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의 반발, 누구를 겨냥하고 있나

“정부가 집값만 잡으려다 역전세 위험을 불렀다.” 최근 역전세 논란이 불거지자 나오는 책임론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내줄 수 있도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타당한 주장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역전세 리스크에 숨은 불편한 진실을 파헤쳐봤다. 

역전세 우려의 핵심은 전세보증금 반환이다.[사진=연합뉴스]
역전세 우려의 핵심은 전세보증금 반환이다.[사진=연합뉴스]

‘역전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세계약 기간이 끝난 기존 세입자가 집을 비우겠다고 하면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아 기존 세입자에게 내준다. 일종의 돌려막기다. 

그런데 전세가격이 떨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기존 가격에 들어올 세입자가 없으니 자기 주머니를 털어 기존 세입자에게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현금을 보유한 집주인은 문제될 게 없지만, 현금도 없고 기존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보증금을 다른 부동산이나 투자처에 묶어둔 집주인이라면 당장 현금화를 할 수 없으니 난감해진다. 

심지어 집값이 전세가격보다 더 떨어지면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내줄 수 없다. 결국 깡통주택이 되는 셈이다. 전세보증금을 써버렸거나 집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을 많이 받은 집주인이라면 집을 경매로 넘기고도 빚을 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당연히 피해를 입는 건 집주인뿐만이 아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힘들어지는 세입자는 더 큰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주택도시보증공사나 SGI서울보증 등을 통해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한 세입자라면 이들로부터 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이들 보험의 가입조건은 일정 가격 이하의 주택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세입자들은 소송을 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통해 100%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역전세의 파편은 보험상품 판매회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역전세 탓에 전세보증보험으로 돈을 돌려받는 세입자가 늘어나면 보험상품 판매회사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역전세 우려가 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역전세를 우려하는 이들의 화살이 정부의 집값 안정화 정책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논리적 흐름은 다음과 같다. “집값 안정화 정책→전세가격 하락→깡통주택 속출→집주인과 세입자 곤경.” 역전세 대안으로 정부가 집주인(갭투자자 포함)에게 저금리 대출을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일부에선 “집값 잡기에만 급급한 정부가 역전세로 서민을 잡고 있다”면서 집값 안정화 정책 자체를 거두라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과연 타당한 주장일까. 그렇지 않다. 이는 중요한 핵심을 놓친 주장들에 불과하다. 일단 전세계약은 집주인과 세입자의 계약이다. 일정기간을 전제로 집주인은 집을 담보로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빌리고,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낸 후 집을 빌리는 구조다. 약속된 기간이 만료되면 합의에 의해 재계약을 하거나 일방이 재계약을 원치 않을 경우엔 파기된다. 따라서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가 있든 없든 계약이 해지될 때는 전세보증금을 준비해 돌려줄 의무가 있다. 

집주인의 탐욕부터 막아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행법상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못 주겠다고 버티면 세입자는 (보증금을 받아낼) 방법이 없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전세보증보험을 통해 돈을 받거나 애걸복걸해서 돈을 받는 게 아니면 현재로선 소송밖에 답이 없다”고 꼬집었다. 피해자가 시간과 돈을 투자해도 전세보증금 100% 반환조차 담보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집주인을 위해 ‘저금리 대출을 해주자’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참고 : 물론 집주인들 중에는 생계유지를 위해 주택을 임대하고, 세입자의 입장을 헤아려 전세보증금을 마련하려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역전세 문제는 집주인이 손해를 보기 싫어 의도적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거나 갭투자자(전세보증금을 이용해 여러 채의 집을 보유하는 투자자)들에 의해 생긴다.] 

일단 정부는 집주인들이 일으키고 있는 ‘역전세의 난亂’을 한발짝 물러서서 판단하겠다는 입장인 듯하다. 기획재정부는 “당분간 역전세에 관한 별도의 정책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는 세입자에게 좋을 리 없다. 역전세의 난을 해결하지 않으면 ‘약자弱者’일 수밖에 없는 세입자가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현재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99.8(2015.12.14.=100 기준)이다. 수년간 80~90대를 유지하던 지수가 오르기 시작한 건 2016년 8월 둘째주(99.9)부터다. 아파트 전세가격지수가 100 이상이라는 건 전세보증금이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아파트 전세가격지수가 100 이상일 때 전세계약을 체결한 세입자들은 ‘역전세 리스크’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집주인에게 많은 전세보증금을 지불했으니, 전세가가 떨어진 지금 전세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전세 리스크’에 홍역을 앓을 수밖에 없는 세입자의 범위다. 현재의 역전세 문제가 당장 전세계약 만기를 맞는 이들에게 적용된다는 점, 전세계약의 기본이 2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17년 상반기에 계약한 이들이 주요 대상이다. 

그렇다면 2017년 상반기에 전세계약을 체결한 이들 중에서 역전세 리스크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대상은 누구일까. 무엇보다 서울은 제외된다. 이 기간 서울의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100을 밑돌았다. 서울 지역에선 역전세난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셈이다. 지방도시의 상황은 달랐다. 울산ㆍ경남ㆍ경북ㆍ충북ㆍ충남ㆍ부산, 그리고 일부 경기권이다. 당시 이들 지역 지수는 낮게는 101.3, 높게는 106.8을 기록했다.

정부 손 놓으면 서민 피해


아파트 규모로 보면 중형(101.0)과 중소형(101.4)의 지수가 높게 나타났다. 종합하면 ‘지방의 중소형ㆍ중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역전세의 난이 휘몰아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번 역전세의 피해를 서민층이 입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에서 집주인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인 만큼 그들을 위한 배려 정책보다는 오히려 처벌 규정이나 전세보증금 지급 강제 규정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송재철 법무법인 훈민 변호사는 “단순히 새 세입자가 없다는 이유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일정한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높은 이자를 부과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을 듯하다”고 조언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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