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대우조선 M&A 뭐가 문제인가
조선 생태계 고려하지 않은 산은의 빅딜
독점형 M&A는 과거 정권의 실패 사례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ㆍ합병(M&A)을 밀어붙이자 업계 안팎은 ‘정성립 패싱론’으로 뜨겁게 달궈졌다. 산업은행이 조선시장의 생태계를 위해 현대중공업이 아닌 삼성중공업과의 합병을 원했던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M&A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했기 때문이다. 정 사장이 사임을 결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그럼 현대중공업 중심의 M&A와 삼성중공업 중심의 M&A는 뭐가 달랐던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정성립 패싱 논란과 독점형 M&A의 덫을 취재했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현대중공업과 KDB산업은행의 본계약 체결식이 8일  열렸다. 사진은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오른쪽)과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사진=뉴시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현대중공업과 KDB산업은행의 본계약 체결식이 8일 열렸다. 사진은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오른쪽)과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사진=뉴시스]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을 정상화한 뒤 상품가치를 높여 빅2로 가는 게 맞는 방향이다(2016년 11월 2일 기자간담회).” “조선시황과 산업경쟁력을 고려하면 빅2가 바람직하다(2018년 11월 15일 기자간담회).” 경영정상화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9년 만에 친정에 돌아온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줄곧 빅2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해야 한다면 나머지 빅3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중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 사장의 주장처럼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해양을 넘기는 매각 절차를 진행했고, 현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1월 31일 산은과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지분 인수’를 골자로 하는 기본합의서를 체결했고, 지난 8일엔 본계약을 맺었다.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까지 통과하면 인수ㆍ합병(M&A)은 마무리된다. 이 빅딜(Big Deal)이 성사되면 국내 조선은 빅2 체제로 재편된다.  


소임을 다했다는 뜻일까. 정 사장은 2년여의 임기를 앞둔 지난 2월 14일 대우조선해양 대표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내부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정 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이유가 다르게 읽힌다. “정성립 사장이 빅2 전환을 주장한 건 맞지만 이런 방식을 원한 건 아니다. 당초 삼성중공업과의 M& A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의 M&A 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이 정성립 사장을 배제했다는 ‘패싱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패싱 논란은 생각보다 컸다. 일부에선 정 사장이 사임을 결정하는 데 산은의 독단이 크게 작용했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산은의 패싱 논란이 불거진 건 그만큼 산은의 M&A 결정에 반기를 드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현대중공업과의 M&A와 삼성중공업과의 M&A는 뭐가 다를까. 어려운 질문 같지만 이는 “국내 조선업의 생태계를 고려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라는 단순한 문제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사임 배경을 두고 산은의 패싱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사임 배경을 두고 산은의 패싱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말 수주잔액 기준으로 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ㆍ삼성중공업의 점유율은 각각 13.9%, 7.3%, 6.9%다(클락슨 리서치 자료).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합병하면 빅2의 점유율 차이는 21.2%와 6.9%로 벌어지지만,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합치면 현대중공업의 점유율과 비슷해진다.

전자는 독점 우려가 큰 반면 후자는 대등한 경쟁을 통해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유리할 거라는 얘기다. 김영훈 경남대(조선해양시스템공학) 교수는 “빅3에서의 저가수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빅2 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라면서 “하지만 지금의 M&A에선 빅1 구조가 될 공산이 크고, 그렇게 되면 또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빅딜을 추진하는 산은의 행보에 비판이 쏟아지는 것도 독점 후폭풍 때문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의 지적을 들어보자. “경쟁력이 향상된다는 건 기술력이 오르거나 판매망이 개선되는 등의 시너지를 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은의 M&A 방식은 독점을 통해 단가를 낮춰 경쟁력을 높인다는 거다. 이런 방식은 산업과 경제 전체로 봤을 땐 부정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국내 부품산업의 경쟁력 약화다. 부품업체들은 빅3와 각각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데 독점 구조가 되면 일부 부품업체에 물량이 몰릴 수 있다. ‘단가 후려치기’ 우려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최종재를 만드는 업체가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M&A를 추진하면 중간재는 피폐해지게 마련이라서다.

부품산업 관계자는 “조선사에 공동으로 납품할 때와 따로 납품할 때의 부품업체 경쟁력은 크게 다르다”고 일침을 놨다. 산은과 현대중공업은 8일 본계약을 체결하면서 “부품업체의 기존 거래선을 유지하겠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본계약에 담긴 내용이 아니라 법적 효력은 없다”면서 “나중에 이를 지키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독점이 부르는 나쁜 나비효과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도 좋을 게 없다. “정부는 과거 현대차ㆍ기아차 빅딜 때와 같은 효과를 누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그때완 상황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합병했을 때는 세계적으로 자동차 시장이 커지는 상황이라 생산능력(capacity)을 끌어올리는 게 긍정적이었지만 현재 조선업황은 불확실성이 크다는 거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두 조선사의 주력 선종이 겹치기도 하지만 급격히 규모가 커지는 터라 다운사이징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문제는 다운사이징의 규모가 클수록 점유율의 하락폭도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김영훈 교수는 “다운사이징을 통해 줄어든 물량은 중국이나 일본에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독점을 통해 단가가 올라가면 단기적으론 효과를 거둘 수 있어도 장기적으론 가격경쟁력이 높은 중국 조선사가 치고 들어올 수 있는 틈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에서의 반발도 클 가능성이 높다. 조선업 특성상 독점화를 유발하는 M&A가 해외 업체들에도 피해를 입힐 수 있어서다. 업계에서 “이번 빅딜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노조의 반대보다 해외 경쟁국에서 기업결합을 승인하느냐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승인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M&A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해당 국가와는 거래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경써야 할 부분은 경쟁국만이 아니다. 독점 구조가 달갑지 않은 건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조선업에서 소비자는 대부분 해외 선사다. 경쟁국뿐만 아니라 해외 선사들의 반대도 무릅써야 한다는 얘기다. 독점을 노린 M&A가 시장에선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박상인 교수는 “선진국에선 독점을 유발하는 M&A를 허가하지 않는데, 그만큼 부작용이 많기 때문”이라면서 “독점화 M&A는 과거의 산물이고, 과거 정권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다”고 꼬집었다. 


독점화 M&A는 과거의 산물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2월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일고 있는 정성립 사장 패싱 논란에 입을 열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정성립 사장이 M&A 과정에 참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장상환 경상대(경제학) 명예교수는 “기업의 현 상황과 업황을 가장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현 임원진을 배제한 것은 옳지 않은 판단이었다”고 지적했다. 

그간 정부가 주도한 M&A에선 늘 ‘산업 논리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성과주의와 정치논리에 산업의 목소리를 귓등으로 흘린 탓이었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M&A 과정에서도 산은은 똑같은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본계약은 체결됐고 M&A는 7부능선을 넘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M&A 이후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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