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사업자 위한 간이과세제도 빛과 그림자

영세사업자에게 부가가치세 혜택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간이과세제도. 하지만 예비사업자가 간이과세자로 등록할 목적으로 관할 세무서를 찾아가면 난감하기 짝이 없을 때가 많다. 세무공무원조차 기준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해서다. 그렇다고 잘 모르는 세무공무원이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다. 늘 그렇듯 모든 피해는 애먼 사업자가 덤터기를 쓸 가능성이 높다. 간이과세제도, 누굴 위한 것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그 답을 찾아봤다. 
 

간이과세제도(2000년 신설)는 영세사업자를 위한 제도다. 간이과세 기준(연매출 4800만원 미만)에 속하면 부가가치세를 깎아주거나 장부를 기입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 벌어들이는 돈이 많지 않다고 판단해 세금을 줄여주고 쓸데없는 비용이 나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연매출이 3000만원 미만인 간이과세 사업자는 한발 더 나아가 부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일종의 차별과세다. [※ 참고: 지난해 12월 부가세법을 개정해 연매출 기준을 24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조정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간이과세제도의 형평성 문제를 꼬집고 있다. 일반과세자와 달리 취급하는 것 자체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폐단도 많다. 간이과세 배제 기준에만 해당하지 않으면 신규사업자는 간이과세자가 될 수 있는데, 이는 큰 맹점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면 해당 지역 세무서가 직전년도 매출을 따져 사업자를 간이과세자로 유지할지 일반과세자로 전환할지를 판단한다. 

만약 간이과세자 기준을 넘어서는 매출을 올렸다면 일반과세자로 전환해 통보한다. 그런데 그게 전부다. 기준을 넘는 매출을 올렸더라도 간이과세 기간에 올린 매출에는 부가세를 추징하지 않는다. 간이과세제도가 ‘탈세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익명을 원한 한 세무사는 “국세청이 간이과세자에서 일반과세자로 바뀐 사업자들에게 직전년도의 부가세를 추징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면서 “영세사업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일부에선 이를 악용해 수시로 폐업을 하고 다른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다시 하는 방법으로 부가세를 덜 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간이과세제도가 과세 형평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간이과세제도가 과세 형평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더 심각한 문제는 똑같은 간이과세자인데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사례를 보자.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에서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던 신영희(46)씨는 지난해 실업자가 됐다. 다니던 회사가 불경기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한 탓이었다.

재취업이 어려웠던 신씨는 재택업을 고민하던 차에 흥미로운 아이템을 알게 됐다. 소비자가 원하는 문구를 특정한 종이에 디자인해서 판매하는 일이었다. 노동집약적인 일이어서 큰돈을 벌진 못할 것 같았지만 알바보단 쏠쏠하고, 경험을 살릴 수도 있으며, 재택근무라는 점에서 아이를 키우는 신씨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간이과세 배제되는 신산업들

