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5·18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사진=뉴시스]

인간은 자신의 악행을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미화하는 ‘매우 편리한’ 두뇌구조를 가졌다. ‘자기기만’이라는 자체 정화 작용을 통해 아예 그런 잘못이 없었다고 기억을 조작하고, 심지어는 범죄라 하더라도 훌륭한 행동이었다고 믿어버리기까지 한다.

2017년 개봉된 영화 ‘나는 부정한다(Deni al)’는 우리가 모두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역사적 실체라도 증명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설사 진실이 표면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웅변한다. 요즘 한국사회를 흔들고 있는 5·18 비난발언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나는 부정한다’의 데칼코마니라 할 만하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영국의 사학자 데이비드 어윙은 “히틀러의 부관 루돌프 헤스는 독일의 영웅이자 순교자이고, 아우슈비츠엔 가스실이 없다”고 주장한다. 적반하장 격으로 그는 “허황된 홀로코스트를 내세워 나를 모욕했다”며 미국 에모리대학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를 고소한다. 이후 4년간 32차례의 지루한 법정다툼이 벌어진다.

누구나 알고 있는 ‘아우슈비츠’와 ‘홀로코스트’라는 뻔한 사실이라도 역사적 규명은 쉽지 않았다. 변호사는 피고인 데보라에게 법정에서 입을 열지 말 것과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법정에 세워서는 안 된다고 설득한다. 행여 감정에 사로잡혀 흥분하거나 상대방에게 말꼬투리를 잡히면 재판이 불리해질까 걱정해서다. 대신 치밀한 아우슈비츠 현장 조사를 통해 감성이 아닌 이성과 논리로 원고를 몰아세운다.

“가스실에 구멍이 없으니 아우슈비츠에는 가스실이 없다”는 원고 측 주장은 “가스실은 영안실과 나치 친위대 대피소였다”는 어윙 자신의 진술로 무너진다. 어윙이 일기에 적은 ‘난 유대인도 혼혈도 아닌 아리아인 아기. 유인원이나 흑인과는 결혼할 생각 없네’라는 어린 딸의 시詩 내용 때문에 원고가 인종주의자, 반유대주의자라는 사실도 들통이 난다.

법정공방을 통해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사법적으로 해결되었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학문의 영역 내에 있어야 할 역사적 주장을 사법적으로 정의한 게 과연 맞느냐 하는 회의론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패소한 어윙은 법원 판결 직후 TV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마치 개선장군처럼 떠벌렸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은 혐의 덧씌우기와 법정다툼을 통해, 역사적 진실에 흠집을 내는데 성공했다고 뿌듯해 했으니 ‘역사 바로 세우기’는 그만큼 험난한 여정이다.

5·18은 ‘전두환 등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에 맞서 광주시민들이 벌인 민주화운동’이라는 진실은 변할 수 없다. 북한군 개입설은 6차례에 걸친 정부조사 결과 ‘근거가 없다’고 결론이 났다. 그렇다고 해서 5·18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의도대로 다시 법정에 세우려 한다거나, 또 다른 시비가 벌어지는 단초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더디더라도 학계에서 걸러지도록 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편견과 폭력을 부추기는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를 처벌하는 법을 제정해 포괄적으로 다루면 될 일이다.

유럽에서 수많은 사건 중에서 유독 유대인 학살에 관한 혐오발언을 금지하는 법을 만든 이유는 홀로코스트의 ‘중요성’이 아니라 ‘현재성’이다. 얼마 전 프랑스의 유대인 희생자 무덤의 묘비가 나치문양의 낙서로 훼손되자 마크롱 대통령은 반反유대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수준이라고 개탄했다.

광주민주화 운동은 홀로코스트 만큼 충분히 ‘현재성’이 있는 문제로 부각된다. 5·18 생존 피해자와 유족 등 관련자들, 그리고 호남에 대한 차별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만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왕이면 논란을 일으킨 자유한국당이 ‘5·18 혐오발언 금지법’에 주도적으로 나섰으면 한다.

5·18 유공자를 밝히라는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희생자의 신원이야 프라이버시 문제로 어렵다고 해도 최소한 정치인이라도 공개하면 안 될까. 광주항쟁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정치인이 왜 유공자로 선정되었는지 과정을 밝히는 것은 ‘5·18 모욕’과는 또 다른 문제로 풀어야 한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기억전쟁」이라는 책을 통해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기억은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라며 “산 자가 죽은 자의 목소리에 응답해서 그들의 원통함을 달래줘야 한다”고 말했다. 39년 전 광주의 비극은 정치적 게임이나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향한 과정에서 겪었던 고난의 십자가로 기억되어야 한다. 미래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다시 태어나려면 ‘2019년 현재 한국사회에서 5·18은 어떤 의미인가’를 끊임없이 반추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5·18 민주화운동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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