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경청과 리액션
고운 말은 빛이 되고 …
이해인 수녀가 전하는 진심

요즘 정치인은 피아 구분 없이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독기 서린 말을 뿜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손혜원 의원(왼쪽)과 홍준표 전 대표. [사진=뉴시스]
요즘 정치인은 피아 구분 없이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독기 서린 말을 뿜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손혜원 의원(왼쪽)과 홍준표 전 대표. [사진=뉴시스]

‘표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족집게 축구해설가 이영표 전 국가대표 선수는 요즘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출연금지’라는 징계조치를 내린 이유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는 지난해 6월 러시아 월드컵 중계방송을 하던 중 장현수 선수가 태클을 하고 페널티킥을 준 장면은 해설자로서 언급을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홍철 선수에게 한 말(소속팀 돌아가서 크로스 연습을 더 해야 합니다)은 지금 생각해도 큰 실수였다고 자책한다. 그는 무심코 쏟아낸 비수처럼 ‘모진’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려 자신은 해설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방송을 그만뒀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남에게 가혹한 말을 쏟아낸다. 영화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막말과 욕설이 넘쳐난다. 설화로 물러난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50ㆍ60대는 한국에서 할 일 없다고 산에나 가고 SNS에서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ㆍ인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 앉아서 취직 안 된다고 ‘헬조선’이라고 하지 말라. 여기(아세안)보면 ‘해피 조선’”이라고도 했다. 가뜩이나 일자리 대란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책책임자가 엉뚱하게 ‘국민 잘못’이라고 책임을 전가해 국민의 자존심을 뒤집어 놓았다.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꼴뚜기” “망둥이”라는 말이 청와대 인사들의 입에서 나온다. 여당 대표는 장애인들 앞에서 “정치권에 정신장애인이 많다”고 했다. 목포 부동산 매입을 놓고 시비가 벌어지고 있는 손혜원 의원의 말에는 독기가 서려있다. 당 대표 경선 참여를 선언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내부 총질에 일가견이 있다. 같은 당원에게 ‘연탄가스’ ‘빨갱이’ ‘바퀴벌레’ ‘고름 암덩어리’ ‘사이코패스’라는 말로 매도한다. 이 땅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발언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혹시 국민들이 불편하게 느끼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조차 없는 듯하다. 

지도자들의 입에서 막말이 쏟아지는 건 국가적인 과제를 해결하려는 책임감보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나 당리당략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고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데 자신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달을 겨냥하는 손가락을 문제 삼는다. 내 편이면 무조건 옳고, 상대편이면 일단 깎아내리고 본다. 특정 정치적ㆍ사회적 문제의 본질을 따지고 개선방안을 찾기보다는 흑백논리로 대립시키고, 상징적인 문제로 쟁점화하고 있다.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단지 인격을 믿을 뿐이다.” 지난해 8월 세상을 떠난 미국 보수정치의 거목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남긴 말이다. 그는 필요에 따라 강하게 비판하더라도 언제든 품격을 잃지 않았다. 조롱이나 힐난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밤 미국인들은 지구 위의 가장 위대한 국민이 됐다.”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패한 뒤 한 승복 연설이다. 유세기간에 한 지지 여성이 오바마의 인종과 성향을 문제 삼으며 “그를 믿을 수 없다. 아랍인”이라고 하자 매케인은 마이크를 잡고 “아니다. 그는 점잖은 가정의 훌륭한 시민”이라고 옹호했다.

부산 광안리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에서 즉석 토론회가 열렸다. 주제는 ‘화가 나서 감정조절이 안 될 때 어떤 표현을 쓰면 좋을까?’ 성직자들이라도 사람인 이상 화가 날 때는 있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욕설이나 막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너무 심하지 않아요?’ ‘인내의 한계를 느껴요.’ ‘더 이상 못 참겠어요’ 등의 후보가 등장한 가운데 ‘보통 일이 아니에요’가 으뜸으로 뽑혔다. 이해인 수녀가 쓴 ‘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에 나오는 얘기다.

‘라손하라의 먼지’란 유대인 말이 있다. 특별히 비판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얘기이지만 은근히 남의 명예에 손상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편지를 쓴 이의 지식수준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맞춤법 실수투성이인 그 편지를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뜻이다. 

소통은 내 주장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경청하고 리액션과 맞장구를 열심히 쳐주는 거다.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한마디 말은 바로 “당신 덕분이야!” 아닐까. 모든 사람이 아름다울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 아름답게 말할 수는 있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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