먼저 사업을 시작한 신씨의 지인은 “연매출 4800만원 미만이면 간이과세자가 돼 세무에 신경 쓸 일도 없다”면서 “소일거리로 안성맞춤”이라고 조언했다.  신씨는 얼마 후 간이과세자로 사업자를 등록하기 위해 지역 세무서를 방문했다. 지인이 알려준 대로 신청서도 작성했다. 업태는 ‘서비스업’, 종목은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해당 세무서 공무원은 “이 업종(업태와 종목)으로는 간이과세 사업자로 등록할 수 없다”며 반려했다. 먼저 일을 시작한 지인의 사업자등록증을 보여주며 “이미 이 업종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왜 안 되느냐”고 따져물었지만 소용 없었다. 공무원은 “지인이 거주하는 지역에선 해당 업종을 간이과세자로 등록할 수 있지만 서울과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선 간이과세자로 등록할 수 없는 업종”이라면서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쩔 수 없었던 신씨는 사업 내용을 충분히 설명한 후 “그럼 이런 사업은 어떤 업종에 넣어서 간이과세 사업자등록을 해야 하는지 조언을 해달라”고 했다. 담당 공무원은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니 사업자등록 가부를 따지는 담당자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신씨는 담당자와의 수차례 전화통화 끝에 애초 생각한 업종과는 전혀 다른 간이과세자로 등록됐다. 업태는 ‘기술서비스업’, 종목은 ‘광고물 작성업’이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답은 간단하다.  신씨의 아이템이 현재의 사업자 분류로는 어디에도 집어넣기 힘든 업종이었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업태는 제조업, 종목은 디자인에 가까웠다. 신씨는 “일단 간이과세자로 등록을 하긴 했지만, 내가 하는 사업과 전혀 다른 업종으로 분류됐다”면서 “추후 생각지도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또다른 사례를 보자. 국세청의 간이과세 배제 업종 고시에 따르면 ‘차량용 연료 소매업’은 간이과세 배제 업종으로 묶여 있다. 이런 기계적인 분류에 발목이 잡힌 직장인 강태호(34)씨는 오랫동안 준비했던 창업을 잠시 미뤘다.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찾아가는 주유 서비스’ 사업을 준비했지만 관할 세무서로부터 “간이과세자 대상이 아니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에도 애매한 기준과 판단이었다. ‘찾아가는 주유 서비스’는 업태를 소매업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선 운송업이나 서비스업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 앱으로 이용자를 이어주는 역할만 한다면 ‘소프트웨어개발 공급업’이 될 여지도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업태에 넣을지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강씨가 간이사업자가 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신씨나 강씨와 비슷한 경험을 한 예비사업자는 한둘이 아닐 거다. 대부분의 예비사업자들이 사업자 등록시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이로운지 잘 모른다. 그래서 세무공무원에게 조언도 구한다. 신씨의 경우 애초에 지인의 사업자등록증까지 복사해서 들고 갔다. 
 

하지만 새로운 업종이 등장하면 세무공무원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 세무공무원 입장에선 예비사업자를 위해 적극적인 조언을 해줄 이유도 없다. 이형춘 이룸세무회계사무소 세무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세무공무원의 상담과 견해는 ‘공적인 견해표명’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과세자를 간이과세자로 잘못 등록하거나 업종을 잘못 분류해서 기재한다고 해서 세무공무원에게 불이익이 생기는 일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납세자가 충분한 사업 설명을 한 뒤에도 분류를 잘못했다면 세무공무원에게 귀책사유를 물을 여지는 있기 때문에 분류가 모호할 때는 세무공무원이 소극적으로 임하거나 간이과세자 등록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등록 잘못하면 납세자만 불이익

반대로 예비사업자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정부가 특정 업종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할 경우, 사업자의 업종이 다르게 분류돼 있으면 지원을 못 받을 수 있다. 사업자의 종합소득세 신고시 지출을 경비로 인정해주는 비율도 다르다. 장부를 기장하지 않는 사업자의 경비를 공제할 때는 업종별로 나눠진 기준경비율을 적용하는데, 이에 따르면 도ㆍ소매업의 경우 지출의 5~10%, 운수업은 지출의 20~30%를 경비로 인정해준다. 

어떤 업종으로 신고하느냐에 따라 많게는 수백만원의 세금이 차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엉뚱한 업종으로 신고했다가 영세사업자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최원석 서울시립대(세무학) 교수는 “간이과세 제도는 애초부터 일반과세자와 달리 영세한 간이과세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기 위해 등장했고, 그래서 과세 형평성의 원칙에 분명히 어긋난다”면서 “여기서 다시 어떤 기준을 잡고 그 기준에 따라 배제를 했을 텐데 과연 그런 기준들이 과세 형평성을 만족하는 것일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의 지적은 설득력이 상당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전국 간이과세 사업자 수는 164만6647명(2017년 기준). 이들 중 42만3564명(25.7%로 1위)이 부동산 임대업자다. 또한 이 가운데 29만6830명(70.1%)이 서울에서 부동산 임대업을 하고 있다. 소유한 부동산의 크기가 기준만 충족하면 간이과세 사업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이지 않은 간이과세기준

그런데 그 기준이 지나치게 넓다. 부동산 임대업의 경우, 면적과 공시지가를 따져 기준에 부합하면 간이과세를 적용하는데, ㎡당 공시지가를 1000만원 이상일 때부터 100만원 미만일 때까지로 구분해 놨다. 부동산 업자 중 간이과세자가 유독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형춘 세무사는 “간이과세 제도가 여러 모로 긍정적인 기능을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적용 혹은 배제 기준에 있어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 많고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라면서 “간이과세제도에 손질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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