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의 고질병

주 52시간 단축 근로의 첫 시작일. 건설업계는 “현장을 모르고 만든 정책”이라고 날을 세웠고, 정부는 “공공기관의 현장부터 적용해 나가겠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응했다. 그로부터 6개월, 주 52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현장은 수두룩하다. 24시간 가동되는 돌관공사는 주 52시간을 무력화시키는 나쁜 요인 중 하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건설업계의 고질병 ‘돌관공사’의 문제점을 취재했다. 

돌관공사는 밤낮없이 24시간 진행되는 공사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월 30일 건설기업노조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 52시간 단축 근로 현장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시작된 주 52시간 근로단축제가 건설현장에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조사였다. 결과는 심각했다. 600여명의 응답자 중 “주 52시간이 지켜지지 않는다”면서 속내를 드러낸 이는 63.0%로 절반을 넘었다. 이들 현장의 평균 연장 근무시간은 8.5시간에 달했다. 심하게는 주 87시간까지 일하는 현장도 있었다.

이들이 정부가 법으로 보장한 주 52시간 대신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 이유는 ‘돌관공사’였다. 언뜻 암반을 파내는 작업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돌파突破’한다는 뜻의 ‘돌관突貫’이다. 건설기업노조 관계자는 “특성상 반드시 연속공정이 필요한 시멘트 타설 등을 할 때나 빠듯한 준공 기한을 어떻게든 맞춰야 하는 현장에서 돌관공사를 주로 볼 수 있다”면서 “이때는 계약서에 명시된 휴게시간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돌관하는 법은 뜻 그대로 “안 되면 되게 하라”다. 건설사는 주로 준공 기한을 맞추기 위해 마지막 스퍼트를 올릴 때나, 연달아 해야 하는 공정일 때 인력·장비·건자재를 집중적으로 투입해 24시간을 작업하는 돌관공사를 진행한다.

주 87시간을 일하는 돌관공사 현장에서 주 6일을 일한다고 가정해보자(점심 1시간 제외). 건설 노동자는 하루에 14시간 일해야 한다. 오전 7시에 작업을 시작한다면 오후 10시에나 일이 끝난다. 그마저도 일주일에 3일간은 오후 11시에 끝난다. 이런 상황이 토요일까지 이어지면 현장 노동자가 쉽게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피로도가 높아지면 공사 품질도 떨어진다. 부실공사나 날림공사의 위험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익명을 원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수도권에 입주한 아파트 중에서도 준공 기한을 맞추기 위해 돌관공사로 진행된 곳이 있다”면서 “모든 목적을 준공 기한을 맞추는 데 놓고 작업했기 때문에 날림공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돌관공사를 막을 제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간 공사기간은 규모와 투입 물량, 공사비용 등으로 결정됐다. 각각의 공공기관이 과거의 사례나 자체적으로 파악한 대략적인 평균 공사기간을 바탕으로 적용하는 식이다. 제대로 휴일을 지키기 위해 몇명의 노동자가 필요한지, 공사기간은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 등은 중요한 판단 요소가 아니었다.

이렇다 보니 건설업계에서 돌관공사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됐다. 그럼 준공 기한을 맞추기 위해 급하게 진행되는 돌관공사를 막을 수는 없을까. 업계 관계자들은 법적·제도적 안전장치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도 지난 1월 주 52시간 단축 근로가 제도적으로 안착하도록 지난 1월 ‘공공 건설공사 공사기간 산정기준(공공공사 표준안)’을 발표했다. 공사기간을 객관적으로 산정해 주 52시간 시스템을 탄탄하게 만들고, 돌관공사는 없애겠다는 취지에서다.


건설업계 달군 주 52시간 제도

문제는 새로운 ‘공공공사 표준안’으로 돌관공사를 막을 수 있느냐다. 이는 공공공사 표준안이 근로시간을 제대로 반영하는지를 파악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표준안을 들여다보자. 공공공사 표준안 제10조에서 공사 기간과 직결되는 작업일수는 해당 공사의 공사종류별 수량을 시공하는 데 필요한 총 작업일수로 정의한다.

작업일수는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하는 표준 작업량에 따라 계산하거나 발주하는 공공기관에서 가지고 있는 과거의 자료를 기반으로 삼는다. 돌관공사 관련 내용도 있다. 연속작업이 있을 때는 교대근무, 주·야간 근무로 구분해 작업시간을 산정하게끔 했다.

하지만 맹점이 여전히 많다. 발주처가 되는 공공기관에서 보유한 과거의 자료는 주 52시간 단축 근로제도가 적용되기 이전의 시점이다. 단순히 주 40시간 근무로 환산했다면, 실제 적용할 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이 표준안은 공공공사에만 해당하는 기준이기에 민간 공사 현장에는 적용 의무가 없다.
 

주 52시간을 기준으로 한 공사기간을 계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돌관공사를 최대한 피할 수 있는 방지책도 빠져 있다. 건설 현장에서 문화재가 발견된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해보자. 2007년 입주한 수도권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는 조선 시대 관아 문화재가 발견됐다. 터파기 공사를 하던 때였다. 문화재 조사가 시작되면서 공사는 중단됐다. 아파트는 수백 가구의 입주 시점이 이미 정해져 있어서 준공 시한을 미루기가 특히 어렵다.

현장 반영 안 된 정책의 오류

공사 기간 내에 준공하기 위해선 인력과 물량을 최대로 투입해 진행하는 돌관공사를 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발표된 ‘공공공사 표준안’에는 이런 돌발 상황에 대비한 항목이 없다. 공사 기간을 주 52시간에 맞춘다고 해도 돌관공사를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건설기업노조 측은 “사전 작업이나 공사 중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발주처에서 미리 조사를 끝내야 공사 기간이 촉박한 경우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면서 “돌발 변수가 일어나기 때문에 공사 기간이 늘어나는 원인을 최대한 줄여줘야 주 52시간 안착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인력 운용을 가늠하기 어려운 업계 특성도 주 52시간 단축 근로가 넘어야 할 산이다. 우재원 노무사는 “건설 현장은 단순히 작업 교체자가 온다고 해서 같은 효율을 내지 않는다”면서 “주로 팀 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주 52시간 적용을 위해 더 세밀한 기준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 52시간 단축 근로의 시대에 돌관공사를 막으려면 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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