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편 목포❷ 노적봉

이순신은 유달산 봉우리를 볏짚으로 덮어 쌀 가마니처럼 보이도록 해 왜군의 눈을 속였다. [사진=뉴시스]
이순신은 유달산 봉우리를 볏짚으로 덮어 쌀 가마니처럼 보이도록 해 왜군의 눈을 속였다. [사진=뉴시스]

이순신의 탁월함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승리를 해나갔다는 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순신의 승리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목포 고하도에 석달 열흘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사이 본격적으로 수군 재정비를 진행했죠. 지금도 목포 고하도에는 이순신 장군을 기려 세운 모충각이 있습니다. 고하도뿐만 아니라 목포 곳곳에서 이순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목포 유달산의 끝자락에는 큰 바위로만 이루어진 봉우리가 하나 있습니다. 높이가 60m가량으로, 20층짜리 건물만한 크기입니다. 그 봉우리의 이름은 노적봉입니다. 노적봉은 ‘이슬 로露’자에 ‘쌓을 적積’자를 씁니다. ‘이슬이 쌓인 봉우리’라는 뜻이 아니라 ‘이슬이 생기는 바깥에 쌓는 봉우리’라는 뜻입니다. 창고나 집안이 아니라 집밖이나 창고 바깥에 쌓아둔다는 의미입니다. 

이어진 불패신화

노적봉의 유래는 이순신과 연관이 깊습니다. 명량해전에서 승리했지만 조선 수군은 여전히 빈약했습니다. 칠천량에서 완전히 궤멸한 지 불과 두세 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군대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6년 동안이나 이어진 전쟁으로 국토도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당연히 군량도 부족했죠. 왜군들이 이런 상황을 알아차린다면 조선 수군을 얕잡아 볼 게 뻔했습니다.

이순신은 볏짚 등으로 이 봉우리를 덮게 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쌀 가마니를 잔뜩 쌓아올린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부터 이 봉우리의 이름이 노적봉이 됐다고 합니다. 

왜군들이 노적봉을 보고 정말로 거대한 쌀 무더기라고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이순신의 계획이 맞아떨어졌다면, 왜군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조선은 물질적인 사정이 매우 풍부하다. 그리고 저 많은 군량을 먹을 만큼 군세도 크다”고 말이죠.

전쟁에서 군량과 보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삼국지에는 조조의 특공대가 원소의 군량을 모두 불태워 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로 인해 전쟁 전체의 국면이 결정돼 버린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왜군은 어땠을까요? 그 많은 군량(?)을 불태워 버릴 용기조차 못 내고 사기가 꺾여 버렸을까요. 아쉽게도 그런 기록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명량해전 이후에도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불패의 신화를 계속해서 써 내려갔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노적봉은 유달산의 끝자락에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유달산과 노적봉 사이에 길을 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passwing7777@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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