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난 다시보기

정부가 역전세난 우려에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역전세난 우려에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사진=연합뉴스]

사실과 다른 주장 혹은 논리적이지 않은 주장들이 때론 생산적이지 못한 논란거리를 낳고, 결국 논점을 흐린다. 지난호(통권 326호) 더스쿠프(The SCOOP)에 실린 ‘역전세 리스크와 집주인의 반발… 그 불편한 진실’이라는 기사를 접한 독자들의 일부 반응도 그랬다. 그러면 대안은 나오기 힘들다. 더스쿠프가 독자들을 위해 역전세난의 팩트를 다시 한번 체크해 본 이유다.

역전세난 우려 논란의 가장 큰 쟁점은 실체가 있느냐다. 누군가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난하기 위해 언론이 만들어내는 소설”이라 주장한다. 또다른 누군가는 “전세금 반환보증보험의 대위변제가 늘고 있고, 실제 경매로 넘어간 집들도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박한다. 

팩트를 파악하려면 먼저 숫자를 확인해야 한다. KB부동산이 제공하는 ‘주간 KB주택시장동향’에 따르면 전국의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수년간 100.0(2015년 12월 14일=100.0 기준)을 밑돌다가 2016년 8월 5주차(100.0)를 기점으로 조금씩 올랐다. [※ 참고: 현재 전세가격지수는 99.8이기 때문에 100 이상이면 지금 전셋값보다 높은 값을 주고 전세계약을 맺었다는 의미다. 100 이하면 지금 전셋값과 비슷한 값이거나 낮은 값에 전세계약을 맺었다는 의미다.] 

2017년 1월 1주차엔 100.5, 그해 7월 3주차부터 2018년 1월 1주차까지는 100.8(최고점)을 기록했다. 이후 조금씩 하락해 올해 1월 1주차에 100.1로, 2월 1주차에는 99.8(이하 ‘현재’는 올해 2월 1주차 기준)로 떨어졌다. 

전세가격지수가 100을 넘어 상승하던(전셋값 상승기) 2016년 8월 이후부터 2018년 1월 사이 전세계약을 맺은 집주인의 경우, 지수가 떨어질수록(전셋값 하락기) 기존 세입자 혹은 연장 계약한 세입자가 낸 전세금보다 낮은 가격으로 새 세입자를 받아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컨대 올해 2월 기준으로 보면 2년 전인 2017년 2월 전세가격보다 0.7포인트(100.5-99.8) 가까이 떨어졌으니 집주인은 새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받더라도 전 세입자에게 줄 돈이 모자라는 식이다. 

전세계약이 일반적으로 2년에 한번씩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올해 상반기 지수가 현재 수준을 유지하면 2017년 상반기에 전세계약을 맺은 집주인들은 죄다 기존 세입자 전세금보다 낮은 가격으로 새 세입자를 맞는다. 지수가 하반기에도 현 수준을 지속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2018년 1월까지 지수는 계속 오름세였고, 따라서 기존 세입자와 새 세입자 간 전세보증금 액수 차이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클수록 집주인은 ‘전세금 돌려막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당연히 세입자도 난감해진다. 이게 바로 역전세난의 시작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역전세난이 전국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의 경우, 2017년 지수가 96.8~98.8 사이에 머물렀고, 이전 수년간의 지수는 이보다도 낮았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빨리 지수가 오른 강동구도 지수가 100.0까지 오른 시점은 2017년 7월, 대부분은 1년 후인 2018년 8~9월 사이 100.0에 도달했다. 따라서 서울은 역전세난과 무관하고, 전세가격이 더 떨어질 여유도 있다. “역전세난 우려는 과장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지방은 다르다. 2017년 1월부터 6월 3주차까지 울산의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107.0(일부 자치구는 109.0)이었고, 현재는 99.1이다. 무려 7.9포인트나 떨어졌다. 비슷한 기간 지수가 104.1였던 충북은 현재 99.2, 103.4였던 충남은 현재 99.9로 내렸다. 특히 충북 청주시의 상당한 수의 구는 2017년 초 107.7에서 현재 99.2로 떨어졌다. 경북 포항 북구와 구미는 각각 108.5과 107.3에서 현재 99.4로 내렸다. 

