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석의 Branding | 동네빵집의 달콤한 반란기

어느 동네나 똑같은 브랜드의 빵집에서 비슷한 맛의 빵을 판다. 골목마다 하나씩 있던 ‘동네빵집’은 언젠가부터인가 자취를 감췄다. SNS의 세상에선 조금 다르다. 사라졌던 동네빵집들이 금세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고 있다. 이들 빵집의 전략을 통해 사람들이 작은 브랜드에 열광하는 이유를 살펴봤다.

동네빵집의 성장은 작은 브랜드의 큰 반란이라 할 만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동네빵집의 성장은 작은 브랜드의 큰 반란이라 할 만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프랜차이즈 빵집의 성장이 꺾이고 있다. 좋은 재료와 창의적인 레시피로 무장한 작은 동네빵집이 늘고 있어서다. 앞으론 이런 작은 브랜드가 골목을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 몇 년 전, 필자가 제과업계 클라이언트로부터 들은 설명이다. 그땐 웃어넘겼다. 그보다 몇년 전에는 “프랜차이즈 빵집의 공습으로 동네 빵집들의 씨가 마르고 있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감상은 다르다. 골목 곳곳에서 낯선 이름의 동네빵집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작은 브랜드의 선전은 제과업계만의 일은 아니다. 여러 방면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능력으로 만든 콘텐트가 주목받고 있다.

그간 브랜드 시장을 기업이 주도했던 걸 떠올리면 큰 변화다. 기업들은 막대한 자본을 등에 업고 세련되고 화려한 콘텐트를 선보였다. 하지만 작위적이고 천편일률적인 느낌을 지울 순 없었다. 작은 브랜드는 이런 기업 브랜드의 훌륭한 대안이다. 요즘 사람들의 세분화된 취향과 다각화된 개성을 맞출 수 있어서다.

물론 작다고 해서 다 성공할 순 없는 법. 대기업처럼 체계적인 마케팅을 할 수 없는 이들에겐 난관이 많다. 작은 브랜드로 성공한 국내 빵집의 사례를 통해 이를 넘기 위한 묘수를 살펴보자.

■미국 동네빵집의 한국 진출기 = 타르틴 베이커리 한남동점. 빵 좀 먹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인생 빵집’으로 꼽힌다. 이유가 있다. 미국에 본점이 있는 타르틴 베이커리의 빵은 뉴욕타임스가 ‘세계 최고의 빵’이라 극찬했다. 허핑턴포스트는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 25가지 음식’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 빵을 미국이 아닌 서울 한복판에서 맛볼 수 있게 됐으니, 사람들의 기대가 뜨거울 수밖에 없다.

필자도 최근 이곳을 다녀왔다.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 디저트 케이크를 주문하고서 받아든 계산서엔 2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 적혀 있었다. 먹고 나선 비싸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맛은 평대로 훌륭했다. 무엇보다 식감이 흥미로웠다. 그릴치즈 샌드위치는 노릇하게 구워진 단단한 표면과 달리 안쪽은 부드럽고 촉촉했다. 속재료인 샐러드도 신선했다. 곁들여진 드레싱의 간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아 안성맞춤이었다.

“죽기 전에 먹어야 할 빵”

필자에겐 이상적인 조합의 맛이었다. 커피의 맛도 그랬다. 산미가 어느 정도 있는 짙은 에스프레소는 향도 깊었다. 디저트로 먹은 타르트는 깔끔한 마무리였다. 신맛과 단맛이 적절하게 어우러졌다.

빵 맛의 비결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필자는 개방성에서 찾는다. 타르틴 베이커리의 역사를 보자. 200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문을 연 이 빵집의 주인은 채드 로버트슨과 엘리자베스 프루에잇 부부다. 특별한 브랜딩이나 사인도 없는 단출한 출발이었다.

그럼에도 업계의 주목을 받았던 건 CEO인 채드 로버트슨이 자신의 베이커리 레시피를 과감하게 공개했기 때문이다. 강연ㆍ기고문ㆍ유튜브 등 방법도 다양했다. 레시피를 꽁꽁 감추는 국내 맛집이 들으면 기절할 얘기지만 로버트슨은 피드백과 소통을 통해 더 나은 레시피를 만들길 원했다. 덕분에 다양한 방면의 셰프ㆍ파티셰와 협업을 할 수 있었고, 창의적인 레시피를 탄생시켰다. 작은 동네빵집에서 출발한 타르틴 베이커리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아티장(장인) 베이커리’가 됐고, 국내 사업도 순항하게 된 듯하다.

■제품과 장인정신 = 필자가 상수동 ‘폴310(PAUL310)’을 처음 접한 건 TV 브라운관이었다. 폴310의 오너가 세계 각국을 돌면서 베이커리 마스터가 되기 위해 고진감래의 노력을 기울이는 스토리가 방송됐다. 특히 3가지의 각기 다른 프랑스산 밀가루를 섞는 반죽을 보면서 “빵을 만들기 위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감탄했다.

호기심을 못 이기고 폴310을 찾았다. 그곳에서 초코 코스티아와 크루아상을 시식했다. 카스티아는 카스텔라의 원조격의 빵이다. 사실 필자는 카스텔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늘 배고팠던 군인 시절에도 카스텔라 간식이 나오면 주변 동료에게 양보했을 정도다.

하지만 폴310의 초코 카스티아는 필자의 ‘카스텔라 선입견’을 단번에 제압했다. 웬만한 케이크보다 부드러웠고, 단맛은 절제돼 있었다. 입을 오물거리면서도 속으로는 “도대체 빵을 얼마나 집요하게 만들면 이런 맛이 나오는 거지?”라고 되뇌었다. 특별한 장식도 없는 폴310의 포장백에 ‘인생빵집’이란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있던 것도 눈에 띄었다. 가히 그렇게 자평할 만했다. 장인정신이라 부를 만한 집요한 노력은 작은 브랜드의 성공 요소 중 하나다.

■분명한 경영 철학 = 마지막으로 소개할 브랜드는 연남동의 ‘호라이즌16(Hori zon16)’이다. 지인에게 이 빵집의 레몬케이크를 선물 받은 적 있었는데, 그 맛이 훌륭했다. SNS를 수소문한 끝에 호라이즌16에도 가봤다. 맛도 좋았지만, 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에 반했다. 

그 철학은 이름에 담겨있다. 이 가게는 한달에 16일 정도만 문을 연다. 오너가 일과 삶의 균형의 중심(지평선)이 되는 근무일수를 16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워라밸’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깨달음이 있었던 걸까. 호라이즌16의 빵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을 위로하는 맛이었다.

‘개방성(타르틴 베이커리)’ ‘진정성(폴310)’ ‘자신만의 철학(호라이즌16)’ 등은 대기업이 모방하기 어려운 작은 브랜드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이다. 이제 브랜드의 세계에서 규모는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어쨌든 소비자에게는 진실한 얘기가 더 잘 통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정안석 인그라프 대표 joel@ingraff.com | 더스쿠프 브랜드 전문기자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