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 제로페이 효과 없어
제로페이존 바깥은 더 냉냉
상인 목소리 반영되지 않아
확산에만 몰두하는 정책 괜찮나

지난해 12월 20일 서울시가 ‘제로페이’를 선보였다.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에서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몸소 제로페이를 사용하면서 서비스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그로부터 두달여, 제로페이는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시의 제로페이 시범상가 10곳 중 1곳인 영등포역 지하상가를 찾아가봤다.

제로페이존인 영등포역 지하상가의 상인들은 제로페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사진=천막사진관]
제로페이존인 영등포역 지하상가의 상인들은 제로페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사진=천막사진관]

올해 최악의 미세먼지가 서울을 뒤덮었던 지난 5일 오후 영등포역 지하상가. 인적이 드물게 느껴지던 바깥과는 달리 지하상가에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의류·속옷·가방·액세서리 등을 파는 작은 점포가 밀집해 있는 지하상가엔 롯데백화점이 있는 영등포역으로 가는 사람과 신세계백화점·타임스퀘어·영등포시장이 있는 영등포로터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뒤섞여 있었다. 영등포 지하상가는 영등포역 지하쇼핑센터, 영등포 로터리지하쇼핑센터, 영등포 뉴타운지하쇼핑몰, 영등포 시장지하쇼핑센터 등 4개의 지하상가로 구성돼 있다.

취재팀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제로페이 존’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영등포역 지하상가 중 영등포역 지하쇼핑센터는 서울시가 지정한 제로페이 시범상가(제로페이 존) 10곳 중 1곳이다. 이를 증명하듯 영등포역 지하상가는 제로페이를 알리는 홍보물이 넘쳐났다. 지하상가 곳곳에는 제로페이와 사용법을 알리는 배너가 놓여 있었다. 지하상가로 내려가는 계단에도 제로페이를 알리는 광고가 칸칸이 붙어있었다.


제로페이존답게 가맹점 수도 많았다. 제로페이존에 있는 60개 점포 중 55곳이 제로페이 가맹점이다. 가맹률이 91.6%에 달하는 셈이다. 그중 제로페이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51곳인데, 제로페이 결제가 가능한 상점마다 ‘제로페이 가맹점’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영등포역 지하쇼핑센터 시설공단 관계자는 “가맹점 55곳 중 QR코드를 아직 발급받지 못한 4곳을 제외한 51곳에서 결제가 가능하다”며 “1월에는 영등포구청장이 직접 방문해 제로페이를 알렸고 2월에는 쿠폰지급 이벤트를 하는 등 홍보활동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시행 70여일이 흐른 제로페이의 성적표는 어떨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뚫고 ‘활성화’의 초석쯤은 놓았을까. 답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로페이 가맹점 스티커가 붙은 가게 중에서 실제 결제가 이뤄지는 곳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제로페이존에서 남성복 가게를 운영하는 최진명(가명·43)씨는 “제로페이가 도입될 때부터 홍보를 하고 난리를 쳤지만 실제로 결제를 하는 손님은 많지 않다”며 “이벤트를 할 때 한두명 제로페이를 사용하려는 손님이 있었지만 이후엔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옷 가게 주인의 의견도 비슷했다. 이수진(가명·34)씨는 제로페이로 결제를 하는 손님이 많으냐는 질문에 “거의 없다”고 짧게 대답한 뒤 말을 이었다. “제로페이를 제아무리 홍보해도 효과가 나오지 않는 듯하다. 상가모임에서 ‘해보자’고 밀어붙여서 가입하긴 했지만 20~30대 젊은층도 잘 쓰지 않는다. 제로페이로 결제하려는 손님보다 제로페이를 쓰는 손님이 있는지 물어보러 오는 기자가 더 많다.” 홍보와 가맹점 모집에 수십억원을 쏟아부은 제로페이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로페이 결제 거의 없어

제로페이의 흥행 실패는 시행 초기부터 제기됐다. 사용법이 복잡하고 결제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이유에서였다. 소비자를 유인할 만한 혜택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제로페이존을 벗어나면 ‘제로페이’의 관심도가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였다. 이는 제로페이의 확산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제로페이존(영등포역 지하쇼핑센터)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영등포 뉴타운지하쇼핑몰에선 제로페이 가맹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뉴타운지하쇼핑몰에서 속옷 가게를 운영하는 최명희(가명·51)씨는 “뉴타운지하쇼핑몰에서 제로페이에 가입한 가게는 거의 없다”며 “제로페이를 시범운영하는 곳에 손님이 많으면 가입을 하겠지만 그런 것 같지 않아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서울시에서 나왔다며 제로페이 가입을 권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지하상가에서 물건을 사는 손님의 연령대도 높아 사용하는 손님이 있을지 의문이고 사용방법도 번거로울 것 같아 가입을 미루고 있다”고 밝혔다.

영등포역 지하쇼핑센터 관계자의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로페이 신청을 계속 받고 있지만 새롭게 신청하는 가게는 많지 않다. 가입을 원하는 상인도 적다.” 
서울시 관계자는 제로페이를 향한 좋지 않은 평가에 불편한 심기를 노출했다. “시행한지 100일도 되지 않은 제로페를 신용카드 등 기존 결제수단과 비교하는 건 맞지 않다. 성인과 아기를 비교하는 것과 같아서다. 우리나라 결제 시장에서 신용카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웃돈다. 이제 막 시작한 제로페이를 두고 성급하게 평가를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현장 확인 없이 확산에만 몰두

그의 말대로 현 시점에서 제로페이의 성패를 예단하는 건 성급할 수 있다. 시행된 지 100일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작이 불안한 건 부인하기 어렵다. 개선할 점도 숱하다. 서울시가 제로페이의 문제점을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않은 채 ‘확산’에만 열을 올리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6일 김종석(자유한국당) 의원이 1월 제로페이의 실적을 발표했다. 가맹점당 결제건수가 0.18건에 불과하다는 게 골자였다. 이 실적에도 서울시 관계자는 “섣부른 평가”라고 날을 세웠지만 상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제로페이는 서울시의 작품이 아니라 상인들을 위한 플랫폼이다. 서울시는 지금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다. 그게 더 큰 문제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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