 오픈한 대기업

✚ 경쟁에서 지면, 밀려나야만 하나.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골목슈퍼를 살려야 한다. 경쟁의 성립조건을 보자. 같은 시장에 다른 경제주체가 있어야 한다. 상대가 없다면 경쟁도 없다.”

✚ 재벌기업끼리 경쟁할 수도 있다.
“이들 간 경쟁은 경쟁이 아니다. 유통시장 전반을 장악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과정이다. 재벌 기업은 단순히 판매채널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실타래같이 복잡한 유통사슬에서 이들은 최상위 지위, 갑이다. 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자에게도 그렇고, 이를 옮기는 물류업자에게도 그렇다.”

✚ 자세히 풀어 달라.
“건강한 생태계를 나누는 기준은 다양성이다. 생물종이 다양하면 생태계가 건강하단 평가를 받는다. 가령 외래종인 배스나 블루길 때문에 수많은 토종어류가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문제의식을 느낀다. ‘배스나 블루길이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라고 여기는 이는 많지 않다. 경제도 생태계다. 하물며 경제 얘기는 사람의 얘기 아닌가. 승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얼마나 공정한 시합이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승자독식ㆍ약육강식 논리만 따를 순 없다는 얘기다.”

✚ 정부의 소상공인 정책이 나온 건 그런 맥락에서였다.
“나는 이 싸움에서 정부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무엇 때문인가.
“정부 지원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쉽다. 그간 정책과 제도의 도움은 본래 취지가 왜곡되거나 능률적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오히려 시장경제 시스템을 부정한다는 역풍을 맞는다. 근본적인 처방도 아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서로 도울 수 있는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

✚ 어떤 방안이 있나.
“갑자기 골목슈퍼 사장님들에게 ‘혁신하라’고 외치면 들을 리 없다. 길게 보고 방법을 알려주면서 그 시간을 버티게 해야 한다. 동정의 여론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골목슈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골목슈퍼가 사라져도 불편을 느끼지 못할 거란 주장도 많은데.
“맞다. 당장은 불편하지 않을 거다. 대체로 참사나 비극은 보이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불편을 못 느낀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몇몇 소수기업이 국민 생활과 밀접한 유통시장을 장악하면, 그때부턴 제조업체와 소비자는 대안이 없다.”

정말 공정한 경쟁이었나

✚ 대안이 없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하나의 유통기업이 유통시장 전체를 장악했다는 시나리오가 있다. 이 시나리오의 유통기업은 공포다. 마진을 높이기 위해 제조업체에 납품단가를 낮춰 달라 요구하면 제조업체는 거절할 수 없다. 인건비를 줄이겠다며 모든 매장에 무인 시스템을 도입해 대량 실직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물류ㆍ광고ㆍ판촉은 계열사에 몰아주면 된다. 이렇게 기업이 곳간을 불리는 게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다. 대안이 없다.”

✚ 유통 대기업들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 중심의 경제’를 선언했다. 이게 실현되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사람은 무한히 경쟁할 수 없다. 무한히 일할 수도 없다. 평생 소득 없이 살 수 없지만, 평생 소득을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 유통 대기업도 지금이라도 누가 오래 살아남느냐만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함께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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