경남은 더 심각하다. 107.4~109.9 수준이던 창원ㆍ마산 합포ㆍ김해ㆍ통영은 현재 99.4~100.0을, 110.2~117.9 수준이던 마산성산ㆍ진해ㆍ거제 지역은 99.2~100.0으로 떨어졌다. 거제 지역만 보면 117.9에서 99.4로 18.5포인트 떨어졌다. 지방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세가격이 폭삭 주저앉았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2015년 1월에 입주해 전세계약을 연장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역전세난의 범위는 더 넓어진다. 당시 경남 거제의 지수는 122.6, 울산 동구는 111.3, 경북 구미는 110.8, 경남 진해는 110.7이었다. 우려의 목소리는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세입자 전세금 받을 수 있을까

관건은 세입자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느냐다. 집주인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거나 전세가율이 낮다면 크게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집주인의 ‘전세금 돌려막기’가 실패할 경우 생긴다. 많은 전문가들이 세입자들에게 미리 전세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거나, 전세권 설정을 하거나, 확정일자를 받으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보호장치를 만들라는 거다. 상당수의 세입자들이 이런 조언을 따른다. 


그러자 일부에선 이런 주장이 나온다. “예를 들어 전세가율이 80%인 5억원짜리 아파트는 집값이 20%(1억원) 이상 폭락해야 역전세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만큼 집값이 내리진 않았으니 경매로 집을 넘기면 전세금을 못 돌려받을 일은 없다.” 계산상 틀린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일단 전세금 반환보증보험은 일정한 조건이 맞지 않으면 가입 자체가 안 된다. 일례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 반환보증보험은 수도권 7억원 이하(전세가격 기준), 지방 5억원 이하 주택이 대상이다. 해당 주택의 선순위채권 비중이 주택가격의 일정 비율 이상이어도 보증이 안 된다.
 

전세권 설정은 집주인이 전세금을 주지 않을 때 소송 없이 주택을 임의경매로 넘겨 빠르게 전세금을 받아낼 수 있는 장치다. 문제는 집주인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는 집주인들이 통크게 동의해줄 리 없다. 전세권 설정을 해도 후순위채권자가 되면 돈을 다 받기 힘들다.

확정일자를 받으면 집주인 동의 없이도 최우선채권자가 되고, 토지와 건물의 합산금액에서 배당을 받기 때문에 전세금 떼일 염려는 적다. 하지만 소송으로 판결을 받아야만 경매가 가능하고, 소송기간은 빨라야 3~4개월이다. 


전세권 설정이든 확정일자든 경매가 진행돼도 문제다. 감정가가 확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매 시 주택가격은 시중 가격의 15~20%까지 떨어진다. ‘전세금의 온전한 보전’이 힘들다는 거다. 역전세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일정 부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일단 정부는 “역전세난 우려가 있지만 아직 대책을 내놓을 정도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누굴 위한 건지는 의문이다. 역전세난이 현실화하면 피해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가 입는다. 다만 집주인은 ‘투자금’이 걸린 문제인 반면, 세입자는 ‘생활’이 걸린 문제다. 세입자의 불안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전세시장에서 나오는 세입자들의 불안감을 잠재울 의무가 있다. 부동산 시장은 정부 정책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인私人 간 계약’이라는 말로 나 몰라라 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대표는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부동산 정책 탓에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린다”면서 “그러니 정부를 원망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참에 정권이 바뀌어도 큰 틀이 바뀌지 않게끔 방향성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좀 더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동수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은 “시장 참여자들은 정권이 바뀌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아니겠냐”면서 “그러니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방향을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을 펼쳐 놓고 ‘사인 간 계약’이라는 식으로 덮을 게 아니라 끝까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라는 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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