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발전법 누더기 역사

1997년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의 취지는 이렇다. “유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과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고 건전한 상거래질서를 세움으로써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 그로부터 21년여, 유통산업발전법이 받아든 성적표는 어떨까. ‘균형 있는 발전’ 면에선 낙제점에 가깝다. 유통산업의 한축인 동네슈퍼조차 지켜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34건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국회 계류중이다.[사진=연합뉴스]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34건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국회 계류중이다.[사진=연합뉴스]

‘효과 없는 대형마트 규제법’으로 비판 받는 유통산업발전법. 사실 이 법의 애초 목적은 규제가 아니었다. 1996년 정부는 유통시장을 전면 개방하고 이듬해 유통산업발전법을 제정했다. 취지는 지금과 달리 유통산업을 진흥한다는 것이었다. 대형마트 등 대규모점포(3000㎡ 이상ㆍ약 907평)의 개설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한 건 이 법의 취지를 잘 보여주는 예다.

유통산업발전법을 발판으로 대형마트들이 세력을 빠르게 확장했고, 2006년을 기점으로 포화상태에 접어들었다. 가파른 성장세가 꺾이자 유통공룡들은 골목을 파고들었다.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동네슈퍼 상인들의 요구가 빗발친 것도 이때부터다. 국회는 여론이 들끓자 동네슈퍼를 지키기 위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쏟아냈다. 18대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은 36건, 19대 국회는 65건에 달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거기까지였다. 국회의 높다란 담장을 통과한 법안은 각각 5건(가결률 1.8%), 6건(3.9%)에 그쳤다.

그나마 통과된 법안도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마트에브리데이ㆍ홈플러스익스프레스ㆍ롯데슈퍼ㆍGS슈퍼마켓 등 기업형슈퍼마켓(SSM)이 개정법을 비웃듯 세력을 넓히면서 동네슈퍼를 위협했다. 대기업의 자본을 등에 엎은 편의점도 ‘유통 선진화’라는 깃발을 내걸고 동네상권을 파고들었다. 20대 국회에는 34건의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상권이 망가진 다음 규제를 강화하는 패턴이 반복되는 사이 동네슈퍼는 오늘 한뼘 더 무너지고 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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