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의 애달픈 고객

‘고용 절벽’ ‘주거 절벽’ ‘대출 절벽’ 한국 청년들이 각종 절벽에 몰려 있다. 컵라면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며, 취업을 위해 잠을 줄이고, 쪽방에 갇혀 스스로를 무너뜨려가는 이들이다. 고용난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청년과 컵라면 사이에 ‘슬픈 방정식’이 흐르고 있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통계를 통해 한국 청년층의 삶을 엿봤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일부 청년은 취업 준비를 위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사진=연합뉴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일부 청년은 취업 준비를 위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사진=연합뉴스]

2016년 5월 ‘스크린도어가 고장 났다’는 신고를 받고 구의역으로 출동한 용역수리업체 직원 김군은 지하철과 부딪쳐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가방에선 컵라면이 발견됐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기계에 끼어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유품도 컵라면이었다. 쉴 새 없는 작업에 밥 먹을 시간도 부족했던 이들이 허겁지겁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컵라면을 뜯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체 라면시장에서 컵라면 비중은 2015년 32.0%에서 지난해 37.5%로 5.5%포인트 상승했다. 컵라면의 주요 소비층은 주머니가 얇은 청년층이다. 식품업계가 이들의 입맛에 맞춘 제품을 내놓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청년과 컵라면엔 어떤 방정식이 숨어있을까. 한국 사회 청년의 실태를 통계로 살펴보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우리나라 청년 대부분은 대학교로 진학한다. 1991년 33.2%로 집계된 대학진학률은 1990년대에 가파르게 상승해 2001년도에 최초로 70%를 넘어선 70.5%를 기록했다. 2008년엔 역대 최고치인 80%까지 근접했고, 이후 줄곧 70~8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못해도 고등학생 10명 중 7명은 대학생이 된다는 얘기다.

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첫번째 목표는 ‘취업(2015년 서울시 설문조사)’이다. 각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졸업생 취업률을 발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해도 취업의 문턱은 높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대학 신규졸업자 실업률은 15.9%, 일반 청년층 실업률 9.8%보다 월등히 높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좀처럼 졸업을 꺼려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원하는 일자리를 갖기 위해선 자격증 취득, 어학연수 등에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대졸 청년의 평균 졸업소요 기간은 61개월이다. 졸업 후 첫 취업까지 걸리는 시간도 평균 12개월이나 된다.

급증하는 청년 실업률

준비를 많이 할수록 눈높이는 올라가게 마련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청년층 첫 직장 근속기간은 18개월(2017년 기준)밖에 되지 않는다. 2006년 21개월에서 크게 줄었다. 첫 직장을 그만두는 사유로는 ‘근로여건 불만족’이 2004년 39.4%에서 2017년 51.0%로 크게 상승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청년층의 67.1%는 평균임금 수준이 100만〜200만원인 저임금 일자리에서 근무한다. 2013년엔 16.5%에 불과했던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중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17.0%까지 상승한 것과 관련이 깊다.

취업이 어렵고, 혹여 되더라도 임금이 낮다보니 청년층은 대출에 눈을 돌린다. 통계청의 ‘2017년 가계금융ㆍ복지조사’를 보자. 30세 미만 가구의 부채 보유액은 2385만원으로 2016년보다 무려 41.9%나 폭증했다. 30대 가구의 부채 보유액 증가율도 16.1%나 됐다. 전체 가구의 평균 부채 증가율 4.5%보다 3배가량 높은 증가율이다.

청년층이 처음 ‘빚’에 빠지게 되는 계기는 학자금대출이다. 지난해 학자금대출 규모는 1조8077억원, 2017년(1조7437억원)보다 소폭 증가했다. 돈을 제때 갚는 게 어려운 것도 문제다. 2017년 취업후 상환학자금의 미상환율은 8.1%로 2016년 7.2%보다 0.8%포인트 상승했다. 미상환율이 전년 대비 오른 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처음이다.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절벽은 일자리에만 있는 게 아니다. 당장 몸 뉠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는 ‘주거 절벽’도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의 1인 청년가구 주거빈곤율은 2000년 31.2%에서 2015년 37.2%로 더 악화됐다. 같은 기간 전국 전체가구 빈곤율은 29.2%에서 12.0%로 낮아졌는데, 청년층만 ‘역주행’이다. 

주거빈곤이란 주택법에 규정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이나 지하 및 옥탑, 비닐하우스ㆍ고시원 같은 주택 외의 거처에 사는 상황을 뜻한다. 한 장소에 거주하는 기간도 일반가구는 8년이지만, 청년가구는 1년6개월에 불과하다.

지갑도 얇고 마땅히 기댈 곳도 없는 이들의 마음은 병들고 있다. 2012~2016년간 국내 청년층 인구 10만명당 우울증 환자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4.7%, 전체 세대의 1.6%를 훌쩍 넘는 수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청년층의 소비는 엄동설한처럼 얼어붙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30세 미만의 청년가구 연간 소비지출은 2016년 기준 1869만원, 전체가구에 비해 71.9% 수준이다. 

10명 중 3명은 주거빈곤

청년가구 소비지출 통계는 2013년(2299만원) 정점을 찍고는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품목별로 보면 취업을 위한 교육비를 5년간(2011~2016년) 10.0% 늘렸고, 치솟는 집값에 주거비를 2.3% 늘렸다. 반대로 허리띠를 졸라맨 품목 중엔 식료품(-1.8%)이 있다. 한국 청년들이 값싼 컵라면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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