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사 “후판가격 올리자”
조선사 “경쟁력 떨어져”
철강-조선 후판 논쟁 뒤 숨은 이슈

조선사들은 후판 가격에 민감하다. 건조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철강사와 후판 가격인상 여부를 놓고 신경전을 펴는 이유다. 이번에도 조선사들은 철강사들의 가격인상 요구에 “선가 회복이 더뎌 후판 가격을 올리면 손실이 크다”고 받아쳤다. 그런데 조선사의 손실이 과연 후판 때문인지는 의문이다. 조선경기가 괜찮을 때보다 되레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조선사들이 후판 가격인상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철강사와 조선사의 후판 가격논쟁을 취재했다.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후판 가격인상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후판 가격인상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후판 가격인상을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두 업계는 가격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가격을 올리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조선업계는 동결하지 않으면 중국산으로 대체하겠다는 압박책까지 꺼냈다. 어찌보면 단순한 싸움이다. 물건을 팔려는 쪽은 돈을 더 받으려 하고 사려는 쪽은 덜 내길 원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상황이 복잡하다. 

조선사는 후판 가격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이유가 있다. 배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철강제품인 후판의 원가가 많게는 전체의 20%에 달해서다. 후판 가격이 오르내릴 때마다 조선사의 수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특히 오랜 불황의 여파로 선가의 회복세가 더디다는 점을 감안하면 후판 가격인상으로 인한 타격은 치명적일 수 있다. 조선사가 후판 가격인상을 반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선가 회복세보다 후판 가격의 인상 속도가 빨라 적자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한 조선사의 관계자는 “지난해 조선사들의 손실이 생각보다 컸던 것도 후판 가격이 오른 탓이 크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철강사가 과도한 가격인상을 요구하는 걸까. 그렇지도 않다. 통상 철강사와 조선사는 분기 내지 반기별로 후판 가격을 협상하지만, 철강사는 조선시황이 급격히 악화된 2015년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 후판 가격을 동결했다. 이후 2017년 하반기 한차례, 지난해 상ㆍ하반기 한차례씩 총 세차례 인상했지만 아직 정상가 수준까지 오른 건 아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조선용 후판은 엄격한 품질과 규격을 요구받고, 외국에서 선급인증을 따로 받아야 하기 때문에 비조선용 후판보다 들어가는 비용이 크다. 하지만 지금은 되레 비조선용 후판 가격이 조선용 후판보다 비싸다.

 

후판을 만드는 데 쓰이는 철광석의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철강사들이 후판 가격인상을 요구하는 이유다.[사진=연합뉴스]
후판을 만드는 데 쓰이는 철광석의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철강사들이 후판 가격인상을 요구하는 이유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말 기준 비조선용 후판의 유통가는 t당 76만원선이었지만 조선용 후판 가격은 t당 60만원 후반대에 그쳤다. 철강업체들이 조선 후판 가격을 제대로 인상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빈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참고 : 조선용 후판은 철강사와 조선사 간 수주계약에 따라 거래되기 때문에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조선용 후판 가격은 업계 추정치다.]

문제는 최근 철강사들의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후판의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중국 칭다오青島항 현물 기준 철광석 가격은 연초 t당 72달러(약 8만1000원)에서 지난 11일 t당 91달러로 훌쩍 뛰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손해를 감수하면서 조선사들의 사정을 봐줬는데 이제는 철강사들도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더구나 조선 경기가 좋아지고 있으니 당연히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따져보자. 조선사들의 주장처럼 후판 가격의 인상속도가 선가 회복속도보다 빠른 게 실적 부진의 진짜 원인일까. 조선용 후판 가격은 앞서 말한 것처럼 2017년 하반기와 2018년 상ㆍ하반기 총 3차례 인상됐다. 업계에 따르면 평균 인상 가격은 5만원꼴이다. 2017년 상반기 후판 가격이 50만원대였으니 단순 계산하면 현재 가격은 70만원 정도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선가는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VLCC)이 1047억2000만원, 2만TEU급 컨테이너선은 1677억7000만원, LNG운반선은 2071억8000만원선이다.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각각 12%, 6%, 2%에 불과하다. 실제로 후판 가격 인상률에 비하면 선가의 회복세가 더디다. 

하지만 후판을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이 선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30만t급 VLCCㆍLNG운반선ㆍ2만TEU급 컨테이너선을 만드는 데 쓰이는 후판의 양은 각각 3만t, 2만t, 3만t 수준이다.

가령, VLCC를 만든다고 할 때 3만t의 후판을 사려면 210억원을 줘야 한다는 건데, 이때 선가에서 후판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다. 같은 방법으로 계산했을 때 LNG운반선과 2만TEU급 컨테이너선의 선가에서 후판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6.8%, 12.5%다. 

그럼 이 정도의 비중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하기 위해 비교적 조선경기가 좋았던 2011년, 2013년과 비교해보자. 업계에 따르면 2011년과 2013년의 조선용 후판 가격은 t당 100만원, 90만원대였다. 당시 30만t급 VLCC의 가격은 1114억6000만원, 1058억4000만원. 후판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6.9%, 25.5%다.

LNG운반선은 8%대, 2만TEU급 컨테이너선은 15%대였다. 선가에서 후판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되레 줄어든 셈이다. 조선사들의 적자의 원인을 콕 집어 후판 가격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조선사들이 후판 가격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전히 조선업계에 횡행하고 있는 저가수주로 인한 부담을 전가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이다.

익명을 원한 업계 한 관계자는 “세계 1~3위의 조선사가 국내 기업이다 보니 출혈경쟁이 사라지기는 쉽지 않다”면서 “더 싼 값으로 수주를 받으려면 결국 원자재 가격을 낮추거나 하청업체에 부담을 전가하는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후판 가격인상 여부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후판 가격이 정상화하지 못한 원인을 제공한 게 누군지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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