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페이 시범사업의 진실 

정부와 지자체의 사업은 공공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최대한 많은 이들이 득을 봐야 한다. 공공성은 물론 사업성까지 면밀히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혈세가 들어가는 공공사업의 실패를 막을 수 있다. 서울시와 정부 여당이 세달째를 맞은 ‘제로페이 시범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이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시범사업을 평가하지도 분석하지도 않는다. 시범사업이니까 그냥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제로페이 시범사업의 민낯을 취재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제로페이 전국 확대 실시를 외치고 있지만, 전시행정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제로페이 전국 확대 실시를 외치고 있지만, 전시행정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전국 민주당원과 지역위원회가 활발히 권유하면 (제로페이 결제가) 대세가 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5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과 함께 관악구 신원시장을 찾아 제로페이 결제를 시연하면서 당부한 말이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의 결제수수료를 낮춰준다는 취지로 등장한 오프라인 간편 결제 서비스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서울페이’로 시범서비스를 시작했고, 서울시와 여당은 ‘2020년 제로페이 전국 도입’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올해 1월 28일부터는 전국 109곳을 시범상가로 지정해 서비스 지역도 늘렸다. 박 시장의 행동과 말을 종합해보면, 제로페이 시범서비스를 몇 달간 해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판을 키우자는 거다. 올해 제로페이 전국 확산을 위해 쓸 98억원(서울시 38억원ㆍ중기부 60억원)의 예산도 이미 준비했다. 

그럼 박 시장의 계획대로 홍보에 열을 올리면 제로페이 가맹점이 가파르게 늘어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제로페이 시범서비스 실적이 참담하다. 지난 6일 김종석(자유한국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은행별 제로페이 결제 실적에 따르면 1월 31일 기준 등록가맹점 수는 4만6628개, 1월 한달간 결제건수와 결제금액은 각각 8633건과 1억9949만원이었다. 제로페이 가맹점당 결제건수는 0.18건, 결제금액은 4327원에 불과했던 셈이다. 제로페이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하자는 박 시장의 주장에 흠집을 낼 만한 실적이다. 

 

더 큰 문제는 제로페이의 미래다. 전문가든, 상인이든 제로페이의 실적이 바닥을 치고 올라올 가능성을 높게 점치지 않는다. 소비자를 유혹할 만한 매력이 없어서다. 애초 전문가들은 “소상공인에겐 ‘0% 수수료’라는 이점이 있지만, 소비자를 유인할 만한 매력은 없다”면서 제로페이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지난해 “제로페이 사용 시 40%의 소득공제율을 적용받도록 해서 최대 75만원의 세금환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이는 공수표에 불과했다. 현재 제로페이 결제는 신용카드나 계좌이체 둘 중 하나의 방식을 택한다. 따라서 공제를 받을 때는 ‘총급여의 25% 사용액의 초과분’에 대해 ‘최대 공제액 한도 300만원’에서 공제한다는 공통된 기준을 적용받는다. 제로페이를 쓴다고 공제를 더 받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서울시의 주장대로 되려면 제로페이 사용액을 별도로 떼어내 소득공제 해주도록 세법(조세특례제한법)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서울시와 여당은 올해 안으로 세법 개정을 추진, 올해 소득공제에 소급 적용을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미 개정안도 나와 있다. 말하자면 소득공제 75만원은 세법 개정을 전제로 깔고 있다는 거다. 결국 세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서울시의 홍보 내용은 거짓말이 된다. 

연태훈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로페이에 한해 소득공제 한도를 없애고, 사용금액 전체를 공제해주는 식의 파격적인 유인책이 없다면 할부와 신용거래가 가능하고, 포인트 등의 유인까지 있는 신용카드와의 경쟁에서 제로페이가 살아남기는 힘들다”고 주장했다. 

 

제로페이의 실적이 개선될 가능성이 낮은 또 다른 이유는 서울시의 무책임한 태도에 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사업 전국 확대’를 외치면서도 시범사업 효과는 제대로 분석하지도, 실태를 공개하지도 않았다. 김종석 의원실에서 제로페이 실적 자료를 발표하기 하루 전, 더스쿠프(The SCOOP)는 서울시에 제로페이 실적 현황 자료를 요청했다. 당시 서울시 제로페이총괄팀 관계자는 “서울시엔 가맹점수 자료(신청 기준)만 있고, 이용자나 이용금액에 관한 자료는 금융결제원으로부터 받고 있지 않아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시범사업의 성과를 분석ㆍ평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엔 “이용빈도가 높은 가맹점이 더 늘고, 소비자 편의성도 더 개선된 후 실적을 따져 볼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원론보다 못한 답을 내놨다. 아울러 “현재로선 실적을 분석할 계획도 없고, 시범사업이기 때문에 실적은 큰 의미도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의 혈세 수십억원이 투입됐더라도 시범사업은 시범사업일 뿐이라는 얘기다. 

분석은 뒷전, 사업 확대에만 급급

이는 심각한 문제다. 서울시의 설명대로 시범사업의 실적자료를 분석ㆍ평가하지 않았다면 박 시장은 검증된 자료도 없는 상태에서 “제로페이를 확대하자”는 주장만 내뱉은 셈이 된다. 제로페이 도입 과정에서 문제점은 없는지,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보완책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등을 따져봤을 가능성도 없다. 사업부터 키워놓고 결과는 나중에 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범사업은 사업성과 효율성, 문제점 등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100%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도, 부작용 없는 정책도 세상엔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범사업의 성과는 분석ㆍ평가하는 게 마땅하다. 그래야 ‘시범’이란 타이틀을 뗐을 때 원하는 정책효과를 낼 수 있다. 시범사업이 공짜인 것도 아니다. ‘국민의 돈’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더스쿠프가 만난 한 제로페이 가맹점주는 이렇게 말했다. “별 부담없이 결제시스템 하나를 더 만들어준다니까 장사하는 사람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뭐가 됐든 이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손해가 될 일은 없어서다. 문제는 결제시스템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있다면 장사꾼은 사비를 털어서라도 시스템을 들여놓는다는 점이다. 가맹점 늘리기가 아니라 소비자가 쓰게끔 하면 저절로 통용되고 홍보가 된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게 아닌가 싶다.” 서울시와 박 시장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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