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편 진도❻~목포❶

이순신은 목포 보화도(현 고하도)에서 수군을 재정비했다. 사진은 목포 고하도 이순신 유적지. [사진=뉴시스]
이순신은 목포 보화도(현 고하도)에서 수군을 재정비했다. 사진은 목포 고하도 이순신 유적지. [사진=뉴시스]

진도대교 아래를 지나는 울돌목의 물결은 오늘도 사납습니다. 울돌목에서 펼쳐진 명량해전 당일 이순신의 기록을 지난호에 이어 소개합니다. 

2척의 배가 먼저 교전하고 있을 때 적장이 탄 배가 그 휘하麾下의 배 2척에 지령하니, 일시에 안위의 배에 개미처럼 달라붙어서 기어가며 다퉈 올라갔다. 이에 안위와 그 배에 탄 군사들이 각기 죽을 힘을 다해서 또는 능장稜杖, 몽둥이를 잡고 혹은 긴 창을 잡고 혹은 수마석水磨石, 반들거리는 돌덩어리를 무수히 난격하였다.

배 위의 군사들이 거의 힘이 다하자, 내 배가 뱃머리를 돌려 곧장 쳐들어가서 빗발치듯 난사하였다. 적선 3척이 거의 뒤집혔을 때 녹도 만호 송여종과 평상포 대장代將 정응두丁應斗의 배가 잇달아 와서 협력하여 사살하니 왜적이 한 놈도 살아남지 못했다.

항복한 왜인 준사俊沙는 안골에 있는 적진에서 투항해온 자인데, 내 배 위에 있다가 바다를 굽어보며 말하기를, “무늬 놓은 붉은 비단옷 입은 자가 바로 안골진에 있던 적장 마다시馬多時입니다”고 말했다. 나는 무상無上 김돌손金乭孫을 시켜 갈구리로 낚아 뱃머리에 올리게 하니, 준사가 날뛰면서 “이 자가 마다시입니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바로 시체를 토막 내게 하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아군의 여러 배들은 적들이 침범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일시에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나아가 각기 지자와 현자 총통을 발사하니 소리가 산천을 진동하였고, 화살을 빗발처럼 쏘아 적선 31척을 격파하자 적선들은 후퇴하여서 다시는 가까이 오지 못했다. 우리의 수군이 싸움하던 바다에 정박하기를 원했지만 물살이 매우 험하고 바람도 역풍으로 불며 형세 또한 외롭고 위태로워 당사도唐沙島로 옮겨 정박하고 밤을 지냈다. 이번 일은 참으로 천행이었다. -정유년 9월 16일, 「난중일기」 중 정유일기, 명량해전 당일


이순신은 명량해전 후 승리를 이어갔습니다. 거칠 것 없이 몰려들던 왜군에게 크게 한방 먹인 이순신은 목포 고하도(당시 보화도)로 가서 진을 쳤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수군을 재정비했습니다. 조선 수군은 고하도에 이듬해 2월 17일까지 석달 열흘 동안 머물면서 예전의 강력한 모습을 빠르게 되찾아 갔습니다. 조선 수군의 군량미가 확충됐으며, 전선이 정비되고 병력이 증강됐습니다. 

사경四更에 첫 나팔을 불고 배를 출발하여 목포로 향하는데, 이미 비와 우박이 섞여 내리고 동풍이 약간 불었다. 목포에 갔다가 보화도寶花島로 옮겨 정박하니, 서북풍을 막을 것 같고 배를 감추기에 매우 적합했다. 그래서 육지에 올라 섬 안을 돌아보니, 형세를 이룬 곳이 매우 많으므로 진을 치고 집 지을 계획을 세우고자 했다. -정유년 10월 29일, 「난중일기」 중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passwing7777@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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