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방지법 무용지물 

남양유업방지법은 대리점 업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사진=연합뉴스]
남양유업방지법은 대리점 업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사진=연합뉴스]

“손해액의 최대 3배에 달하는 금액을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과잉규제다.” 4년 전, ‘물량 밀어내기’로 갑질 논란에 휩싸였던 남양유업을 타깃으로 한 남양유업방지법이 국회 문턱을 통과하자 쏟아졌던 지적이다. 하지만 이 법을 둘러싼 평가는 ‘과잉규제’가 아닌 ‘무용지물’이다. 시행한 지 48개월이 훌쩍 넘었지만 처벌 건수가 ‘빵’인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남양유업방지법이 얼마나 많은 성과를 냈는지 취재했다. 

올해 2월 1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자체 가맹ㆍ대리점 분쟁조정협의회 합동출범식’을 열었다. 그간 가맹ㆍ대리점 분야에서 분쟁이 생길 때마다 공정위를 찾아야 했지만, 앞으로는 수도권 지자체 분쟁조정협의회서도 이런 조정을 맡는다. 쉽게 말해 상담 창구를 지자체로 확대한 셈이다. 

이중 대리점 분쟁을 규율하는 법은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은 일명 ‘남양유업방지법’으로 불린다. 2013년 5월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를 상대로 막말과 욕설을 퍼부은 내용의 통화파일이 공개되며 불거졌던 ‘남양유업 갑질 사태’가 입법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이 사태는 사회 전반에 걸쳐 ‘갑을 논란’이 확산하는 계기가 됐고, 곧 관련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 법은 본사-대리점의 부당거래를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핵심은 대리점주에 물품 구입을 강제하거나 경제상 이익 제공을 강요하다 적발된 본사에는 위반 금액의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한다는 규정이다. 물품 구입 강제 행위와 판매목표 강제 행위, 불이익 제공 행위, 대리점 경영활동 간섭 등도 불공정행위로 판단해 금지했다. 본사가 이를 어기면 과징금이나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아울러 이런 불법 행위를 신고한 대리점주에 대한 대리점 본사의 보복을 막기 위해 ‘보복조치 금지’ 조항도 들어있다.

사건 파장이 컸던 만큼 입법 과정도 떠들썩했다. 남양유업방지법이 국회 문턱을 넘은 건 사태가 발생한지 2년여 만인 2015년 11월이었다. 무엇보다 업계 반발이 거셌다. 공정위가 시행 중인 고시만으로도 납품대금의 2배에 달하는 과징금ㆍ형사처벌이 가능한 데,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물리는 징벌적 배상을 담은 건 과잉규제란 거다.

대리점주가 본사를 상대로 신고를 남발하면 대리점 유통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처벌 수위가 높다보니 제조사들이 대리점을 아예 멀리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법은 정말 대리점 업계를 뒤흔들 과잉규제였을까. 박경준 변호사(법무법인 인의)는 “이 법은 2013년 최초 의원 입법안에 제시됐던 ‘계약갱신청구권’ ‘대리점주 단체 결성ㆍ교섭권’ ‘접근점 출점 협의권’ 등이 빠진 채 시행됐다”면서 “현재의 법만으로는 본사와 대리점의 불공정한 관계를 해소하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법이 미치는 파장은 크지 않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사실상 시행 첫해인 2017년 남양유업방지법(2016년 12월) 분쟁조정 신청건수는 26건에 불과했다. 처벌 실적은 2019년 2월 기준으로도 제로였다. 공정위 관계자는 “그간 대리점 계약이 갱신 또는 신규 체결돼야만 대리점법이 적용될 수 있어 법 적용의 사각지대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지난해 개정안 국회 통과로 시행일 이전에 계약을 체결한 대리점도 대리점법 적용 대상이 돼 앞으로는 처벌 실적도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순히 적용대상 범위를 넓힌다고 대리점법 신고가 늘어날 지는 미지수다. 홍명수 명지대(법학과)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 법의 신고 건수가 적은 건 대리점주들이 불공정한 피해를 받지 않아서가 아니다. 피해를 받아도 신고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리점주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거래의 지속성이다. 본사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거래 중단의 리스크가 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이라 보는가.”

이 말은 대리점주들이 남양유업방지법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17년 대리점주 500명을 대상으로 ‘대리점법 시행 이후 불공정거래 개선 여부’를 질의한 결과, “다소 개선됐다”고 응답한 대리점주는 26.6%에 불과했다. “매우 개선됐다”고 응답한 대리점주는 한명도 없었다. 

대리점법 시행 이후 매출이 증가했다고 답한 대리점주는 6.0%에 불과했다. 요란하기만 하고 촘촘하지는 못했던 법은 뻔한 한계만 노출한 셈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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