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컵라면, 박카스… 누군가에겐 삶이었네
소주, 컵라면, 박카스… 누군가에겐 삶이었네
  • 김다린·최아름 기자
  • 호수 326
  • 승인 2019.02.21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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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식품 스토리

힘겨운 하루를 보낸 노동자들은 독한 소주로 애환을 삭였다. 박카스는 연탄가스로 두통에 시달리는 서민을 달래주는 ‘강장제’로 통했다. ‘노량진 컵밥’은 꽁꽁 얼어붙은 고용시장에서 돌파구를 찾는 청년들에게, ‘컵라면’은 끼니를 때울 시간조차 없는 약자들에게 ‘든든함’을 선물했다. 누군가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거들떠도 보지 않는 이 서민식품은 우리네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서민의 애환과 기쁨이 어우러진 음식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민소주의 등장 = 참이슬의 원조 브랜드인 진로소주는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에 설립된 ‘진천양조상회’에서 시작됐다. 당시 진로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35도였다. 하지만 정부가 식량 부족을 이유로 양곡을 원료로 한 증류식 소주 생산을 금지하면서 도수가 내려갔다. 35도가 넘는 증류소주에 물을 타서 알코올 도수를 낮췄기 때문이다.

소주의 도수는 1965년 30도, 1973년 25도로 점차 낮아졌다. 그렇다고 해도 많이 마시지 않아도 금방 취하는 독주毒酒였다. 소주가 서민의 고통을 잊게 만드는 주류로 떠오른 건 이 때문이었다. 많이 안마셔도 금방 취할 수 있었다. 다른 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값도 매력이었다(1970년대 70원). 퇴근길에 한잔 마시는 ‘진로골드’는 피로와 시름을 일거에 털어버리는 묘약이었다. 기업 부도와 인력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1998년 소주 출고량이 늘었던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1998년 전체 주류 출고량이 전년 대비 6.8% 감소했는데, 소주는 6.9% 늘었다. 이듬해엔 소주를 찾는 이가 더 많아져 출고량이 8.6% 증가했다. 국난의 아픔을 소주로 달랬단 얘기다.


소주는 여전히 서민의 고달픔을 위로하고 있다. 하지만 값이 계속 오르는 건 부담이다. 올해 1월 기준 외식용 맥주 물가지수는 108.12포인트를 기록한 반면 외식용 소주물가지수는 121.06포인트로 조사됐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마시는 맥줏값이 2015년 대비 8.12% 오르는 동안 소줏값은 21.0 6% 상승했다는 거다.

■외환위기와 커피믹스 = 커피믹스가 처음 등장한 건 1976년이다. 동서식품이 아웃도어용으로 원두·설탕·크리머를 한데 모은 ‘맥스웰하우스 커피믹스’를 내놓으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원두를 작은 봉지에 담은 인스턴트 커피는 외국에도 있었지만, 크리머와 설탕까지 함께 담은 건 이 제품이 세계 최초였다.

커피믹스가 처음부터 인기를 끌었던 건 아니다. 1980년대는 물론 1990년대로 접어들어서도 커피·크리머·설탕이 각각 들어있는 3개의 커피통에서 취향에 맞게 적절한 양을 섞어먹었다. 우리나라 커피 문화의 주류가 전환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국난의 여파로 대기업들은 인적 구조조정을 진행했는데, 1순위로 거리로 쫓겨난 이들은 임원에게 커피를 타주는 등 잡무를 전담하던 직원들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때부터 커피는 본인이 직접 타서 먹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커피믹스는 ‘트렌드 세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런 커피믹스도 고급·웰빙 등 새로운 트렌드에 밀려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 틈새를 파고든 건 원두커피였다.

■야근 필수제품 = 동아제약의 박카스는 산업화의 물결이 몰아치던 1961년 9월 탄생했다. 처음에 나온 박카스는 알약 형태였다. 당시 알약을 감싸는 기술이 발전하지 않아 더운 날씨에 녹아내리는 문제가 발생하자 1962년 유리형 용기에 담은 앰플형을 내놨다. 그런데 이번엔 운송할 때 파손되는 문제가 생겼다. 그러다 지금과 같은 형태인 병에 담아 제품을 출시했다.

박카스가 인기를 끈 건 독특한 광고 덕분이었다. ‘젊음과 활력을!’ ‘간을 건강하게 해주는 건강 지킴이’ ‘음주 전후 간 건강에 박카스 드링크’ 등의 신선한 문구에 산업역군의 애환을 담았다. 덕분에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지친 노동자들의 대표 자양강장제로 거듭났다. 겨울철마다 연탄가스를 들이마시던 1980년대 서민들은 박카스로 두통을 달래기도 했다. 실제 효능은 없지만, 그만큼 박카스의 위상이 높았단 얘기다.

승승장구하던 박카스는 2000년대 초반 비타500과 같은 비타민류 드링크 제품이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 2011년 박카스가 약국 외 장소에서도 판매가 가능한 의약외품으로 전환되면서 편의점을 적극 공략했는데, 전략이 통했다. 박카스 매출은 지난해 3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컵에 담은 밥과 공시족 = 컵밥은 컵에 밥을 넣어서 먹는 노점 음식이다. 주로 플라스틱이나 종이 재질의 컵 속에 밥을 넣고 그 위에 갖가지 고명을 얹는다. 기원은 2000년대 초반 노량진이 꼽힌다. 이 지역이 7·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의 성지가 된 시기와 맞물린다. 경기침체로 취업률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렸고, 노량진은 그들의 전쟁터가 됐다.

대형 강의실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선 빨리 먹을 수 있는 컵밥이 식사로 제격이었다. 이런 컵밥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2015년엔 ‘컵밥거리’란 이름으로 특화거리가 조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노량진 컵밥거리엔 활기가 돌지 않는다. 공시 열풍이 식어서가 아니다. 청년들이 노량진 생활비마저도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컵라면과 약자 = 3분의 짧은 조리시간과 건조한 면발, 1회용 컵에 담긴 한 끼. 단돈 1000원이면 ‘따뜻한 식사’를 맛볼 수 있는 컵라면의 매출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이 제품의 스타트를 끊은 건 1972년 3월 삼양식품이다. 당시엔 라면시장의 주류를 꿰차진 못했다. 봉지라면보다 가격이 높았기 때문이다. 봉지라면보다 다소 맛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었다. 때문에 야외 활동을 할 때 먹는 ‘비상용’ 정도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엔 봉지라면의 시장 점유율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냄비로 라면을 끓일 공간도 없는 원룸에 살거나 노동 현장에서 급하게 끼니를 때워야 하는 청년들이 컵라면을 찾고 있어서다.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김용균씨의 유품에서도 컵라면이 발견됐다. 이들의 ‘컵라면 인생’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공산이 크다.
김다린ㆍ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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