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의 눈물

“집주인이 해결할 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역전세난 우려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전세보증금은 집주인 채무인 만큼 전셋값이 오르든 내리든 집주인 책임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시장의 현실은 다르다. 당연히 돌려받아야 할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애를 쓰는 건 세입자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역전세 리스크를 막을 수 없는 허술한 안전장치를 취재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제때 내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빚어질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집주인이 전세금을 제때 내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빚어질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계약이 만료된 전세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온전하게 되돌려 받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전세가격 하락 여파로 내줄 돈이 없다고 버티는 집주인 때문이다. 지방에서는 임차한 집이 경매에 넘어가도 집값이 워낙 많이 떨어져 전세금을 다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주택’이 속출할 정도다.

다행히 우리 법에는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장치가 많다. 대표적인 게 주택임대차보호법 제8조가 명시하고 있는 ‘임차인에 대한 최우선변제권’이다. 집주인이 주택을 담보로 아무리 많은 대출을 했더라도, 그 주택이 처분되면 세입자는 일정 금액을 최우선으로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성 없는 기준이 문제다. 서울은 보증금 1억1000만원 이하 전세권자에게만 최우선변제권을 부여한다. 서울 아파트 85㎡(약 25평) 평균 전셋값은 지난해 말 기준 4억3426만원. 아파트는 물론 다가구주택도 1억원 이하 전세는 찾기 힘들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을 유도하기도 한다.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HUG가 상품 가입자인 세입자에게 곧바로 전세금을 변제해주는 상품이다. 하지만 이 역시 조건이 까다롭다. 전셋값 기준 수도권은 7억원 이하, 지방은 5억원 이하 아파트만 가입할 수 있다. 보험 가입 당시 전세 계약기간이 절반 이상 남아 있어야 한다. 또한 전세금보다 먼저 갚아야 하는 빚과 전세금을 합친 금액이 집값을 넘지 않는 경우에만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운영하는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도 대안으로 꼽힌다. 성립된 조정은 민사상 합의로 법적 효력을 지니고, 조정기간도 1∼2개월 정도로 짧아서다. 문제는 이 역시 집주인이 불응할 경우 조정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거다. 세입자로선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이것도 어렵고 저것도 어려운 세입자는 결국 소송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진행과정이 복잡하고,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동주(법무법인 젠) 변호사는 “세입자를 보호하려 만든 제도 역시 세입자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겨우 보증금을 지켜낼 수 있는 게 문제”라면서 “역전세난을 불러올 정도로 시장이 혼란스러웠던 건 정부 책임도 큰 만큼 피해자 구제에 적극 나서야 할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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