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권리금 주무르는 보이지 않는 손
창업컨설턴트는 왜 권리금을 중개하나

권리금 시장의 불투명성으로 피해를 보는 자영업자가 생긴다.[사진=뉴시스]
권리금 시장의 불투명성으로 피해를 보는 자영업자가 생긴다.[사진=뉴시스]

창업을 준비하는 당신의 눈에 목 좋은 가게가 나타났다고 치자. 생각보다 권리금도 쌌다. 창업 컨설팅 회사까지 나서 ‘가게주인과 협상해서 권리금을 깎아놨다’며 흥을 돋운다. 포스에 찍힌 월 매출도 수준급이다. 자! 이제 어쩌겠는가. 열에 아홉은 장밋빛 미래를 그릴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낄 공산이 크다. 상가 권리금 시장만큼 불투명하고 꼼수가 횡행하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상가 권리금을 주무르는 ‘보이지 않는 손’을 취재했다. 

# 예비창업자 A씨의 목표는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다. 카페시장이 레드오션인 만큼 목 좋은 자리의 가게를 구하기 위해 발품도 참 많이 팔았다. 그럼에도 매번 허탕만 치자 A씨는 수소문 끝에 상권을 분석해주고, 우수한 매물 리스트를 제공한다는 창업 컨설팅 회사를 찾아갔다. 천군만마였다.

회사는 A씨를 만나자마자 월 1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매물을 추천했다. “원래 권리금은 1억원이지만 사장을 끝까지 설득해 7000만원까지 깎아놨다”고 너스레까지 떨었다. 3000만원이 웬말인가. A씨는 줄어든 권리금에 기뻐하며 장사를 시작했다.그렇게 2개월여. A씨의 귀에 이상한 말이 들려왔다.

전前 가게사장이 제시한 권리금이 5000만원에 불과했고, 나머지 2000만원은 창업 컨설팅 회사가 챙겼다는 거였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권리금 차액은 컨설팅 수수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한탄했다. “사기는 아닌데, 사기를 당한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예비창업자에게 꼼수를 부리는 건 정당하지 않다.”

A씨만의 문제일까. 권리금을 둘러싼 상가 업계의 갈등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권리금을 주고받고 있다. 권리금 거래를 악용해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도 숱하다. 반대로 말하면 권리금 규제망이 그만큼 허술하다는 거다. 권리금과 함께 오가는 수수료가 ‘부르는 게 값’이 된 것도 같은 이유다.

일반적으로 권리금 계약은 공인중개사가 임차계약을 하면서 함께 체결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공인중개사는 임차 계약과 권리금 계약의 수수료를 각각 챙긴다. 수수료 기준이 별도로 있는 부동산 거래와 달리 권리금 거래에는 이런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준을 만드는 게 쉬운 것도 아니다. 권리금 거래는 일반 부동산 거래와는 결이 다르다. 권리금이 다루는 영역은 ‘경영권’ ‘영업권’에 가깝다. ‘좋은 자리’ ‘높은 매출’ ‘꾸준한 손님’ 등이 권리금을 책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 때문에 ‘매출’이 권리금의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이 역시도 믿을 만한 지표가 아니다. 권리금을 높여 받으려는 사업자들이 ‘매출 부풀리기’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인 등의 신용카드로 거래하고 매출로 집계하는 식이다. POS 결제 프로그램 등을 모두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는 이상 초보 창업자가 가짜 매출을 가려내기 쉽지 않다.

불투명한 권리금 시장의 악순환

권리금을 주고받을 때 실거래가를 신고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감정원이 분기마다 조사해 발표하는 ‘도시별·업종별 상가권리금’도 국가에 신고된 데이터가 아니다. 현장방문 조사를 통해 만들어진다. 직접 돌아다니면서 찾지 않는다면 실제 권리금 시세를 알아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A씨의 사례처럼 일부 창업 컨설팅 회사가 권리금을 활용해 버젓이 ‘꼼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선경 변호사(법률사무소 여름)는 “창업을 원하는 사람이 늘면서 창업 컨설팅 회사도 함께 늘어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곳은 거의 없다”면서 “권리금 거래의 중간에서 컨설팅비 명목으로 이익을 챙기는 것이 주요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창업 컨설팅 회사에 속아 권리금을 과도하게 냈을 경우, 돌려받는 방법은 없을까. 법적으로는 가능하다. 매출 부풀리기에 속아 권리금을 냈던 사업자가 민법 제103조를 근거로 일부를 돌려받은 사례도 있다.


하지만 권리금을 과하게 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더라도 법정 다툼을 걸긴 쉽지 않다. 비싼 값을 치르면서 소송을 진행하느니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떠나는 것이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리금을 과도하게 주고 들어온 사업자는 손해를 줄이기 위해 비슷한 가격에 다른 사람에게 가게를 넘기려고 시도한다.

당연히 직접 인수자를 찾기보다는 창업 컨설팅 회사에 의뢰하는 것이 낫다. 권리금 꼼수 거래에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배 변호사 말을 들어보자. “피해자는 결국 가해자가 된다. 가해자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 역시 누군가에 피해를 주고 떠날 생각을 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권리금을 수수료 명목으로 몰래 먹은 창업 컨설팅 회사만 돈을 번다.”

그나마 2015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상가건물 임대차 권리금계약서’가 있지만 이마저도 무용지물이다. 필요에 따라 표준 계약서의 내용을 추가·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권리금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방법은 명료하고 간단하다. 무엇보다 깜깜이 시세로 거래되는 권리금의 실거래가를 신고하는 게 첫번째 방법이다. 시세를 공개하자는 것이다. 상한선이 없던 권리금 수수료도 요율을 적용해야 한다.

권리금 실거래가 등록 필요

권리금 거래를 임차권 양도계약과 묶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다면 공인중개사에게 해당 거래에서 책임을 질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은 “권리금 역시 부동산 실거래가처럼 공인중개사가 전산에 등록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면서 “전월세 실거래가 신고도 이제 시작되는 상황에서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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