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 인기 뒤에 숨은 애환

컵라면의 인기가 뜨겁다. 장점이 많아서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3분 만에 익고, 설거지를 할 필요도 없다. 가격까지 저렴하니 금상첨화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1000원대에 끼니를 때울 수 있다. 인기가 높아지니 맛도 좋아졌다. 하지만 컵라면의 인기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컵라면으로 식사를 할 수밖에 없는 청년, 비정규직이 숱하게 많아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컵라면 인기 뒤에 숨은 애환을 취재했다.

컵라면 매출이 증가하면서 정체 중이던 라면시장이 성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컵라면 매출이 증가하면서 정체 중이던 라면시장이 성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물만 부으면 되니까 편리하고, 한끼 때우기에 가장 저렴하니까.” 직장인 한영근(29)씨의 퇴근길 가방에는 컵라면 하나가 들어있다. 혼자 사는 탓에 밥 해먹는 날이 드문 한씨는 컵라면을 자주 먹는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컵라면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국내 라면 소매시장 규모는 1조6005억원(20 18년 3분기 기준)으로 전년 동기(1조5619억원) 대비 2.5% 증가했다.

정체 중이던 라면시장의 성장을 이끈 건 컵라면이었다. 컵라면 매출액은 같은 기간(5601억원→5947억원)으로 6.2% 증가한 반면 봉지라면은 (1조19억원→1조58억원)으로 0.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머지않아 컵라면 매출액이 봉지라면 매출액을 넘어설 거란 전망도 나온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컵라면 인기가 높아지면서 신제품을 출시할 때 봉지라면으로 먼저 출시하던 관례가 깨지고 컵라면으로 먼저 출시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뜨거워진 컵라면의 인기 뒤엔 한국 사회의 차가운 그림자가 숨어있다. 지난 2년 동안 꽃다운 두 청년이 컵라면을 유품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난 건 단적인 예다. 지난해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24)씨가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던 도중 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작업환경을 개선해달라는 하청업체 요구가 28번 묵살당한 결과였다. 김씨의 동료는 “2인1조로 근무했다면 김씨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수시로 낙탄(컨베이어벨트 아래로 떨어진 석탄)을 치우라는 지시가 내려와 휴게시간이나 식사시간 없이 일했다”고 말했다.

2016년 5월에는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서울메트로 외주업체 직원 김모(당시 19세)씨가 전동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스크린도어 수리는 2인1조로 진행해야 한다’는 안전수칙을 뒤로 한 채 작업에 투입됐다가 사고를 당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채 떠난 두 비정규직 청년의 가방엔 컵라면이 남아있었다.

이병훈 중앙대(사회학)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지만 그중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시간에 압도당한 채 살아간다”면서 “먹기 위해 일하는 삶이어야 하는데 일하기 위해 먹는 삶으로 역전돼 버린 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다”고 말했다.

1인가구가 많이 찾는 편의점에선 컵라면 매출이 봉지라면을 넘어선 지 오래다.[사진=뉴시스]
1인가구가 많이 찾는 편의점에선 컵라면 매출이 봉지라면을 넘어선 지 오래다.[사진=뉴시스]

문제는 비정규직을 둘러싼 안전문제ㆍ고용불안ㆍ저임금ㆍ처우개선 등 해결과제가 숱하게 많지만 비정규직 숫자는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비정규직 노동자는 661만4000명(8월 기준)으로 전체 임금근로자(2004만5000명) 중 33%에 달했다.

1년 사이(2017년 8월~2018년 8월) 정규직 노동자는 6000명 증가한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3만6000명이나 늘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격차는 더 벌어졌다.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64만원으로 정규직(301만원)보다 137만원 적었다. 시간에 쫓기고 돈에 쪼들리는 이들이 한끼 식사로 컵라면을 택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컵라면에 손을 뻗친 이들 중엔 혼자 사는 청년층도 숱하게 많다. 1인가구가 많이 찾는 편의점(CUㆍ2018년 기준)에선 컵라면의 매출 비중이 전체의 78.9%에 달했다. 대학생 김지운(24)씨는 약속이 없는 날엔 거의 컵라면으로 밥을 대신한다. 좁은 원룸에서 밥 해먹기가 번거로운 데다 부모님의 지원금으로는 매번 밥을 사먹기도 어려워서다.

일하기 위해 먹는 삶


실제로 1인가구의 91.8%(이하 대한지역사회영양학회ㆍ2016년)가 혼자 식사를 했고 “혼자 식사시 라면을 먹는다”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식사를 대충 하거나(35. 8%)’ ‘인스턴트 음식을 주로 먹는 것(19. 2%)’이 1인가구 식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혔다. 청년 1인가구가 ‘신新건강취약계층’으로 지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유진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부연구위원은 ‘1인가구 신건강취약계층으로의 고찰 및 대응(2017년)’이라는 보고서에서 “청년 1인가구는 직장이 불안정하거나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반실업 상태의 청년층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건강ㆍ빈곤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청년 1인가구가 영양까지 챙기기엔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이 녹록지 않다. 월세 단칸방에서 생활하는 청년 1인가구는 해마다 증가세다. 1인가구 중 월세에 거주하는 22~24세 비중은 63.8%(2015년)로 20 00년(31.8%) 대비 32.0%포인트 높아졌다. 25~34세는 같은 기간 22.9%포인트(29.3 %→52.2%) 치솟았다. 방 하나에 거주하는 비중은 22~24세 69.4%(2000년 55.0%), 25~34세 50.1%(41.2%)에 달했다.

비싼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청년층이 단칸방 월세살이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월세가 저렴한 편도 아니다. 부동산 중개플랫폼 다방이 발표한 ‘2018년 서울시 월간 원룸 월세 추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평균 월세는 54만원(33㎡ 이하ㆍ보증금 1000만원 기준)에 달했다.

주거비 부담은 높아지는데 청년층 취업난은 악화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고용부진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지난 1월 청년 실업률은 8.9%(통계청)로 3년 이래 가장 높았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층까지 포함한 체감 실업률은 20%를 훌쩍 넘어섰다. 이병훈 교수는 “한창 꿈을 키워야 할 청년층이 경제적 어려움에 사로잡혀 잿빛 미래를 꿈꿀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면서 “청년층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에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주거비 부담에 고용불안까지…. 숱한 고난을 겪고 있는 청년층과 컵라면을 사들고 출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컵라면의 인기는 이들의 눈물과 무관치 않다.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自畵像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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