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계 슬픈 자화상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 위기”라고 말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태극기부대(우파)냐’는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진다.“ 진짜 악재는 최저임금보다 임대료”라고 표현하면 ‘문빠(문재인 추종자)냐’는 비판을 받는다. 자영업의 위기 요인을 찾아 대안을 제시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역대 정부도 자영업을 살려낼 묘수를 찾아내지 못했다. 자영업이 벼랑에 몰렸다. 엎친 데 덮인 격으로 살벌한 진영논리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자영업계의 슬픈 자화상을 살펴봤다. 

자영업 시장은 경쟁과 분쟁으로 곪아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자영업 시장은 경쟁과 분쟁으로 곪아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편에서 말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다른 한편에서 맞받아친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보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줄었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 아니다.” 자영업 시장과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곤 이처럼 상반된 의견이 나온다. 같은 문제를 두고 극단적인 견해가 부딪히는 이유는 뭘까. 많은 이들이 그 이유를 ‘진영 논리’에서 찾는다. 정치적 이해관계의 틀에서 경제이슈를 해석하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실은 둘 다 맞는 얘기다. 자영업 시장에 최저임금 인상보다 심각한 문제가 숱하게 많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최저임금 인상이 가뜩이나 힘든 자영업자의 감정을 건드렸다는 걸 부인할 수도 없다. 

두 의견 중 틀린 점도 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이 자영업자를 힘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이른바 ‘(경제적) 보수진영’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가령, 자영업 침체가 오래가는 건 비싼 땅값, 이를테면 ‘임대료’와 상관관계가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자영업 시장에 타격을 입혔다는 주장을 일종의 ‘진보진영’이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늘었다는 데 뭐가 문제냐”라고 거세게 반박하는 것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자영업자가 고용한 직원의 추이가 통계에 100% 잡힌다고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직 자영업자인 박지호 NCS(국가직무능력표준) 컨설턴트는 “직원을 여러명 두고 있던 자영업자가 줄고, 1명을 쓰는 신규 자영업자가 늘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영업 시각 입장 따라 제각각 이처럼 자영업의 현주소를 바라보는 시각은 입장과 진영에 따라 제각각이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정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뭘까. 답은 간단하다. 자영업계가 왜 침체에 빠졌는지 근본원인부터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에 자영업자는 왜 그리 많은지, 혹시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건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역대 정부와 우리 사회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꼬집어 말하면 ‘자영업을 살리겠다’고 수없이 외쳤던 역대 정부들은 지금까지 한 일이 거의 없다. 흔들리는 자영업계의 고질병을 고치지도 못했고,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 놓지도 못했다. 

먼저 자영업계의 민낯부터 해부해보자.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준비 없이 이 무서운 시장에 뛰어든다. “회사 잘리면 식당이나 열까”라는 심리에서 기인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갈 곳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다. 구조조정 칼바람을 맞고 거리에 나앉으면 ‘불러주는 곳’이 거의 없다. 그러니 자영업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출혈경쟁 탓에 폐업률은 높아진다. 장사를 다시 접고 재취업 전선에 나서는 것도 어렵다. 은퇴자나 퇴직자에게 사회의 벽은 높고 가파르다. 

 

혹여 장사가 잘 돼도 걱정이다. 식당이든 잡화상이든 매장에 손님이 끊이지 않으면 건물주가 나타나 임대료를 올리거나 스스로 매장을 운영하겠다면서 으름장을 놓기 일쑤다. 10년이라는 보장기간이 있지만, 보장기간이 끝나면 십중팔구 쫓겨난다고 봐야 한다. 

‘맘상모(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의 한 관계자는 “장사가 잘 되는 점포라면 건물주가 터무니없이 임대료를 올려 받을 수 있고, 혹은 건물가치를 높여서 매각할 수 있다”면서 “건물주 입장에선 장사 잘 되는 임차인에게 꼬박꼬박 임대료를 받는 것보다 훨씬 남는 장사”라고 하소연했다.

역대 정부 지금껏 뭘 했나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자신을 경제전문가라고 스스로 칭하는 이들은 나름의 대안을 내놓는다. “한계에 다다른 자영업 시장으로 퇴직자들이 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늘려야 (퇴직자 등이) 자영업 시장으로 무차별적으로 유입되는 걸 막을 수 있다” 등등. 

전형적인 한바탕 봄꿈 같은 의견이다. 사회 구조를 통째로 바꾸지 않는 한 좋은 일자리를 찍어낼 수 있는 정부는 없다. 또 다른 경제전문가들은 “규제완화와 노동유연화를 통해 일자리를 늘려야 자영업 편중현상이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유연화는 어차피 제로섬 게임이다. 누군가는 직장에서 밀려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영업 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규제를 완화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자는 주장에도 한계가 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규제 전봇대를 뽑아버리겠다고 선언했던 이명박 정부가 만족할 만한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문제는 책상에 앉아 공허한 주장을 펼쳐놨던 경제전문가들처럼 역대 정부도 ‘돈 푸는 대책’에 천착해 효과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탁상공론’의 아픈 결과물이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완화와 감세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거의 매년 막대한 대출금을 지원하고 세금을 깎아줬다. 자영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카드수수료 인하 공약은 임기 말에서야 잠깐 언급하다 흐지부지 사라졌다. 되레 프랜차이즈 기업화를 외치며 자영업자들을 가맹점주로 바꾸려는 플랜에 힘을 쏟은 결과, 골목상권만 무너뜨리는 우를 범했다. 

 

박근혜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공약엔 경제민주화를 내걸었지만 당선 후엔 대출금을 지원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자영업자의 임금근로자 전환을 지원하겠다’ ‘상가권리금을 보호하겠다’는 정책을 내놓기도 했지만 ‘대안 없는 약속’일 뿐이었다. 대출에 치중된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자영업 육성책은 결국 부작용만 낳았다. 자영업자들의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일례로 자영업자가 가장 많은 도ㆍ소매업종의 경우 예금은행 대출금은 2008년 1분기 61조여원에서 지난해 3분기 113조여원으로 두배가량 늘었다. 

문재인 정부는 다를까. 안타깝게도 눈에 띄는 정책은 없다. 현 정부 역시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세부 산업별 자영업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최저임금 하나에 발목 잡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아울러 ‘추경을 통한 자금지원책’을 꾀했다는 점에서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돈만 주는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도 실패했다. 자영업자 직접 자금 지원, 세무조사 유예, 구직지원금 지급, 자영업자 전용 상품권 발행 등 역시 결국은 자금지원책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지난해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자영업자들에게 조금 유리하게 개정한 게 성과라면 성과다.

진영논리에 빠져 남 탓만 해서야

우리는 지금껏 자영업계가 자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못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편편하게 만들지 못했고,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도 못했다. 은퇴나 퇴직하면 자영업에 갈 수밖에 없는 현실도 개선하지 못했다. 그래놓고 지금은 진영논리에 빠져 ‘남 탓’만 해대고 있다. 언급한 것처럼 최저임금 인상이나 임대료 문제만 나오면 입장에 따라 예민한 반응을 쏟아내는 식으로 말이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머리를 맞대는 거다. 맘상모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영업자들의 문제는 단순히 그들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미래의 나와 내 가족의 일일 수도 있다. 문제도 매우 복합적으로 꼬여 있다. 법이면 법, 정책이면 정책, 교육이나 사회분위기까지도 바꿔야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본다. 사회가 나아가고자 하는 큰 틀을 잡고 토론과 조율, 설득과 양보를 통해 방향성을 잡아 나간다면 정말 상인들이 맘편히 장사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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