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불명예 퇴진한 DB그룹의 현주소 

수년간의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DB그룹은 정상 기업의 발판을 겨우 닦았다. 사명까지 바꿔가며 쇄신을 외치던 2017년 돌발변수가 생겼다. 사재를 털어가며 자구책을 마련했던 창업주 김준기 회장이 여비서 성추행 이슈로 퇴진한 거였다. 곧바로 그의 외아들 김남호 DB손해보험 부사장이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후계자의 위상을 다지려 했지만 녹록지 않아 보인다. DB 계열사의 지난해 실적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흔들리는 DB그룹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창업주 김준기 회장이 불명예 퇴진한 이후 김남호 DB손보 부사장이 DB그룹의 키를 잡았지만 그룹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사진=연합뉴스]
창업주 김준기 회장이 불명예 퇴진한 이후 김남호 DB손보 부사장이 DB그룹의 키를 잡았지만 그룹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사진=연합뉴스]

2017년 동부그룹은 ‘쇄신’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었다. 수년간 이어진 혹독한 구조조정의 후유증을 최대한 빨리 털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주요 제조업 계열사를 떼어내자 그룹에 전자와 금융 계열사 몇개만 남은 건 동부의 초라한 자화상이었다.

구조조정 중에도 “지난 반세기 동안 땀흘려 일군 소중한 성과가 구조조정의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됐다”면서 “참담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서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자”고 당부한 창업주 김준기 회장이 다시 키를 잡았다. 사명을 DB로 바꿀 정도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던 중 ‘찬물’이 끼얹어졌다. 원인을 제공한 이는 공교롭게도 김 회장이었다. 여성 비서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직후인 2017년 9월 21일 김 회장은 “개인의 문제로 회사에 짐이 돼서는 안 된다”며 그룹 내 모든 직책을 내려놓았다.

후임으로 금융감독위원장 출신 이근영 동부화재 고문이 선임되면서 DB그룹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고문은 ‘오너경영’을 잇기 위한 징검다리였을 뿐이었다. 동부의 실질적 키는 김 전 회장의 외아들인 김남호 DB손해보험 부사장(2018년 1월 승진)이 거머쥐었다.

김 부사장은 일찌감치 회사에 입사해 10년 넘게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2009년부터 동부제철ㆍ동부팜한농ㆍ동부생명보험 등을 거쳤다. 김 부사장에겐 기회였다. 경영을 맡기에 어려운 시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이 키를 잡을 무렵, DB그룹의 실적은 회복세를 띠었다. 그룹 부실화의 주범 중 하나였던 DB하이텍이 줄곧 적자만 내다 2014년부터 흑자전환한 건 희소식이었다. 이후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이 회사는 2015년에 영업이익 1250억원을 기록하더니 2016년(1724억원), 2017년(1432억원)으로 순항했다. 

구조조정 이후 그룹의 주축이 된 금융계열사 DB손해보험도 2017년 영업이익 8679억원을 기록했다. 창사 이후 최대 실적이었다. 2013년 적자에 허우적대던 DB금융투자 역시 2017년 224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환골탈태했다. 업계 안팎에서 “김 부사장이 그룹 운전대를 잡기엔 안정적인 경영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올 법도 했다.

이름까지 바꿔가며 쇄신했건만…

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김 부사장의 경영 능력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다. 키를 잡은 지 1년이 흐른 DB손보의 지난해 실적이 신통치 않아서다. 이 회사의 2018년 영업이익은 7459억원으로 전년 대비 13.2% 줄었다. 4분기 영업이익이 94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7% 감소한 게 치명적이었다. 

나머지 계열사의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효자 계열사 노릇을 하던 동부하이텍은 2018년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2.8%나 감소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 성장곡선을 그리던 DB금융투자는 4분기에 대규모 적자를 냈다. 33억원의 영업손실과 38억원의 당기순손실이다. 이는 국내 상장된 중형 증권사 중에선 가장 큰 손실 규모다. 

IT 지주회사인 DB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90억원으로, 2017년(38억원)에 비해 135.3%나 치솟긴 했지만, DB의 IT 기술력이 시장의 인정을 받은 결과는 아니다. 지난해 말 그룹 계열사로부터 DB 브랜드 상표권 사용료를 수취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실적이다. 이 회사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만 보면 오히려 2017년보다 24.7% 감소했다. 개별 실적으로 보면 적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 부사장을 거친 회사마다 경영난을 겪었던 것도 구설에 올랐다. 김 부사장이 처음으로 차장으로 입사한 동부제철은 현재 워크아웃 상태로 경영정상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3년 자리를 옮긴 동부팜한농 역시 실적악화 끝에 LG화학에 넘겨줬다. 

DB그룹 관계자는 “김 부사장은 DB금융연구소에서 금융부문의 중장기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중”이라면서 “아직 김 부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게 아닌 만큼 DB손보의 실적악화를 김 부사장과 연결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해명했다.

다시 꺾인 성장곡선

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다르다. 김남호 부사장은 DB손보의 지분 8.30%를 보유한 최대주주다(지난해 3분기 기준). 김준기 전 회장(6.55%)보다 지분율이 높다. DB손보는 DB생명(99.83%)ㆍDB캐피탈(87.10%)ㆍDB금융투자(25.08%)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DB 금융 계열사의 핵심계열사다.

그룹 내 IT 지주회사인 DB의 최대주주 역시 김 부사장이다. 16.83%로, 이 역시 김 전 회장의 지분율(11.20%)보다 높다. 이밖에 김 부사장은 DB하이텍(2.03%)ㆍDB금융투자(6.38%)ㆍDB스탁인베스트(29.09%)ㆍDB인베스트(26.49%) 등의 계열사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이 지난해 7월 질병 치료를 받는다며 미국으로 출국한 상황에선 사실상 그룹의 유일한 대주주다. 

경영진이 아니어도 언제든 그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대주주로서의 달콤한 과실은 챙겼다. 김 부사장은 올해 DB손보로부터 120억원의 배당을 받는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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