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특약 30 | 토론과 AI

“인공지능(AI)의 발달이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AI가 인간과 여러 종목에서 대결을 벌이고 승리를 쟁취할 때마다 나오는 우려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었을 때도 인류는 놀라움과 충격을 동시에 겪었다. 얼마 전 AI와 인간 사이에 또 하나의 흥미로운 대결이 펼쳐졌다. 이번에는 ‘토론’ 배틀이었다. 승자는 누구였을까.

IBM이 개발한 토론 전용 AI가 인간 토론 챔피언과 열띤 공방전을 벌였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IBM이 개발한 토론 전용 AI가 인간 토론 챔피언과 열띤 공방전을 벌였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2월 1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모스콘 컨벤션센터는 떠들썩했다. 글로벌 기업 IBM의 연례 기술 콘퍼런스인 ‘씽크2019(T hink2019)’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블록체인, 클라우드 등 IBM의 기술 전략이 발표되는 자리다. 올해도 4만여명 이상의 관람객이 최신 기술 동향을 살피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올해는 행사를 앞두고 특별한 전초전이 열렸다. AI와 인간의 토론 배틀이었다. IBM의 토론 전문 AI ‘프로젝트 디베이터’가 청코너에 섰다. 이는 여러 개의 문장으로 된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을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AI 컴퓨터다. IBM는 “프로젝트 디베이터가 신문과 학술자료 등 100억개의 문장에 해당하는 언어를 이해하고 이를 지식으로 바꾸는 연구를 수행해왔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엔 2명의 이스라엘 토론 챔피언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AI의 첫마디 “웰컴 투 퓨처”

인간 진영의 대표주자는 하리시 나타라얀이었다. 나타라얀은 2012 유럽 토론 챔피언이자 2016년 세계 토론 챔피언십 결승에 진출한 유명한 토론 전문가다.

인간과 AI의 대결은 흥미로운 이벤트다. 1997년 IBM의 AI ‘딥블루’가 체스왕에 등극한 이후 둘의 다툼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2011년엔 ‘왓슨’이 제퍼디(Jeopardy) 퀴즈쇼에서 인간 퀴즈왕을 물리치기도 했다. 2016년엔 고도의 창의력과 복잡한 사고력을 요구하는 바둑에서 구글의 AI ‘알파고’가 승리를 거두면서 큰 이슈가 됐다. 상대가 세계 최고 기량을 보유한 이세돌 9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 대결의 결과에도 관심이 쏠렸다. AI가 인간보다 앞선 능력을 보인 분야가 하나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토론은 바둑이나 체스와 같이 명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승패를 가리는 것도 쉽지 않다.

전운이 감돌던 때, 프로젝트 디베이터가 관객의 긴장을 풀어줬다. 여성의 목소리를 빌린 이 AI는 다음과 같은 첫마디로 관객의 웃음을 유도했다. “어서와, AI와의 토론은 처음이지? 미래에 온 걸 환영해.”

역사적인 대결의 토론 주제는 사전고지 없이 현장에서 무작위로 선정됐다. 그렇게 선정된 이슈는 ‘정부의 유치원 보조금 지급’. 지난해 한국에서도 사립유치원의 보조금 지급효과를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만큼, 첨예한 입장차가 있는 주제였다.

프로젝트 디베이터가 찬성 쪽을 골랐고, 나타라얀은 반대의 입장에 섰다. 인터넷 활용을 할 수 없다는 조건에서 15분의 사전 준비시간이 먼저 주어졌다. 방식은 단순했다. 모두 발언 4분, 의견 반박 시간 4분, 마무리 발언 2분 등 총 10분의 시간이 둘에게 주어졌다.

프로젝트 디베이터가 먼저 입을 뗐다. 디베이터는 “정부가 유치원 보조금을 지급하면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교육 수준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범죄율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논리정연하게 말했다.

나타라얀은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유치원 보조금은 주로 중산층을 위한 정치적 지원금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더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써야 한다. 보조금을 지급하더라도 정작 빈곤층 가정 자녀들은 혜택을 볼 수 없다.”

서로 의견을 반박하는 2라운드에서는 열띤 공방이 펼쳐졌다. 프로젝트 디베이터의 무기는 ‘확실한 팩트’였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보고서를 비롯해 풍부한 연구자료와 통계를 근거로 유치원 보조금 지원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나타라얀은 토론 전문가답게 능수능란하게 토론장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특히 청중의 반응에 따른 다양한 몸짓과 목소리의 강약 조절이 인상 깊었다.

나타라얀이 “중산층에게 정부 자금을 지원할 더 나은 방법이 많다”고 역설했을 때, 프로젝트 디베이터의 반박은 이 토론의 백미白眉였다. “집 앞에서 가난한 사람이 구걸하는 장면을 보고 싶은 것이냐. 그 말은 논점을 벗어난 것이다.” AI가 인간에게 인류애를 호소한 셈이다.

인간이 승리했지만…

두 참가자의 설전이 오갈 때마다 800여명의 관객은 숨죽이며 지켜봤다. 특히 AI가 어설프지만 인간 특유의 공감능력과 유머감각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관객들은 하리시 나타라얀의 손을 들어줬다. 인간 진영의 승리였다. IBM은 토론의 승패 대결을 ‘누가 더 많은 관객을 설득했나’로 갈랐다. 토론 전에는 유치원 보조금 지급 찬성 입장이 79.0%였지만, 토론 후에는 62.0%로 17.0 %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반대 입장은 토론 전 13.0%에서 토론 후 30.0%로 17.0%포인트 증가했다. 나타라얀이 더 많은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AI 측에도 성과는 있었다. 나타라얀의 승리를 이끈 건 다양한 몸짓과 청중의 반응에 따른 억양 조절 등 감성적인 접근이었다. 관객을 설득하기엔 AI의 명확하지만 딱딱하고 단조로운 톤은 불리한 요소였다. 실제로 관객들은 “누가 지식을 풍부하게 해줬느냐”는 질문에는 나타라얀(20.0%)보다 프로젝트 디베이터(80.0%)의 손을 들어줬다. 

승자인 나타라얀 역시 “프로젝트 디베이터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도 핵심만을 끌어왔다”면서 “특히 문장 조합 실력이 놀랄 만큼 강력했다”고 인정했다.

애초에 토론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모두에게 더 나은 길을 모색하는 게 토론의 목적이다. 일방적인 주장을 상대방에게 주입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논리를 받아들여 내 주장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프로젝트 디베이터의 패배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다. AI 기술 발전의 가능성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도움말 | 한국IBM 소셜 담당팀 blog.naver.com/ibm_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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