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와 KT의 5년

‘국정농단 연루’ ‘불법정치자금 후원’ ‘아현동 통신대란’…. KT가 눈총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CEO 황창규 회장의 행보는 당당하다. KT의 경영실적을 몰라보게 개선했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이를 황 회장의 공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 경쟁사의 실적도 괄목성장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KT만 주가가 하락했다는 점도 꼬집을 만하다. 실적과 주가가 ‘역관계’였다는 얘기다. 황 회장이 KT에서 남긴 ‘황黃의 법칙’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KT 5년 ‘황의 법칙’이 남긴 실적을 취재했다. 

황창규 회장은 실적 개선의 공로를 인정받아 민영화된 KT 사장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다.[사진=연합뉴스]
황창규 회장은 실적 개선의 공로를 인정받아 민영화된 KT 사장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다.[사진=연합뉴스]

“통신을 중심으로 융합서비스를 선도해 1등 KT를 실현하겠다.” 2014년 1월 27일 KT에 13번째 수장이 등극했다. 황창규, 낯익은 이름이었다. 한국 반도체 신화를 얘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인물이었다.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재직 당시 반도체 집적도가 매년 2배씩 증가한다는 ‘황黃의 법칙’으로 세계 반도체 역사를 새로 썼다. 통신시장에도 이런 혁신을 보여주리란 기대가 컸다.

이후 황 회장은 5년간 쉼표 없이 KT를 경영했다. 하지만 ‘황의 법칙’과 같은 능력보단 엉뚱한 곳에서 조명 받았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린 게 시작이었다.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회삿돈 18억원을 댔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 최순실이 추천한 인물을 광고책임자로 임명했다. 아울러 최순실 소유 회사를 광고대행사로 선정해 일감을 몰아줘 검찰 조사를 받았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구설에 시달렸다. KT는 지난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2014~2017년 회삿돈으로 대량 구입한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꾸는 일명 ‘상품권깡’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여야 국회의원 90여명에게 총 4억3000만원의 후원금을 건넸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엔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 걸친 수백만명의 일상을 마비시켰다. KT 아현지사 건물 지하의 통신구(케이블 부설용 지하도) 연결통로에서 발생한 화재 때문이었다. 작은 화재가 통신대란으로 이어진 건 KT의 유지ㆍ관리 투자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피해자 보상과 관련한 공방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밖에도 ‘황 회장 셀프 연임 논란’ ‘국회의원 자녀 특혜 채용 논란’ 등 이슈가 끊이질 않았다.

그럼에도 황 회장의 행보는 당당하다. 지난 1월 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19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 참석해 ‘미스터 5G’라는 별명도 얻었다. 황 회장은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 초청으로 한국 기업인 중 유일하게 초대됐다. KT 민영화 이후 연임에 성공한 사람도 황 회장이 유일하다. 

숱한 스캔들에도 황 회장은 2020년까지 KT를 이끌 적임자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유가 있다. 몰라보게 달라진 실적 때문이다. 취임 당시 황 회장은 ‘KT의 구원투수’로 불렸다. 2013년 말 KT는 당기순손실 603억원을 기록했다. 이 회사가 연간 단위 적자를 기록한 건 처음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KT의 신용등급을 A3에서 Baa1으로 끌어내렸다. 이석채 전 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신사업들이 성과를 내지 못한 탓이었다.

내우외환 시달린 KT 

하지만 황 회장이 조종간을 잡은 이후부턴 달랐다. 2015년부터 3년 연속 영업이익 1조원대를 기록했다. 2013년 당시 3.52%에 불과했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3분기 6.21%까지 끌어올렸다. 170.87%에 달했던 부채비율은 126.21%로 쪼그라들었다. 

언뜻 훌륭한 실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뒷말도 많다. 한현배 카이스트 통신공학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황 회장 취임 당시는 LTE 서비스가 본격 확산되던 시기였다. 특히 2013년 이후 이통3사는 ‘LTE 데이터 무제한요금제’를 앞다퉈 출시했다. 3G 요금제보다 값이 비쌌고, 부가서비스도 많았다. 이통3사 모두가 손쉽게 달콤한 과실을 가져갔다. KT만 승승장구했다는 게 아니란 얘기다.”

호실적은 황 회장의 경영능력보다 통신시장이 호황기에 접어든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LG유플러스는 2013년 5421억원에 불과했던 영업이익이 2017년엔 8263억원까지 치솟았다. SK텔레콤은 이동통신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는 가운데서도 매출 규모를 늘렸다. 2013년 16조6021억원이던 게 2017년엔 17조5200억원으로 상승했다.

황 회장의 임무는 실적 개선이 다가 아니다. 취임 일성으로 ‘통신 중심의 KT’를 외쳤다. 본업인 통신시장의 경쟁력을 회복하자는 거다. 이 목표는 달성했을까. KT의 이동통신 시장점유율은 2013년 30.1%에서 2018년 3분기 31.5%로 소폭 상승했지만, 그뿐이다. 가입자 수 기준 시내전화 시장 점유율은 같은 기간 81.5%에서 80.7%로 감소했고,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서도 42.1%에서 40.6%로 줄었다. 

특히 IPTV 시장 지배력의 감소세가 가파르다. 2013년 58%에 달했던 IPTV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47.6%까지 하락했다. 이통3사 중 최초로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이점을 안고 시작했지만, 경쟁사와의 격차가 해마다 줄고 있다. IPTV 시장이 최근 10년간 여러 방송사업자 중 가장 높은 연평균 성장률(38.2%)을 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뼈아픈 대목이다. 

이 때문일까. 주식시장은 이통3사 중 KT의 경쟁력을 가장 얕보고 있었다. 황 회장 취임일인 2014년 1월 27일 KT의 주가는 2만9850원이었다. 올해 1월 31일 주가는 2만8600원. SK텔레콤 주가는 같은 기간 20만5500원에서 25만8000원으로 25.5% 상승, LG유플러스는 43.8%(1만200원→1만5100원) 올랐다. 이통3사 중 유일하게 KT만 하락했다. KT 황창규호의 5년을 좋게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향후 실적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거다. 이미 실적 하락은 시작됐다. KT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017년 대비 11.4%나 줄었다. 황 회장은 그 돌파구로 차세대 통신인 5G 시장 선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장밋빛 시나리오다. 통신장비 업계 관계자는 “지난 수년간 통신업계가 5G가 세상 만물을 위한 디지털 인프라라도 되는 양 너무 부풀려 놨다”면서 “LTE 속도로도 부족하지 않아 당장은 쓸 곳이 없고, 그나마 쓰임새가 있어 보이는 자율주행차 기술은 상용화 기약이 없다”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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